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에이미》는 에이미가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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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부터 스포를 다 당한 거 같았다. 범인이 누구라느니, 한국 제목이 스포일러라느니. 그래도 뭔가 더 있을 거 같아서 보게 되었다. 이에 대한 것부터 말하면 내가 들은 스포일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나보다 먼저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여주인공 에이미를 욕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영화를 절반쯤 봤을 때는 그 사람들을 욕하고 싶었다. '왜 에이미를 욕하는 거야? 이래도 닉을 감싼단 말이야?'
그러나 영화를 다 본 뒤에는 그 누구도 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공포를 느꼈을 뿐.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영화 초반에 강조되어 나온 에이미의 부모님과 그들의 업적인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책이다.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책의 내용 및 주인공은 에이미의 부모님이 자신의 딸 '에이미'를 모델로 하여 쓴 책이지만 그 만들어진 에이미는 현실의 에이미보다 훨씬 나은 존재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책을, 책 속 에이미를 좋아하고 더 나아가 모델이 된 진짜 에이미에게까지 애정을 갖게 된다.
허상으로 받는 사랑, 보여지는데 익숙한 부모님.
그 손에 길러진 에이미 역시 보여지는 게 어떤 것인지 어떤 힘을 갖는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고 그걸 이용할 줄도 알게 된다.
남편 닉은 아내가 실종됐는데도 자꾸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과 의심에 휩싸인다. 스스로는 멋쩍어서였겠지만(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는 그걸 알 수 있지만) 실종된 아내의 사진 앞에서 미소를 보이질 않나, 사진 한 장 찍어 달라는 극성팬과 셀카까지 찍어준다.
반면 에이미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핫라인을 만들고 봉사자들을 모은다. 봉사자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닉의 모습을 에이미의 부모님은 못마땅해하고 그에 대해 불쾌함도 드러내지만 닉은 그저 봉사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뿐이라고 말하자 에이미의 부모는 납득한다.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결국 봉사자들에게, 취재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의 문제이니까.
에이미는 모든 것을 계획할 때 어떻게 보여질지만을 생각하고 의식한다. 어차피 '진짜'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자신이 '진짜' 에이미인데, 사람들은 '진짜'에 관심이 없는 경험을 온 생에 걸쳐 경험했을 테니.
TV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이 잘 속아 넘어갈 수 있을 모든 것들, 그 보여지는 모습을 만들어내는 '카메라'에 어떻게 찍힐지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실행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이 모델이 된 책을 읽고 자신의 부모님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 즉 독서를 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모금을 하고 에이미에게 애정을 표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소위 양아치 부류들에게는 그 '보여지는' 모습이 얼마나 얄팍하고 간파당하기 쉬운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사건도 겪는다.
이 사건으로 에이미는 더욱더 완벽한 보여지는 모습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닉이 어색함으로 인해 부적절하게 웃는 모습을 멀리서 TV로 지켜보는 에이미는 "저럴 줄 알았다."라고 하고 여전히 환멸 내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후에 닉이 진심으로 호소하는 영상을 보이자 에이미는 마음이 흔들려 닉에게 돌아온다. 돌아온 에이미가 애정을 표하자 닉이 말한다. 그때 그 모습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저 연기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애초에 에이미가 그것이 '진심이라서' 감동하거나 다시 닉에게 돌아오려고 결심한 건 아니었을 거다. 닉이 드디어 '보여지는' 모습을 신경 쓰고 그를 위한 노력도 하고 연기도 하기 시작했다는 게 마음에 들었던 거지.
영화의 마지막에 에이미 부부는 자신들의 '행복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을 보이며 서로가 "공범"이라고 한다.
많은 것에 대한 공범의 의미가 될 테고 방송에 나가는 전후 맥락상으로는(진실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의미는) '부모가 된다'였지만, 나는 이게 결국 '허상인 인생'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허상인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그것을 서포트해주는 부부의 연극 놀이.
에이미는 "그렇게" 양육된 지난날들에 망가진 인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국 그게 익숙한 사람이다. 심지어 "그렇게" 살면서 많은 것을 얻는 경험까지 해봤으니 놓을 수도 없고, 놓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그녀가 결혼에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보여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내려놓고 진심을 주고받는 내밀한 사랑? 그럴 리가. 그녀가 바란 것은 완벽하고 행복한 부부의 연(演, 연기하다)이었을 뿐.
-이 사실은 에이미의 독백 중 바가지를 긁는 아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거나, 그가 원하는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 부분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결혼이 그렇겠는가? 닉은 그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생활하기 시작했고 에이미는 자신의 평생에 걸쳐 쌓아가고 있는 '완벽한 연극'을 망치고 있는 남편을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 전개의 모든 원인과 결과는 단 하나이다.
'보여지는 완벽함을 위해 연기할 것.'
그렇게 양육됐고, 익숙했고, 지키고자 했고. 그것이 무너졌고, 그래서 그것을 무너뜨린 상대에게 복수했고.
그 지난한 과정의 후에 상대방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여, 에이미는 다시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에이미가 간절히 원하던 동반자의 모습일 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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