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말을 걸어온 날

겨울 틈으로 스며든 빛이 닿은 자리

by 박경이



사계절을 한꺼번에 건너온 하루다.

겨울은 오늘, 말 대신 몸으로 먼저 다가왔다.

아침 창밖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하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햇빛을 밀어 넣었다.

눈과 비의 경계에서 망설이던 하늘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변덕을 부렸다.

마치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처럼.





거실 안에는 차가운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창을 통과한 햇볕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리창을 넘어온 빛은 바닥 위에 오래 머물며 공기를 천천히 데웠다.

마치 겨울 한복판에 잠시 허락된 착각처럼.

난방도 아닌데 온기는 물결처럼 번져 거실 한쪽 끝까지 밀려갔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 아지랑이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간만의 영상 날씨로 밖으로 나서기 전, 옷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코트로는 마음이 시릴 것 같고, 패딩은 오늘같은 온도를 앞질러 가는 것 같았다.

결국 얇은 니트 위에 외투 하나를 더 걸쳤다.

덥지도, 춥지도 않기를 바라는 선택.


오늘의 날씨처럼, 내 마음도 딱 그 정도의 온도를 원하고 있었다.

햇빛이 비치는 길에서는 봄을 잠깐 빌려온 사람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유리창에 부딪혀 튕겨 나온 빛이 생각보다 따뜻해

괜히 한 번 더 고개를 들게 했다.


하지만 그늘로 들어서자마자 겨울은 망설임 없이 본색을 드러냈다.

손끝이 먼저 반응하고,목도리는 이유 없이 한 번 더 여미어졌다.

겨울은 늘 그렇다.

방심한 틈을 정확히 알고, 그 순간 말을 건다.

아직 나는 건재하다고.





오늘의 겨울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온도와 빛, 그리고 옷차림으로 조용히 존재를 증명했다.

그래서 더 또렷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계절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을 그대로 안고 있다는 것을.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의 마음도 이와 닮진 않았는지...


특별한 사건은 없고, 꺼내 들 만한 감정도 없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이사이에 진눈깨비처럼 흩어지는 마음과

잠깐 스쳐 가는 햇살 같은 여유가 섞여 있다.

모두 지나치기엔 아까운 온도들이다.

오늘은 겨울이 나에게 몸짓으로 말을 걸어온 날이었다.

서두르지 말라고,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너무 앞서 불러오지 말라고.

지금 이 애매한 온도와 빛마저 살아 있는 계절로 통과하라고.

그래서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겨울이 아직 곁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