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저 나라의 저 소년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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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너무 많아진 다큐.
다큐를 통해 내가 대충 파악한 순서대로 비에른 안드레센의 삶을 나열하면 이러하다.
어머니의 실종, 그리고 자살로 추정되는 어머니의 시신 발견. 친아버지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11개월 차이 나는-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이 있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 남매는 함께 할머니 손에 자랐다.
당연히 그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있었을 테니 내성적인 소년으로 자람.
그러다가 우연히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스타덤에 오름. 내성적이었던 소년이 얼굴 하나로 감독의 눈에 들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카메라 앞에서 속옷만 입고 나체 상태로 촬영을 당하는 것이 스타가 되는 길의 첫걸음.
본인은 그것이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아 보이지만 할머니는 그런 손주를 지켜주기는커녕 떠밀었다.
성소수자들이 가득한 촬영 환경 속에서 영화를 찍고, 감독은 비에른에게 눈빛도 보내지 말라고 하는 등... 언뜻 보면 비에른을 지켜준 것도 같지만. 스텝들의 그런 욕망이 촬영에 방해가 될까봐 그런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촬영 외 시간에는 오히려 비에른은 게이들의 대상화가 되는 자리에 동석해야 했으므로.
비에른의 얼굴로 영화는 대박이 났고, 비에른의 인기도 대박이 났다. 특히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그는 먼 일본까지 가서 가수 활동까지 하게 된다.
비에른이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그랬는지...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비에른에게 알약을 한 알 줬다고 한다. 그는 그 약을 먹고 무대에 올랐고. 들뜨게 하는 암페타민 같은 거였을까? 라며 현재의 여자친구와 추측을 해본다. 뭐가 됐든 너무나 끔찍한 아동학대.
이후에는 게이 남성들이 비에른에게 엄청난 돈을 주며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고. 어려서 그것을 호의와 친절로 받아들인 비에른. 그 남성들에게는 단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려면 돈을 지불하는 게 당연한 정도의 개념이었던 거 같다.
정작 비에른은 게이가 아니므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낳았으나. 둘째(아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연사한다(아이 나이 만 3세쯤).
아이가 돌연사할 당시 비에른은 술에 취해서 그 옆에서 자고 있었다고... 당연히 죄책감은 말도 할 수 없고.
-- 나는 그가 당시에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는 그 이유와 그때 당시의 일상생활이 어땠는지가 궁금하고 더 알고 싶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
현재의 그는 집도 엉망이고 일상생활을 꾸리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던 거 같고, 그런 이유로 살던 집에서도 쫓겨날 위기였다가 여자친구와 함께 집을 대청소하고 조금 회복한 모습을 보인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년이라는 호칭을 들을만한 외모라고 생각한다. 특히 첫 만남에서의 (속옷만 입은) 그 카메라 테스트 영상을 보면... 그는 요즘 말로 데뷔한 연예인이거나 연습생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어리둥절한 상태인데도 그런 외모라니...
-- 사실 아직 비에른은 소년의 외형을 하고 있고, 야한 표정이나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님에도 나는 그 영상을 보는 게 너무 불편했다. 그의 마음은 모르겠고 그냥 불편했는데, 그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찍힌 영상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
비에른은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의 모델이기도 했다고. 그를 실제로 본 사람들이 그의 외모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 건지 짐작이 간다.
나는 이 영화(다큐멘터리)에 대한 한 줄 평을 "그때 그 시절 저 나라의 저 소년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게..."라고 썼다. 그게 가장 무서운 부분인 거다.
어휴 저때는 아동학대를 저런 식으로 했네, 무섭다. 연예인이 뭔지도 잘 모를 때 무슨 일이야. 나쁜 사람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나는 요즘 연예인/아이돌 사업도 기형적인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90년대~2000년대 초반보다는 나아진 부분이 단 하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연예인/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예전에는 어땠는가. 그저 예쁘고 잘생겼다는 이유로 연예인이 되고 스타가 되고 인기를 얻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원한 적도 없는데 노래 실력이 없다느니 연기 실력이 별로라느니 하며 온갖 욕을 먹고 무리한 스케줄에 혹사당하고... 그래서 순식간에 연예계에서/세상에서 사라진 이들도 많다. 세상에는 연예인이라는 자리가 절대 어울리지 않는 성격과 성향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연예인과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의지가 있는 이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그 길을 택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단지 예쁘고 잘생겨서가 아니라 본인 의지와 선택과 실력까지가 우선되는 분위기라서.
다만 새로운 문제는, 그 의지가 있다고 한들, 데뷔 자체의 연령이 너무 어려졌다는 점이다. 그것이 본인이 정말 원하고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들, 어린 나이의 판단력이란 말이다.
좀 나간 이야기임을 인정하고 덧붙이자면 나는 최소한 중학교까지는 정상적으로 다닌 뒤에 데뷔 '준비'를 해서 이후에 '데뷔'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다 같이 그렇게 바뀐다면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것에 급급하는 일 자체도 줄어들 것이고.
물론 어릴 때 데뷔해서 오랫동안 승승장구하고 행복해 보이는, 잘 먹고 잘 사는 연예인들도 제법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그러지 않았을, 그래서 우리들의 눈앞에서도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 연예인들은 훨씬 많았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엔터 산업의 기형적인 부분이 그때 그 시절 비에른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비에른이 스스로의 판단력도 부족하고 아직 뭘 잘 모를 때인 거야 어렸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결정적으로 그에게 좋은 보호자가 있었다면 그는 덜 아프고, 덜 힘들 수 있었을 것이다. 시작이야 어쨌든 간에 금세 그만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비에른을 지켜줄 부모가 없었고 할머니는 그를 오히려 떠밀었다.
이 또한 한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눈에 예쁜 아이가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예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그걸로 돈까지 벌어오면 좋은 거 아니냐며 그 냉정한 세계로 떠미는 부모와 보호자들. 그들도 공범이라고 생각한다.
다 떠나서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까지는 좀 지켜주면 안 되는 걸까? 남의 자식도 아니고, 자기 자식이면서.
비에른이 자신의 아들이 돌연사했을 때 느낀 충격과 상실감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냐만, 무엇보다 '자식을 지켜주지 못해서'도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들은 당하게 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물론 그건 지켜준다고, 지켜본다고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리고 어쩔 수 있음에도 어린 그들을 지켜주지 않고 사지로 떠미는 어떤 어른들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기에... 너무나 큰 씁쓸함을 안고 생각이 많아진 다큐멘터리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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