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12월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한다. 올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지나왔는지 돌아보고, 새해에는 어떤 일을 기대하는지 생각하고 글로 써본다.
그러나 한 번의 끝이 더 기다리고 있다. 매해 2월이 되면 올 한 해 함께 했던 학생들과 작별을 해야 한다. 1월이 되면 새해의 새로움과 기대보다는 곧 다가올 이별에 대한 슬픔이 스멀스멀 몰려들기 시작한다. 속이 쓰리고 불안증세가 시작된다. 마음이 우울하고 감성 모드로 바뀌게 된다.
올해 아이들은 유난히도 나를 좋아했다. 적극적으로 팬클럽을 형성해서 나를 덕질했다. 내가 열심히 가르친 것도 있긴 한데, 실은 아이들이 착해서 나를 좋아한 거다.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들을 만나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가끔 외부에서 강사 선생님이 수업을 하러 들어오시면 아이들이 담임선생님 칭찬을 엄청한다면서 놀래시곤 한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아이들의 합창 대답 "우리 선생님이랑 함께 있을 때요!"
물론 학생들과 행복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교사에게도 고충이 있다.
다만 그 고충이 꼭 교사라서 겪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등이 있다. 그리고 수당을 받음으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있는 직장이라면 어디든지 어려움은 있다. 그러기에 그 어려움과 힘듦을 불평하고 탓하기보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일도 많다. 나의 말과 행동이 학생들에게 줄 영향력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가끔 교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혹은 그 학생의 학부모님들이 요즘 교사하기 어떻냐고 물어보신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 같지 않고, 학교폭력도 많이 일어나는데 교사라는 직업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그동안에 있었던 많은 사건들이 생각난다. 나도 여러 종류의 학폭을 겪어 보았고 학부모와 갈등이 있어보았고 아이들의 사랑과 이해를 받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은 통한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세상에 쉬운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내 주위에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을 계시지만, 쉬운 직업은 하나도 없다. 다들 힘들다. 교사도 그럴 뿐이다. 다만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침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어렵고 재미없는 교육학 공부를 감당할 수 있으면 의미와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귀한 아이들이 있다.
2월 말, 새로운 학년과 반을 배정받으면 학년에 맞게 교실을 꾸미고, 교실 경영방법을 정하고, 교육과정을 짜고, 시간표를 조정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수시로 회의를 한다. 종종 두려움에 시달리며 내가 올해 학생들을 잘 이끌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잘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해한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책상과 사물함에 이름을 붙이며 너는 어떤 아이일지 상상해 본다. 3월이 되어 학생들을 만나고 얼굴을 보면 낯설지만 반갑다. 너였구나. 이름만 봤는데 그게 너였구나. 4월 정도 되면 학생들은 나를 알고, 나는 학생들을 알며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이 짐작되는 사이가 된다.
가끔 아이들이 너무 걱정될 때가 있다. 집에서 이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전화로라도 상담을 한다. 부모님의 애정이 듬뿍 어린 목소리를 듣고 나면 안심이 된다. 사랑받고 있구나. 너의 어려움을 알고 계시는구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참 심란하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왕따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연예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한 번은 심성은 착한데, 공부는 안 하고 열 명이 넘는 여자아이들과 연예하는 남학생들이 걱정이 되었다. 학교 담을 넘어 다니고,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그 아이들이 너무 걱정이 되어서 부장님께 이야기를 했다.
"이 아이들이 커서 제자리를 찾아갈지 걱정이 돼요."
그러자 부장님이 대답하셨다. "사춘기라서 그래. 괜찮아.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그 대답을 듣는데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그렇구나. 사춘기라서 그렇구나. 제자리로 오겠구나. 다행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이 책은 책 제목만 봐도 위안이 되었다.
온갖 종류의 다양한 사건 속에 지지고 볶다가 여름 방학을 맞이한다. 중간중간 학교에 출근해야지만 그래도 첫 1-2주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서 신이 난다.
하지만 겨울방학은 조금 우울하다.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걸 느끼기 시작해서이다. 연말이 되면 안 좋았던 기억은 다 사라지고, 좋았던 기억만 남아서 헤어지기가 싫다. 왠지 3월에 만날 새로운 아이들과는, 올해 아이들과 같은 깊은 애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올해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고 내년에도 같이 하고 싶다. 하지만 2월은 다가오고 헤어질 수밖에 없다.
3월이 된다. 새로운 아이들. 내가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잘 도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다. 겨울 방학이 되면 또다시 헤어지기가 싫고, 내년에 만날 아이들과는 올해 아이들 같은 깊은 애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 또다시 슬프다.
그리고 3월이 되면 다시 새로운 아이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 아마도 올해도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다 알고 있음에도 종업식에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올해는 학교도 바뀐다. 혹시 울까 봐 마음을 굳게 다지고 다졌다. 마지막 인사는 환하게 웃고 두 손을 흔들며 "우리 또 만나요."로 했다. 마지막 하교지도를 하는데, 교문 앞에서 한 남학생이 집에 가지 않고, 다시 나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 제 이름은 심*훈이예요. 제 이름 잊으면 안 돼요!" 아이는 다시 교문을 향해 나가며 몇 번이고 뒤돌아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니.
지금은 이별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오지 못할 수도 있는 교실을 꾸미고 있다. 대면 수업과 원격수업을 둘 다 준비하느라 할 일이 많다. 이 시간이 흐르면 곧, 너와 나는 만날 것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 시간들,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