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 시작

엄마고래 숨쉬기

by 해이나


고래는 바다에 살고 있지요? 그러면 고래는 어류인가요? 아니지요? 포유류 입니다. 저는 사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세상에 산다고 물고기가 아닌거 같아요. 사람도 포유류 같아요. 고래는 숨을 참을 때와 숨을 쉴 때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숨을 참을 때 잘 참고 숨을 쉬어야 할 때 잘 쉬어야지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괜찮게 살 수 있는 거 같아요.




김창옥 교수님의 유투브 강의 일부이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숨 쉬러 올라 온다.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숨을 좀 쉬어 보려고 한다. 감히 이렇게 써도 되나 싶지만, 그려러고 한다.


아주 오랫동안 해야만 하는 일들을 열심히 했다. 시켜서 한 것도 있고, 책임감 때문에 하기도 했고, 먹고 살기 위해서 하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나의 욕구와 판단은 뒷전이었다.


희생을 강요당해서는 아니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도록 몰아친 것은 나 자신이었다. 학창시절에는 누구에게도 폐끼지않고 독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직장인이 된 후에는 실력있고 부끄럼 없는 교사가 되기 위해, 직장맘이 되고 나서는 자녀들이 애정결핍에 걸리지 않게 하려고,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려고 나의 모든 관심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당연히 피곤하고 잠도 못자고 피부는 푸석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은 한밤중에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있는 시간 정도. 커피의 카페인은 각성 작용을 못한지 꽤 된다. 난 하루종일 커피를 달고 살았지만,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잘 수 있었다.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왔다. 그 또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남편에게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거나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나의 인생이고 나의 선택이다. 난 내가 한 선택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마음을 먹고 또 먹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면, 친구를 만나게 되면,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 수다라도 떨게 되면, 은연 중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놀아도 되나?


그 시간이 모두 힘들었거나 헛되다는 것은 아니다. 나를 잘 따르고 공부가 재미있어졌다는 학생들 앞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렸다.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 있고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된 시간을 견디고도 남는 행복을 주었다. 누구나 그렇듯 어려울 때도 있었다. 자녀 문제, 직장문제, 가족 문제, 돈 문제, 집 문제.... 그러나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숨이 쉬어지지가 않아 한숨을 쉬듯 크게 들이 마시고 크게 내쉬어야했다. 주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증상이 심해져서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가 되었다. 종종 손발이 떨려서 누워있어야 하기도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슬프기도 하였다. 병원에서 심장검사와 폐검사를 받아보았는데 정상이었고, 심리적인 요인이 있다고 분석하셨다.



김창옥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잠수를 너무 오래동안 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해서 숨쉬는 법도 잊어버린 듯 했다. 14살 이후로 바빴던 삶. 이제는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망설여진다.

집에 문제가 있으면 출근해서 일하며 잊었다. 직장에서 문제가 있을 때 집에 와서 자녀를 보며 잊었다. 오랫동안 유지한 이 균형이 깨지면, 한 생활의 무게가 나를 망가뜨릴거라는 염려가 생겼다.

망설이고, 고민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더이상은 어렵네. 딱 6개월만, 6개월만 쉬어보자. 이제 잠수는 그만하고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좀 쉬어보자.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딱 6개월만, 아침 8시20분부터 오후 3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내가 나에게 허락한 나만의 시간, 숨쉬는 시간이다. 게을러지지 않을까,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몇가지 다짐 목록을 세워본다.


운동하기, 날마다 만보 이상 걷기, 독서, 공부하기, 큐브 맞추기, 피아노연습하기, 그리고 일기쓰기


이제 엄마고래, 숨쉬러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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