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일 년에 두 번씩 가는 소풍의 단골 장소는 40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 뒷산이었다. 당시에는 고속버스를 대절해서 현장학습을 가는 일은 없었다. 뭐 어떠랴. 소풍 아닌가!
소풍날 아침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오늘이 맞는지, 내가 다른 날짜를 착각한 건 아닌지 몇 번이고 확인을 한다. 운동장에 집합을 하면 6학년이 맨 앞에 선두에 서고 그 뒤를 5학년, 4학년, 3학년, 2학년, 1학년 이렇게 나이가 적은 순서로 줄을 선다. 출발! 개미 떼 마냥 거대한 줄을 이루어 뒷산을 향해 걸어간다. 한참 걷다가 눈을 들어 보면 앞에는 선배들의 기다란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우와~!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도 거대한 줄이 이어져 있었다.
뒷산에 도착하면 선생님께서 학년끼리, 반끼리 장소를 지정해 주신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수건 돌리기이다.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며 내 뒤에 수건이 언제 올까 기대하고, 혹 수건이 내 뒤에 오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남자아이들은 좋아하는 여자아이 뒤에 수건을 놓고, 수건을 발견한 여자아이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선다. 어떤 아이는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 뒤에 수건을 놓는 것을 보고 안색이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남자아이는 최소 한 달은 학교생활이 피곤해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다음 순서는 보물 찾기이다. 선생님은 미리 여기저기에 보물의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를 숨겨 놓으셨다. 아이들은 지정된 구역 안에서 보물 쪽지를 찾기 위해 돌을 뒤집고, 나뭇가지를 흔들고, 덤불을 헤집고 다닌다. 여기저기에서 "찾았다!" 하는 신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기하게도 보물 쪽지를 찾아낸 아이들은 두세 개씩 계속 찾아내고,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끝끝내 하나도 찾지 못한다. 나는 후자 쪽이었다. "야~~ 나 하나만 주라." 보물 쪽지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두세 개 찾은 아이들에게 가서 사정을 한다. 몇몇 착한 아이들은 소중한 보물 쪽지 중 하나를 못 찾은 친구에게 준다. 천사다.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장지 자랑이다. 각반에서 가장 말 잘하고 웃기는 친구가 사회를 본다. 반끼리 둥글게 모여 앉아 사회자의 주도하에 한두 명씩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춘다. 함께 웃으며 박수로 장단을 맞추어 준다. 난 앞에만 나가면 한마디도 못하는 방안 퉁수여서, 온몸을 배배 꼬며 기어들어가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와 함께 오신 다양한 사장님들이 계신다. 소풍 때마다 따라오시는 뽑기, 아이스크림, 달고나, 풍선, 솜사탕을 파시는 각종 사장님들이 장사를 하시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용돈을 쓰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소풍을 마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바로 쓰레기 줍기이다. 아이들은 준비해온 검은 봉지 안에 열심히 쓰레기를 담아 선생님께 검사를 받으러 간다. 선생님께 통과를 받아야 집에 가는 줄을 설 수 있다. 이때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쓰레기를 엄청나게 많이 주은 몇몇 아이들이, 많이 줍지 못한 아이들에게 선심 쓰듯 쓰레기를 나누어주곤 한다.
소풍은 즐겁다. 공부를 안 해서 즐겁고, 학교 교실이 아니어서 즐겁고, 아이들과 돌아다니며 떠들 수 있어서 즐겁다. 하지만 나에게 소풍이 가장 즐거운 이유는 '김밥'때문이었다.
소풍날 아침이 되면 엄마는 일찍 일어나 주방에 넓게 신문지를 펴신다. 그리고 신문지 위에 하얀 달력 종이를 다시 넓게 펴신다. 그 위에 김을 놓고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석쇠에 놓고 구우신다. 구운 김 위에 현미밥을 펴고 단무지와 계란과 당근과 시금치를 길게 놓는다. 김밥을 돌돌돌 말고 칼로 큼직큼직 썰어주시면,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언니와 나는 얼른 김밥 꽁다리를 집어 들어 먹었다. 가운데 예쁜 조각들은 도시락 통으로 들어가고, 김밥 꽁다리는 아침밥이 된다. 그게 제일 맛있었다. 단무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단무지를 손가락으로 쏙 빼고 나머지만 입에 넣었다. 옆에 있는 언니가 "뭐 하는 짓이야!" 째려보면서 내가 빼놓은 단무지를 가져가서 먹는다.
엄마는 팍팍하니 국물이랑 같이 먹으라고 하시며 콩나물국을 퍼 주셨다. 그러면 콩나물 국물을 후후 불어 마시며 열심히 김밥 꽁다리를 손으로 주어먹는다. 지금처럼 고기나 치즈, 참치 통조림이 들어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맛있었다.
소풍 장소에 도착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모두들 도시락을 꺼낸다. 누구 도시락이 더 예쁘고 맛있나 서로 곁눈질하며 비교하기 바쁘다. 누구는 과일도 싸오고, 누구는 초밥도 싸오고, 누구는 정말 예쁜 모양의 김밥을 싸왔다. 반면 우리 엄마의 김밥은 옆구리가 터져있었다. 김을 구워서 김밥을 마셨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옆구리가 터지곤 했다. 흰밥이 아닌 누런 현미밥을 넣어서 쌌기 때문에 친구들의 김밥에 비해 색깔이 그다지 이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싸주신 김밥이었다. 우리 엄마가 싸주셨기 때문에 제일 맛있었고 제일 예뻤다. 이건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 누구도 음해할 수 없는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의 증거였다. 소풍날은 엄마의 사랑을 먹는 날이었다.
딸아이가 현장학습을 가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김밥을 싸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고 새롭고 편리한 풍습이 생겨 있었다. 엄마들끼리 모여서 도시락을 맞추는 것이었다. 엄마들이 맞추는 도시락은 김밥과 유부초밥, 샌드위치, 과일과 김치가 예쁘게 데코 되어 들어있고 음료수와 귀여운 냅킨도 들어간다. 과일용 일회용 포크는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반할 정도이다.
또 어린이집이 현장학습을 가는 날에는 근처 김밥 집이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어린이들 입 크기에 맞춘 꼬마 김밥을 판매한다고 하셨다.
도시락을 맞춰도 되고, 김밥 집에서 김밥을 사서 보내도 된다. 더 이상 엄마가 김밥을 싸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 것이다. 세상에나! 참 좋은 세상이다!
나의 아침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출근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우고 먹이고 입히고 어린이집 보내려면 눈을 뜸과 동시에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 한다. 아침 시간은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때이며, 하루 중 두뇌회전 속도가 가장 빠른 때이다. 그런데 김밥까지 싸려면 평소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야 했다. 전날 미리 재료를 갖춰 놓아야 했고, 흰쌀로 밥을 다시 지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돈만 내면 도시락을 멋들어지게 싸준다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신이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김밥을 싼다.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 김을 따로 굽지는 않고, 대신 쌀밥을 지어 참기름, 소금 간을 한다. 치즈, 불고기, 참치를 넣어 다양하게 종류를 만든다. 요리를 잘 못하기에 맞춤 도시락만큼 예쁘지는 않다. 가끔은 소금을 너무 넣어서 짜기도 하고, 소금을 너무 적게 넣어 싱겁기도 하다. 아이들의 입 크기에 맞춰서 작게 싼다고 쌌는데 너무 크게 만들기도 했다.
나도 알고 있다. 맞춤 도시락이 더 맛있겠지. 더 예쁘겠지. 김밥 집 김밥이 더 한입에 쏙 들어가겠지.
그래도 김밥을 싼다. 일 년에 6-7번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쌌다. 가끔 밥버거를 만들기도 했고 주먹밥, 유부초밥을 만들기도 했다. 이건 딸들을 향한 내 사랑의 표현이었다. 내가 김밥 속에서 보았던 엄마의 사랑을, 딸들도 발견하지 않을까. 이것이 네 인생의 힘든 순간 위로가 되지 않을까. 가장 외로운 순간에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쌌다. 내가 너희에게 남겨줄 수 있는 사랑의 유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초등 6학년 즈음되니, 나름 미식가인 첫째 아이는 친구가 싸온 맞춤 도시락을 부러워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맞춤 도시락만 가져온 그 친구는 엄마가 만들어주지 않은 맞춤 도시락을 싫어했다고 한다. 한 입 먹고 버리겠다고 했는데, 샌드위치에 과일에 유부초밥까지 있는 그 도시락이 아깝고 맛있어 보여서, "버릴 거면 나 줘! 내가 먹을게!"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너무 맛있어서 나도 맞춤 도시락이 먹고 싶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의 유산은 전달이 안 된듯하다. :)
그래, 다를 것이다. 엄마의 사랑에 대한 나의 추억과 너의 추억은 분야가 다를 것이다. 나의 추억의 한 부분이 김밥이라면, 너의 추억의 한 부분은 무엇일까.
다만 그 추억이 나의 것처럼 아름답고 강렬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김밥으로 새겨진 사랑의 유산이 너의 마음에도 존재하면 좋겠다.
그것이 다시 너의 아이에게도 전해지고, 그 아이의 아이에게도 전해지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내려가, 더 커지고 더 깊어지고 더 풍성해지기를.... 커다란 강줄기를 이루어 바다에 흘러가는, 아무도 멈추지 못하는 힘차고 거대한 흐름이 되기를.....
지금은 현장학습을 가면 밥을 사먹는다고 한다. 풍습은 바뀌고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디 변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