진실을 똑바로 보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틀린 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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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리즈-드라마 종류를 보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에 주변의 강력 추천에도 보는 걸 망설여왔는데, 총 5화로 영화 두 편 본다고 생각하고 보라는 말에 시작을 했고, 하루 만에 다 보았다.
드라마 내용이야 뭐 체르노빌 원전 사고 내용이다. 다만 나부터도 대충은 알지만 자세히는 몰랐고. 가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몇몇 문서를 읽었을 때도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 알아보다 말고, 알아보다 말고 했던 일이 많은데 그런 나도 드디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완전히 이해가 될 만큼 설명도 잘해주는 드라마였다.
그렇다고 단지 다큐 같은 설명 위주인 것도 아니다. 드라마라는 이름에 충실하다. 이 사건을 둘러싼 당시 원전에서 일하던 사람, 주변 소방관, 병원 종사자, 과학자, 정치적으로 연관된 사람,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시민들, 뒷수습에 투입된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비추어주었다. 이걸 5회 만에 다 했다는 게 대단해 보일 정도.
냉소를 보이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태 수습하기 위해 죽음이나 다름없는 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단했다. 또한 죽음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사실 그렇게 반드시 죽음과 가까운 결과를 낳는 건 아니기도 하고.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련이라서 일어난 일이고 소련이라서 수습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들 하고 나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꼭 소련이라서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비슷한 일이 1986년 이후에도 있었다. 그저 개인의 욕심, 무능, 아둔함, 그리고 그 모든 걸 가진 사람이 권력까지 잡았을 때 생기는 흔하고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는 댜틀로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 온갖 위험한, 잘못된 판단을 밀어붙이면서, 자기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지 않는 아랫사람들에게 분노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절대 자기 손으로 기계를 조작하지 않는 모습이 특히 역겨웠다. 그런 사람이니 그 명령에 대해 글로 남겨 달라는 요구는 우습게 여긴 거겠지. 원하는 건 이루어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드라마-이야기-로도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고가 났고, 그로 인한 알 수 없는 현상들, 일단 수습해야 하는 일들. 수습 과정에서의 갈등과 은폐와 그에 대한 분노. 알 수 없는 현상과 수습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재앙과 절망들. 그리고 드디어 밝혀지는 진실.
드라마 후반부에 드디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단 터져버린 사고' 12시간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고 이전에 오간 말들과 계획들을 보여주기 위함이지만 동시에 사고 12시간 전에는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앞선 화면에서 불타고, 녹아내리고, 처참하게 무너져가고 많은 걸 잃으며 울부짖던 사람들을 모습을 본 뒤에 (다시) 함께 웃는 장면을 보여줄 때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이야기의 묘사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두 가지. 사운드(배경음, 효과음)와 자연의 초록이었다. 생사도 모르고 떨어져 있던 부부가 재회하는 순간에도 아름다운 음악은 나오지 않는다. 피폭되는 순간이기도 하니까. 음침한 분위기만이 감돈다. 어려운 작전을 위해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결심을 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뒤에는 비장함이라도 넘치는 음악 따위 나오지 않는다. 단지 측정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방사선량에 비틀거리는 계수기 바늘 소리만이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게 울려 퍼진다. 내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인데, 실제로 그걸 행해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는 감히 어떠할까.
그러면서도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나무는 어찌나 그렇게 푸른지, 심지어 재판 중 잠시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와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그 옆의 나무는 굳건히 아름답다. 또한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고 텅 빈 도시에서도 나무는 푸르르고 햇살은 아름답게 비춘다. 그 텅 빈 곳에서도 강아지들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사람들에게 달려온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잔인할 수밖에 없는 처치와 처분들, 잔인한 현실의 대비가 눈에 띄었다.
개인의 욕심, 국가의 욕심, 이기심, 모든 것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비극.
한 사람이 세상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그럼에도 제대로 된 한 사람이 세상을 지킨다.
-발레리라는 과학자가 진실을 알았다고 한들, 보리스라는 힘 있는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다고 생각하므로, 그 한 사람은 과학자일 수도 정치인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 외의 수많은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뻔히 존재하는 진실을 외면하고 지어낸 이야기에 만족하며 살 텐가?
거짓의 대가는 진실을 보는 눈을 잃게 하는 것이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전에 진실을 바라보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틀린 일이었다고.
이걸 기억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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