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 관한 가장 적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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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바로 봤었다. 그리고 그때 기록한 나의 한 줄 평이 "첫사랑에 관한 가장 적절한 이야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후 이 영화에 딸린 논란들 때문에 내가 영화를 제대로 못 봤나 싶어서 말을 아꼈는데 드디어 다시 봤고 나는 그때도 제대로 봤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여자인 서연(수지-한가인)의 입장을 생각해 주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승민은 집이 넉넉하지 못한 편이고, 서연은 승민보다는 약간 여유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넉넉하진 않은 것 같다. 제주도 출신에 학원 출신으로 서울의 음대에 진학한 배경이었고 서연은 대학에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비교당하고 스스로도 비교하며 어떤 열등감을 느꼈음이 짐작된다.
그러니 그 부유한, 서울의, 강남의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재욱 선배가 승민의 짭게스티를 비웃을 때 같이 웃었던 것이다. 웃으면서 부정하고 싶었을 테니까. 서연도 그만큼 어렸으니까(승민도 어렸다. 다만 승민만 어린 게 아니다). → 그리고 이 순간은 승민의 입장에서는 서연이 재욱 선배를 좋아한다고 확실하게 오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세계를 동경하다 못해 강남 패밀리에 끼고 싶어서 강남에서 자취까지 하게 됐지만, 서연의 자취방은 반지하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세계에 끼지 않는다면 평범한 정도였을 서연도,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리를 해야 하는 정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승민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연을 생각해 보면, 승민은 서연을 예쁘다고 생각했고 같은 동네인 게 신기하고 반가웠겠지만 결국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간 건 서연이었다. 그랬다면 서연도 승민을 처음부터 좋게 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리해서 동경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지만, 결국 승민과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나누며 추억을 쌓고 그러면서 알게 됐겠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조건 좋은 재욱 선배가 아니라 승민이라는 것을. 그리고 승민이가 서연을 향한 마음을 대놓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다면 서연도 승민 앞에서 승민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둘 다 어렸잖아...
문제의 술자리에서 서연은 승민에게 연락하느라 공중전화를 붙잡고 있었고 그런 서연에게 먼저 선배가 다가왔지만 서연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걸 승민은 몰랐으니 오해할 수 있어도 관객은 이걸 다 봐놓고 오해하면 안 되는 거다... 또한 이후에 재욱 선배가 걔를 따먹었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 것도 아니며 재욱과 서연이 다정하게 다니는 모습 또한 안 나온다! 서연은 그날 밤 거절했음이 짐작된다.
그러니까 승민에게 찾아가고, 연락하고, 첫눈이 오는 날 만나기로 한 날에도 꿋꿋이 예쁘게 화장하고 기다린 거 아니겠냐고... 서연이 첫눈 오는 날 약속 장소에서 승민을 기다리는 모습 보는데 나는 눈물이 차올랐다. ㅋㅋㅋ 여자에게도 첫사랑이 있다고...
물론 그 뒤에 승민도 오긴 왔었음이 짐작되지만(CDP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음), 오해였음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고 한들 자기가 별 볼일 없다고 느껴져서 연락을 안 했겠지... (그리고 군대 갔겠지...)
서연의 입장에서 서술하면 (한가인이 소리 지르며 말했듯이) 서연의 첫사랑은 승민이었고, 그리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유도 모른 채, 오해할 건더기조차 없이 처참하게 첫사랑이 끝났다. 조건 같은 거 상관없이 좋아하게 됐던 첫사랑이 그렇게 끝났으니 조건을 쫓아 결혼했으나, 역시 조건을 쫓은 결혼이라 이혼을 하게 됐을 거 같고 그러니 더욱더 첫사랑이 생각났겠지... 승민보다 서연의 입장에서 더 궁금하고 미련 남고 그랬을 거다. 그러니 서연이 찾아간 것이고.
승민이 결혼을 엎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짜 현실적이고 적절한 첫사랑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거기가 승민의 자리이고, 제주도 아버지 옆이 서연의 자리이므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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