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었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독립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신난다! 부모님은 4명이서 함께 쓰는 2평 남짓한 기숙사 방을 보고 엄청 놀라셨지만 뭐 어떠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 정도면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닐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자립의 기본은 생활비의 독립! 바로 벼룩시장에 과외 공고를 내고 알바를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동아리를 6개나 들고 요일별로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빴다. 그런데도 시간이 남아서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는 그냥 공부를 했다. 그렇게 넉달을 살고 나니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부모님께 알바를 해서 용돈을 드리는 거랑 장학금을 드리는 것은 기분이 달랐다. 내가 부모님 곁에 있지 않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르게 살고 있으니 부모님은 하나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느낌이었다. 자랑스러웠다.
당시 나에게 모든 음식 가격의 기준은 김밥이었다. 학교 식당을 제외하고,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영양만점의 한 끼 식사는 2000원짜리 김밥이었다.
커피가 4000원이면 '와! 김밥 두 줄이다. 두 끼 식사네? 패스!' 마시지 않았다.
맛있어 보이는 빵이 2500원이면 '김밥보다 비싸네? 이거 하나 먹으면 밥 안 먹어도 되나? 에이. 이거 먹어도 배고플 거 같다. 그럼 패스!'
김밥 한 줄을 먹고도 배가 고프던 젊은 때였다. 그래서 오뎅 국물을 몇 번 퍼와서 마셨다. 입안 가득히 커다란 뚱뚱한 김밥을 쑤셔 넣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너무 없어 보일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당시 나에겐 독립이라는 가치가 너무 크고 자랑스러워 그닥 신경 쓰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30대의 내가 스타벅스에 서 있었다.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와 스콘을 시켰는데 얼마인지 계산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뭐 알아서 계산해 주시겠지.' 영수증을 주시는데 확인도 안 하고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갑자기 현타가 왔다. '아메리카노와 스콘을 사면서 이게 김밥 몇 줄인지 계산을 하지 않네? 가격을 확인도 안 하네? 와! 드디어 내가 부자가 된 건가?'
명품 가방 하나도 없는데 무슨 부자? 명품 가방을 이야기하기 전에 옷차림도 그닥. 화장도 그닥. 시계도 반지도 안 하는데, 차도 없는데 무슨 부자? 정말 지나가던 개가 웃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추구하던 이상은 몇십억의 자산, 강남의 아파트, 명품가방 같은 부자는 아니었다. 윤동주님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삶이었다. 성경 말씀처럼 정금처럼 단련되는 삶, 정의롭고 성결한 삶이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인지 그게 중요했다. 그러기에 돈이 많으면 참 좋겠지만, 돈이 없다고 불행하지는 않았다. 혹자의 말처럼 좀 불편하긴 했다.
혹 누가 나의 이런 가치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나는 주저 없이 슬그머니 도망간다. 다른 분들의 가치관에 대해서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난 그냥 이모양으로 생겼을 뿐이다. 싸움은 거절하겠습니다. :)
30대가 되니 이제는 모든 것을 김밥으로 환산하며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조금의 여유에 감사하고, 그동안 헛살지 않은 듯하여 이제는 좀 풀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때로는 느낌적인 부자 됨을 즐기기도 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사며 김밥 몇 줄 가격인지 환산하지 않고 그냥 카드를 당당하게 내밀며 속으로 으스댄다. '오!! 부자가 되었네? 성공했네? 나 쫌 멋진 듯?' :)
이제는 너무 옭아매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예쁘게 눈이 오는 날, 모처럼 혼자 스타벅스 2층에 앉아 고즈넉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마음이 괴롭다.
이 순간만큼은 그냥 텅 비고 싶다. 그냥 여기에 내가 있고, 저기에 눈이 내리고 있을 뿐이다. 그냥 그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