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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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한 지도 오래됐으나 마음 아플 게 뻔해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영화이고.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아주 잔잔함에도 고통스러웠다.
영화는 결말을 먼저 보여주고 시작하는데도 내내 결말이 궁금했다.
이런 캐릭터 이런 관계 이런 (재정적) 배경에서도 결국 그런 결말이 나왔다는 걸 보여주고 시작한 거라서.
결국 조르주와 안느가 꺾이고 시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들어갈 때 대단한 소리가 나거나 요란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냥 서서히 그렇게 된다.
이것을 노인들의 이야기라고 타자화하고 두려워하는 리뷰들이 많아서 놀랐다.
노인들이라고 다 겪는 게 아니라고 노인이 아니라고 안 겪을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어떻게 보면 조르주의 입장도 이해하고 환자로 누워있는 안느의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입할 수 있는 경험을 해봤다. 오히려 그랬기에 특별히 어느 한쪽에만 이입하게 되지는 않았다. 내가 겪은 것들은 저들의 고통과 비슷하다고 느낄 순 있어도 절대 같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다만 조르주가 외롭겠다는 생각은 했다. 안느의 병으로 조르주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 오직 혼자만 듣고 삼키든 대처하든 해야 하는 말들. 가장 많은 것을 나누던 안느에게만은 전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말들.
안느가 자신을 잃어간다는 건 조르주의 입장에서는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자 파트너를 잃어가는 과정이므로.
그러나 조르주는 아직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으므로... 안느가 자신을 잃고, 자신이 안느를 잃는 그 상실의 과정을 또 생생하게, 괴롭게, 고통스럽게 오롯이 겪어야 한다.
영화 이후 조르주의 삶이 어떻게 됐을지가 대놓고 나오지는 않는데, 쓰다 보니 깨달았다. 그는 자살을 한 거구나. 환상 같은 회상 장면에서도 조르주와 안느는 '함께' 나가니까.
조르주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말도 봤고 당연히 이해는 간다(도덕으로든 법으로든 문제가 된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이러나저러나 안느를 상실하는 건 똑같고, 고통이라도 없어지는 방식으로 안느를 완전히 상실하는 길을 택했고, 그것은 조르주의 입장에서 이제 '완벽하게' 안느를 상실하는 것이므로. 이래도 고통 저래도 고통이라면 차라리 그쪽이 안느에게도 조르주에게도 덜 괴로운 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딸이 말한다. "(우리가) 걱정할 거란 생각은 안 해요?"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말: 너희들 걱정이 무슨 소용이 있는데?
조르주의 다음 대사: "너희가 걱정해 봐야 소용없어. 너희의 걱정까지 생각할 여유 없어."
부모가 떠난 뒤에야 부모의 자리에 앉아보는 딸의 모습으로 영화가 끝나는 걸 보면 늙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거 같다가도, 딸도 '늙어서' 그 자리에 앉아본 건 아니기 때문에.
조르주는 결국 안느가 있는 방의 창문을 닫지 못했던 거다(경찰?의 대사로 알 수 있다).
그러면 안느의 모습이 너무나 끔찍해질 테니까.
그렇게 사랑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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