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까지 차오른 고요한 행복을 들여다보다
산책길, 문득 시선이 멈춰섰다.
인도 틈새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 자리에 조용히 피어 있는 모습은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 작은 생명을 한참 바라보았다.
누구도 가꾼 적 없는 자리, 돌 틈 사이 얇은 흙 위에서 태어나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그 모습은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쯤이면 괜찮지 않아?”
그 순간, 오랜만에 ‘만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안에서 자꾸만 사라지고 미끄러지던 감정, 손에 잡히지 않던 어떤 상태.
나는 과연 만족하며 살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을 갖춘 하루 끝에서야 비로소 한숨 돌리며 ‘이 정도면 되었다’는 말을 허락하는 나.
그러다 보니 만족은 늘 ‘다음’으로 미뤄놓는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 나는 자꾸만 불만족의 강물에 발을 담근 채 살아가는 기분이다.
고요히 스며드는 물결이 아니라, 자꾸만 높아지는 파도처럼
내 안의 공허를 적셔온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은 점점 약해지고,
채워야 할 일과 채워지지 않는 감정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그렇게 숨을 몰아쉬다 보면 문득, 내가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조차 잊는다.
그러다 어느 날, ‘만족’이라는 단어의 한자어가 문득 떠올랐다.
滿足(만족)
‘찰 만’에 ‘발 족’.
‘가득 참’은 익숙했지만, ‘발’이 왜 쓰였을까?
왜 하필 가슴도, 손도 아닌 ‘발’일까?
이 단순한 조합은 나에게 조용한 울림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만족을 언제 느끼는가.
모든 것이 다 채워졌을 때? 더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얻었을 때?
어쩌면 그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삶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마치 바닷물로 목을 축이려는 것처럼, 갈증만 더해간다.
반대로, 발목까지 차오른 정도의 기쁨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자주 고요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만족은 어쩌면 높은 곳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발목이라는 가장 낮은 지점,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
그곳까지라도 행복이 스며들었다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꽃 한 송이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존재하며 계절을 채운다.
꼭 커다란 무언가가 되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나는 만족하고 있는가를.
그 물음 앞에서 쑥스럽게 웃고,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인다.
내 발목까지 차오른 고요한 행복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