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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글샘 Mar 06. 2024

아직 못다 핀 꽃

프리지아 한 다발이 가져다 준 봄

  기나긴 겨울이 지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아직도 찬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밖에 날씨와는 다르게 내 책상 위엔 진노랑 꽃향기가 그득하다. 자신의 화사함을 뽐내는 프리지아 덕분에 봄이 금세 찾아온 느낌이다. 이렇게 순식간에 내 마음도 새 옷을 갈아 입은 듯이 달라지다니. 스스로 놀랐다. 마치 내가 프리지아 꽃망울이 된 듯.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프리지아 한 다발을 선물 받았다. 꽃 선물을 받아본 지가 언제더라. 결혼하고 나서 꽃을 사온 남편에게 꽃 말고 실용적인 선물이 좋다고 해서인지, 연애할 때 말고는 꽃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얇은 포장지에 담긴 프리지아는 향기가 엄청났다. 많은 꽃들 중에서도 유독 프리지아를 좋아하는 걸 알았을까. 신기했다. 노랗게 숨 막히는 예쁨도 그렇지만, 아주 강하지도 않으면서 은은하고 상큼한 향기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힐링효과가 담겨있으니까.


   프리지아 골드리치의 꽃말은 영원한 우정을 비롯해서,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졸업식 꽃다발의 대사명처럼 축하선물로 많이 하고 있는듯하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이 꽃 선물이 나에게 마법가루를 뿌려주는 것 같았다. 어깨를 누르던 알 수 없는 무거운 기운들이 싹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자꾸 눈꼬리는 내려가며, 입꼬리는 올라간다. 나 혼자 기쁨에 주체할 수 없는 이 기분은 뭘까. 



  지인은 프리지아 꽃을 오래 보라고 봉오리가 꼭 다문 게 많은걸 샀단다. 처음에 꽃망울들이 하루 이틀 물을 마시며 시간 차이를 두고 화사한 꽃이 살포시 피기 시작했다. 좋은 향은 덤으로. 안개꽃이나 다른 소재를 함께 매치하는 것도 좋지만, 프리지아만으로도 라인이 예뻐 자꾸 보게 된다. 며칠을 프리지아와 동고동락하며 볼 때마다 변하는 활짝 핀 사진을 찍어서 그녀에게 보냈다. 하트 모양이 된 프리지아 다발도 보내주었더니, 내 사진 위에 답 글이 왔다.‘꽃 피우는 그대가 바로 봄’이라고. 순간 가슴이 뛰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봄비도 내리고 봄눈도 내리는데, 하루하루 변해가는 프리지아 한 다발에서 새로운 의미를 되새겨본다. 직접 선물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쁘게 만든 아직 못다 핀 꽃을 보며, 좋은 에너지 가득 채워지는 행복함에 활기차다. 화려하진 않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여린 꽃들은 이렇게 수줍게 피어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삭막하게 산 내 눈에는 그들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앙다문 꽃망울을 보면서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나의 색깔은 얼마나 선명하게 채색되고 있는지. 가끔 자책하며 나를 다독이듯 꾸짖는 자신에게 얼마나 따스한 눈빛으로 다가서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지. 더 용기를 내어 품위를 갖춘다면, 내게서는 어떤 인품의 향기가 뿜어져 나올지도. 그렇다. 여린 꽃대 같은 자신을 이젠 우선 사랑하며 품어야겠다. 그윽한 눈빛으로 관심을 쏟는다면, 곧 기다리는 그날도 다가올 것이다.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처럼 내 꿈도 현실로 다가와 봄바람에 가끔 흔들리더라도 꽃은 피우리라.


   잠시, 지인의 정감과 프리지아 꽃다발에 뭉클했다. 아직 못다 핀 꽃이 나를 쳐다보듯이, 애처롭게 꽃대와 꽃망울을 보면서 다가섰다. 다시 그 향기도 은밀하게 맡아본다. 봄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지금, 꽃잎들이 하나 둘 춤을 추며 터져 나오는 것처럼, 겨우내 멍들었던 내 마음도 프리지아 꽃말처럼 머잖아 우리에게 올 새롭고 희망찬 봄을 맞기 위하여 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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