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조율
가끔이라도 좋다. 내 속에서 울리는 진실한 소리를 듣고 싶다. 내 어깨에 찬란하게 빛나던 시간이 무게만 얹고, 결국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듯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그런 것일까. 바람에 흔들려도 더 단단해지는 대신, 때로는 깎이고 부서지며 작아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당당했던 내가 요즘은 자신감을 잃으며 흔들리는 음정으로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저마다 겉으로 보면, 모두 벌거벗은 듯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나 자신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그 무게는 때로는 책임감의 형태로, 때로는 상실의 그림자로, 혹은 과거가 남긴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억누른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점점 더 위축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예전에는 유머 한 마디로 가볍게 넘겼던 말들이 요즘은 마음 깊은 곳에 상흔을 남기곤 한다. 마치 무딘 칼로 긁힌 자국처럼, 말 한마디가 자존감을 잠식하고,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드는 순간이 많아졌으니.
대화는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꺼내 보이는 과정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대편에게, 아니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거나 웃어주는 일이 대놓고 불편해졌다.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언제 금이 갈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 채. 잘못 들릴까, 어긋난 감정을 읽힐까, 두렵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나를 볼 때면,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느껴진다. 내가 하고픈 말을 숨긴 채.
어릴 적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울 때, 선생님께서 늘 하신 말씀이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소리가 깨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흐리멍덩해진다“라고. 그렇다. 적당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게 음악을 살리는 비결이듯이. 당시에는 그 말이 단지 바이올린 연주를 위한 충고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지나치게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반대로 포기한 채 느슨해지면,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다.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위축되는 일이 많아진 건, 아마도 나 자신이 내면의 균형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삶은 완벽해 보였고, 나의 모습은 그들의 반짝임 앞에서 초라해 보였다. 그 속에서 느낀 불편함은 나 자신이 조율되지 않은 채 긴장만 품고 있었기에. 상대적 빈곤, 무의식적 비교는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걷는 것처럼 나를 더 지치게만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겪으면, 더 단단하게 될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가지 한 가닥은 붙들고 싶었다. 작아지는 나를 부둥켜안으며...
최근에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나의 강점과 약점을 솔직히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려는 노력이었다. "충분히 잘하고 있어." 긍정적인 힘이 솟을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남들과의 비교 대신, 나만의 속도와 리듬을 찾는 길이다. 제대로 된 조율이 중요했다. 마치 바이올린 줄을 조율하듯이, 생활인으로서 적절히 긴장과 이완의 부드러운 조율이 아닌가.
어쩜 저무는 해가 더욱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진실이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을 담느냐에 달렸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대화는 더 이상 경쟁이 아니었다. 내 마음에 여유 공간을 인정할수록 상대의 말이 제대로 들렸다. 그 대화 속에서 나의 음성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로소 내가 불안정의 무게에 중심을 잡은 것이다.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조율하리라. 이젠 매 순간 나의 멜로디를 연주하며, 내 안의 위축과 싸우는 대신 그것을 포용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수시로 들리는 소리를 나와 접속하면서. 그 사이에서 나만의 리듬을 진지하게 맞춰야겠다.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음정을 하나씩 찾는다. 비록 나만의 교향곡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것이 나의 진짜 소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