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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멜랑콜리아 (2011)

멜랑콜리아의 해피엔딩.

by 육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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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01.jpg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영화는 1부와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주인공 저스틴(커스틴 던스트)의 결혼식 이야기, 2부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 이야기.

혹은

1부는 저스틴의 우울 이야기, 2부는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의 불안 이야기.

등으로 해석되는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1부는 우울증인 저스틴을 바라보기. 2부는 우울증인 저스틴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1부

1부는 주인공 저스틴의 결혼식이다.


아주 외진 곳에 있는 언니의(정확히는 언니의 남편인 형부의) 대저택에서 이루어지는 호화로운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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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까지 가는 길은 리무진으로 가기 험난하여 결혼식의 주인공이 결혼식에 엄청나게 늦는다. 결혼식을 준비한 언니 부부는 초조해하고 왜 이렇게 늦었냐며 싫은 소리도 하지만 저스틴은 해맑게 자신이 좋아하는 말을 보러 들렀다가 입장하기까지 한다.

뭔가 이상한 저스틴의 모습. 1부 내내 느껴지는 건 '뭔가 이상하다'였다. 나는 내가 공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제삼자의 시선에서 그려내니, 그저 이상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물론 저스틴만 이상한 게 아니다. 저스틴은 콕 집어 말하기 애매한 언행을 하는데 그 언행을 하게끔 만든 스트레스의 원인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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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식에 '티셔츠'를 입고 와서 결혼 따위 안 하는 게 낫다는 축사를 하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저스틴의 엄마.

자고 가라는 딸의 부탁도 알았다고 해놓고 결국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딸의 이름도 잘못 부르는- 아빠.

재수 없고 역겨운 직장 상사.

그 직장 상사의 오더에 따라 결혼식 날 신부를 졸졸 쫓아다니며 광고 카피 문구를 생각해 내라는 직장 동료(후임?).

저스틴에게 늘 웃는 얼굴로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남편, 그러나 저스틴의 불안이나 우울을 감싸 안아줄만한 그릇은 절대 되어 보이지 않는 남편.

이 결혼식에 얼마나 돈이 많이 들었는지 아냐며, 장모님은 또 왜 저러냐며(불평한다고 변할 일들도 아닌데) 불평불만이 가득한 형부.

그나마 조카(클레어의 아들)는 귀엽고.

언니 클레어는 그래도 이 모든 결혼식을 총괄하고 책임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보이는 저스틴의 불안정하고 이상한 모습에 차라리 대놓고 "가끔은 네가 정말 싫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저스틴은 어떤가.

저스틴은 결혼식을 의도치 않게 늦고, 늦어놓고도 서둘러 들어가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말을 보러 가고. 결혼식 후 피로연에서도 중간중간 계속 사라진다. 사람들은 신부는 어디 갔냐며 찾는다.

조카가 잠투정을 하자 클레어 부부가 재우려고 하는데 저스틴이 재우러 간다(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가!). 그리고 조카를 재우면서 함께 잠들기도 한다. 중간에 욕실에 가서 몸을 담그고 있기도 한다.

결혼식이 정리되고 남편과의 첫날밤, 드레스를 벗기는 남편을 저지하고, 다시 드레스를 입고, 저스틴은 형부의 대저택에 있는 골프장을 혼자 방황한다. 그러다가 카피 문구를 얻으러 온 직장 후임?과 섹스한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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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의 혼인은 결국 결혼식과 동시에 파경을 맞이한다.


2부

2부는 클레어의 가족 위주로 보여준다. 평범한 날들을 보내던 클레어는 동생 저스틴이 우울이 심해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일단 택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한다. 오면 택시비는 자기가 지불하겠다며. 이 모든 걸 불만 가득하게 바라보는 저스틴의 형부 존.

저스틴의 상태는 심각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런 저스틴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사람이라면 당연히 힘들지), 가끔은 네가 싫다는 말을 했으면서도, 그래도 저스틴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아끼고 지키는 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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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행성 멜랑콜리아가 지구와 충돌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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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는 불안해하고. 저스틴을 좋아하는 클레어의 아들은 저스틴의 옆에서 그 소식을 읽어준다.

클레어는 그런 소식이 저스틴의 우울과 불안을 더 심화시키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고.

저스틴은 그런 것 따위에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클레어는 불안해하며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남편이 완강하게 부인하고 클레어를 저지한다. 과학자들이 예측하기로 괜찮다고 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남편 앞에서 클레어는 마음껏 불안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존도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이런저런 물품들을 준비하면서도 클레어에게는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준비를 하는 것도 있으니까.

멜랑콜리아가 지구 가까이를 지나가는(충돌의 위험이 있는) 그날이 되고 대저택의 집사는 출근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없이.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라며 이상해하는 클레어에게 저스틴은 말한다.

"마지막 날을 가족과(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거겠지."

그리고 그날은 무사히 지나간다. 원을 만들어 측정해 본 결과 멜랑콜리아는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클레어는 기뻐하고, 존은 안도한다. 존이 안도하는 걸 본 클레어는 존도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는 걸 느낀다.

이때 저스틴은? 그저 평화롭다. 클레어의 아들(저스틴의 조카)은? 큰 감흥이 없다.

하루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고 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행성이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 측정하는 도구를 들어보고, 불안한 얼굴로 사라진다.

알고 보니 멜랑콜리아는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걸 깨달은 존은 클레어가 사 왔던(사 올 때 비웃었던) 수면제를 혼자 모두 먹고 자살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클레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행성이 멀어지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차 그 도구를 들어보고, 멜랑콜리아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혼비백산한다. 다급하게 남편을 찾는데 남편은 이미 죽었다. 클레어는 마구간에다가 짚으로 남편을 덮어두고, 말 중 한 마리를 혼자 내보낸 뒤 저스틴과 아들에게 '남편은 말 타고 시내 나갔다'고 거짓말을 한다.



클레어는 불안해서 미쳐버린다. 정말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구나. 어떡하지. 우리 아들은 아직 어린데 어떡하지. 저스틴 너도 뭐라고 좀 해봐.

저스틴은 평화롭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나는 다 알고 있었어. 결혼식에서 콩 개수도 맞췄잖아? 나는 다 알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아.

결국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충돌하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클레어는 저스틴과 자신의 아들과 함께 골프장 잔디밭에서 셋이 손을 잡고 모여 앉아 지구의 종말을 받아들인다. 이때 저스틴도 아이도 평화롭고 클레어만이 몸을 가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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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나는 이 영화의 한 줄 평을 '멜랑콜리아의 해피엔딩'이라고 썼다.

1부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스틴의 결혼식이다. 그리고 결혼은 보통 사랑의 해피엔딩이기도 하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내면이 무너진 이의 결혼식이란 어떤 느낌일까,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행복해하고, 행복해야만 하고, 특히 신부는 절대적으로 행복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는 사랑의 해피엔딩 결혼식이 주는 압박감. 나름 최선을 다해 사회적 역할을 다 해내려고 최대한의 연기력을 쥐어짜내보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은 저스틴의 결혼식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결혼식이니만큼 1부에서는 너무나 바글바글하던 사람들이 2부의 결말부에는 단 세 명만이 남는다. 저스틴, 저스틴의 언니, 저스틴의 조카. 왜일까? 이에 대해서는 저스틴이 자신의 입으로 답을 말했다.

"마지막 날을 가족과(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거겠지."

마지막 순간 이전까지 보았을 때 저스틴에게 진짜 애정을 주고, 저스틴도 그 진짜 애정을 받아들인 사람은 단 저 둘뿐이었다. 저스틴의 부모조차도, 결혼을 약속했던 남편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게 저스틴이 진짜 애정을 주고받은 대상들과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저스틴에게 진정한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해피엔딩이란 결국 저스틴의 소망과 상상 그 어디쯤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안 되는 시대, 환경도 아니고 이미 앞서 클레어나 클레어의 아들이 행성 충돌 소식에 대해 찾아보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클레어는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고 차라리 집안으로 숨거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행성이 다가온다는데, 지구가 종말 한다는데, 아빠는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는데, 엄마가 울고불고 불안해서 미쳐버리려고 하는데... 도 저스틴의 조카는 울지도 않고 그저 평화로운 모습을 보인다.

저스틴이야 모든 것에 환멸 나서 평화로운 심신을 유지했을 수는 있지만 아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다만, 그 어린아이가 괴로워한다면 그건 저스틴에게 해피엔딩일 수 없었을 것도 분명하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인간은, 세상은 자세히 볼수록 구리다.

다 사라져버리고 멸망해버려도 괜찮을 만큼… 그것이 우울이겠지.


나는 너무 괴로워.. 살고 싶지 않아. 그런 나에게 최고의 결말은 뭐겠어?

나 혼자 자살하는 거? 아니, 지구의 종말로 다 죽어버리는 거.

대신 그 순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거.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언니에게 무력하게 경제적, 신체적으로 모두 의지해야 했던 내가, 이번엔 내가, 의지가 되어주는 것.

그럴 수 있다면 지구 따위 인류 따위 다 사라져도 괜찮아, 그럴 가치 없어.


이것이 Melancholia이다.

멜랑콜리아09.jpg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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