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온글샘 Mar 20. 2024

계절의 길목에서

봄을 준비하는 마음

   겨울 강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는 입춘, 우수도 지났다. 그런데 어제부터 흩날리던 눈이 밤새 온 세상을 

하얀 이불로 덮어버렸다. 마치 한겨울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겨울이 뭔가 아쉬워 막바지 시샘을 하는 걸까. 아직은 2월인데 절대적인 자연의 질서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겨울왕국처럼 내려주는 눈이 내 삶의 길목에서 봄을 미리 준비하라고 주는 예시 같은 선물일지도.





    몸과 마음이 잠깐 이완되는 시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시간은 언제나 여유롭다. 같이 동행한 지인 중 한 명이 요즘 나의 일상에서 구멍 나 있는 부분은 없냐고 물으신다. 구체적으로 요즘 일상에 힘든 점은 없는지 물으신 것 같다. 요즘 복잡한 내 심경을 그 분은 그새 눈치 채고 계신 걸까. 예를 들어 남편, 자녀, 직업 등에 관한 고민이 있는가를 다시 질문하셨는데, 망설임이 응답했다. 전부 다 라고.


   온 세계가 마치 자신의 놀이터인양 천방지축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인 딸, 요즘 전형적인 MZ 세대 진열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아들이 그랬다. 또 나의 요즘 상황조차도. 저녁에 남편과의 산책길에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한참 듣고 있던 남편이 “엄한 나한테까지 불똥이 튄 거냐”며 서운하다는 눈치다. 남편까지 고민거리에 모조리 몰아버렸으니까. 미안했다. 나를 위로해 주고, 최대 지원군은 남편이었는데...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일기장을 펴 놓고 한참을 끄적인다. 그냥 걱정거리를 달고 살았는데, 하나씩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그 끝에서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 내 생활에 구멍 난 부분 중 제일 큰 부분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걸 왜 지금서 깨달았는지. 내 인생인데 주인공처럼 살지 못한 그런 감정이 밀려오면서 외로움으로 슬며시 밀물처럼 다가왔다. 그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 고립되거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많아서 발생하는 감정은 아니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한 것도 큰 원인이 아닌가.



  흔히 나이 오십이 넘으면 인생 절반이 지났다고들 한다. 반백 살, 아마도 백세 기준으로의 의미이리라.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겠지만, 다른 방향으로는 변화하기 시작하는 일종의 변곡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에게도 인생의 오후가 시작된 지는 한참 되었다. 몸도 건강하고 전문성도 최고점인 지금, 나의 가치는 그대로이고, 마음도 아직은 청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지 않다. 사회가 보는 나의 가치가 급락한 듯하니 스스로 가치와 큰 차이가 생겼다. 모르겠다. 혹시 이것이 현실과 이상의 거리일지도. 


   요즘은 많은 고민을 마음에서 꺼내 글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문이 열렸고, 적지 않게 변화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멀었나 보다. 어쩜 난 지금껏 무지개만 보길 꿈꾸었던 건 아닐까.  이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잘 견디고, 순리와 순응의 자세로 잘 참아 내리라. 아니 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비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궂은 비, 늦은 비, 이른 비도 나름대로 단비가 될 것이다. 흐린 날씨에도 잘 참아냈을 때, 어느 순간 환하게 선보이던 무지개는 얼마나 찬란했던가.



   계절의 길목에서 다시 눈길을 걸었다. 가슴 뛰는 오늘을 위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해 보면서. 남을 탓하기보다도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도. 설사 그로 인해 어떤 일들이 조금 늦춰지면 어떠하랴. 잠시 여러 일이 진행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봄이 멀지 않은 이 길 위에서 나를 돌아보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나름대로 고유하게 지속될 나다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므로.


                                                                                                                                                                                                                                                                24년 2월 끝자락에서



                    

작가의 이전글 아직 못다 핀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