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는 선물

올해도, 멈추지 않기로 했다

by 박경이

운동과 거리를 둔 지 오래다. 운동신경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는

늘상 꼴찌를 면치 못했다. 줄넘기 기록 역시 누구에게 자랑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운동이 아니라, 실패하는 나 자신을 먼저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으려는 성격 탓에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을 때까지 미루는 데 익숙했다.

수영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그랬다. 물속에서 기본기를 혼자 익힌 뒤에야 비로소 강사에게 배우는 용기를 냈으니까.




작년 초, 나의 목표 중 하나는 탁구를 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해야지”라는 말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자주 미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어느새 한해의 일 분기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이 내게 말을 건넸다.

오전 시간에는 아파트 탁구장이 무료로 개방된다는 이야기였다.

부부가 매일 나와 탁구를 치는데, 나도 한 번 나와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순간 망설였다.
낯선 도전 앞에서 나는 늘 작아졌고, 이번에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삼키려 했다. 탁구채를 잡아본 적도

없는 내가 괜히 민폐만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작년의 목표를 이대로 흘려보내도 괜찮을까...'

그렇게 큰마음을 먹고 탁구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공간은 낯설었지만,

공기에는 묘한 생동감이 흐르고 있었다.


지인은 기본기를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처음 탁구채를 쥔 손은 어색했고, 탁구공은 어디로 튈지 몰라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이 조금씩 잡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내가 집중하지 않아도 공을 계속 보내주는 공 머신의 존재였다. 맞은편에서 쉼 없이 날아오는 공, 탁구대에 부딪힐 때마다 들리던 ‘톡톡’ 소리는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머릿속에 엉켜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탁구는 운동이라기보다 놀이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땀을 흠뻑 흘리며 움직이는 시간이 이렇게 좋았던가.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세상 처음으로 탁구채를 잡아본 그날 이후, 탁구공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작은 공 하나가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붙잡아 둘 줄은 몰랐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나 스스로를 위해 특별히 한 일이 많지는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은 늘 뒤로 밀려 있었다. 그런데 이 탁구라는 작은 도전이 내게 뜻밖의 선물이 되어 주었다. 익숙하지 않기에 더 설렜고,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탁구장에서 시작된 변화는 그 해로 끝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느낀 설렘과 성취감은 단순한 운동의 재미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꿔 놓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용기, 잘하지 않아도 계속해도 된다는 믿음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올해도 나는 탁구를 계속하려 한다. 더 잘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서다. 작년의 땀방울이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었음을, 올해의 시간들로 증명해 보고 싶다. 탁구장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이 앞으로도 내 삶에 새로운 문을 열어 줄 것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