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벗 #1 책상

by 해이나

선비들에게는 문방사우라 칭하는 네 벗이 있었다고 한다. 참 멋지지 않은가! 학용품과 친구를 하다니! 내게도 인생을 함께 한 세 벗이 있다.


책상

초등학생 시절, 학생수가 너무 많아 1, 2학년이 이부제 수업을 했다. 2학년의 어느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교실 책상 서랍에 문제집을 두고 집으로 와 버렸다. 혹시나 오전 수업에 오는 1학년 아이가 책상 서랍의 내 문제집을 가져갈까 봐 가슴을 졸였다. 왜 놓고 왔냐며 혼날까 봐 말도 못 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퇴근한 아빠에게 말했고, 깜깜한 밤 아빠 손을 잡고 학교에 와서 문제집을 찾아갔었다. 그 이후로는 늘 책상 서랍에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하고 집에 가곤 했다.


어느 날 학교에 등교했는데 내 책상에 분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어떤 친구의 책상에는 동그라미가, 어떤 친구의 책상에는 엑스가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책상 서랍이 깨끗한 친구의 책상에 동그라미를 그렸다고 말씀하셨다. 책상 위 동그라미는 나에게 '너 학교 생활 잘하고 있구나!' 칭찬하고 있었다. 심장이 뛰고 신이 났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 하나의 책상을 언니와 내가 함께 사용했다. 언니보다는 공부에 조금 더 열심이었던 내가 주로 책상을 사용했다. 어느 날 부모님은 책상을 하나 더 사주셨다. 새로 생긴 책상을 언니가 쓸 건지, 내가 쓸 건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내가 책상을 더 많이 쓰니 나에게 새것을 달라고 주장했고 부모님은 나의 손을 들어주셨다. 속상해하는 언니를 보았지만 그렇다고 언니에게 새 책상을 양보할 수는 없었다. 언니를 회유하기 위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 언니 속상하니까 100원 주면 안돼요?"

내 책상은 항상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독서실에서, 혹은 학교에서 밤늦게 들어오면 집에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나는 방에 들어와 책상 불을 켜고 한 팔을 뻗어 깨끗한 책상 위를 주욱 훑었다. 이 책상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로가 되었다.

여기에는 화가 났을 때 일기를 쓰다가 집어던져서 생긴 흠집이 있다. 시험 기간, 조금만 자려고 엎어져 있다가 흘린 침 자국이 있다. 친구들에게 받은, 소중해서 차마 사용할 수 없어 고이 모아둔 내 생일 선물들이 서랍 한켠에 조용히 숨어있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한다고 책상 위에서 밥을 먹다가 흘린 얼룩이 있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 머리를 감싸 안으며 흘린 눈물이 있다. 나의 학창 시절이 어려있다.

책상 앞, 이곳에서는 평온할 수 있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출근을 하면 더 큰 책상이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책상이 많은 곳이다. 나는 이 많은 책상을 오고 가며, 책상을 사이에 두고 혹은 책상을 마주 놓고 나를 웃게 하는 눈동자를 마주 본다. 나도 너를 보며 웃는다. 그리고 내가 나됨을 느끼곤 한다. 그래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지.

그리고 가끔, 책상 서랍 정리를 잘한 친구들의 책상에 동그라미를 그려놓는다. 내가 그랬듯, 책상을 아끼고 그 앞에서 위로를 느낄 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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