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의 재해석

'똥광'의 아이러니

by 박경이

어릴 때부터 ‘화투’라는 단어는 내 삶의 문장 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낯설고, 어딘가 금기어처럼 느껴졌기에.

그도 그럴 것이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우리 앞에서 화투를 치시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명절에도, 친척 모임에서도...
고작해야 가족이 둘러앉아, 말 네 개 굴리는 윷놀이만 있었지 알록달록한 패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화투는 내게 늘 남의 세계였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단체 속에서 화투를 치는 풍경을 보았다.
모두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내가 더 어색했다.
마치 다들 모국어로 이야기하는데 나만 자막을 찾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마주침은 결혼 후, 남편의 본가인 시댁에서였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익숙한 일상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화투를 치는 모습은 놀랍기까지 했다.
웃고, 구박하고, 계산하고, 다시 웃고...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묘하게 따뜻해 보였다.


그렇다고 결혼 후에도 내가 화투를 즐기게 된 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게임’이란 고작 아이들과 하는 보드게임 정도였다.

요즘도 여전히 하고 있는 루미큐브.

숫자를 맞추며 괜히 인생의 질서까지 세워보는그 단정한 게임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방 청소를 하다가 제주도에서 재미 삼아 사두었던 화투 한 벌을 발견했다.

기존 화투 그림이 아니라 조금은 다르게, 조금은 귀엽게 그려진 화투였다.


“이건 기존 화투가 아니라서 더 헷갈려.”

남편의 그 말이 어쩐지 웃음이 났다.

나는 기존이든 아니든 애초에 다 헷갈렸으니까.

카드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고 그 덕에 나는 한동안 ‘짝 맞추기’에만 바빴다.

그림은 그냥 그림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계절이었고, 절기였고, 자연의 기록이었다.


1월부터 12월까지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달이 뜨고 새가 날고, 나무가 서 있었다.
화투는 마치 작은 카드 안에 사계절을 접어 넣은 포켓 사이즈의 달력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화투가 갑자기 달라 보였다.



특히
11월, 사람들이 ‘똥’이라고 부르는 그 패.

‘똥광’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듣고 나는 웃다가 곧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똥’의 정체는 오동나무였다.


봉황이 깃든다는 나무, 왕실과 귀함의 상징.

그러니까 이름은 똥인데 신분은 귀족 카드인 셈이다.

얼마나 인생 같은가.

겉으로 들리는 이름 하나로 가치를 판단해 버리는 세상.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가장 귀한 의미를 품고 있는 존재다.




화투가 그제야 도박의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의 묶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늦게 이해했을지도, 혹은 지금이라서 이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을 땐 그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면 전혀 다른 얼굴로 말을 걸어온다.

이름 때문에 오해받고 겉모습 때문에 평가절하되었지만
그 안에 계절을 품고 있던 화투처럼.

한 장 한 장 뒤집어 보기 전까지는 그 카드가 광인지, 피인지 알 수 없듯 삶도 그렇다.

어쩌면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패가 가장 늦게, 가장 조용히 귀한 의미를 건네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