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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Dec 23. 2022

스님의 밤

밤새 떨어진 밤은 생존 몸부림이다. 새벽마다 나무 아래서 스님을 만났다.

해마다 구시월이면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새벽부터 깨웠다. 그러고는 밤새 뒷산에 떨어진 밤을 주워오라고 했다. 전북 김제에 있는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는 일찍이 깨달아 알고 있었다. 저마다 역할을 해야 집안이 굴러가는 게 공동체 법칙이고, 그게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당시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나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였다. 힘이 덜 드는 축에 드는 밤 줍기는 내 몫이었다. 밖은 아직 까맸다. 오른손에 랜턴 한 자루를 들고 어둠을 밀어내며 산을 올랐다.


대체 산에 밤이 얼마나 있기에 부산을 떠나 싶을 텐데, 동네 이름을 보면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살던 동네를 밤나무 율(栗) 자를 써서 율리(里)라고 불렀다. 동네 야산에는 밤나무가 차고 넘쳤다. 가을이면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던 밤나무가 생생하다. 굵은 밤톨을 가득 머금은 모습이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밤을 보노라면, 밤나무가 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흔적이 보인다. 허리가 꺾이지 않으려고 밤새 밤을 털어냈을 테다.


이렇게 주운 밤은 창고 서늘한 데에서 항아리에 넣어 보관했다. 이러면 연중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쓰면 된다. 연간 십여차례 제사를 지내는 우리집으로서는, 밤은 없어서는 안될 제수음식이었다. 밤은 송이마다 밤톨이 세 알씩 들어 삼정승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려 빌면 후손의 출세와 집안의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할머니 손에 등 떠밀리기도 했지만, 내가 기꺼이 새벽에 산을 오른 이유는 이게 컸다. 조부모와 부모님 그리고 일가친척이 잘되려면 내가 좋은 밤을 열심히 주워야 했다. 어깨가 무거웠다.


밤을 줍는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밤이 익는 시기는 추수기와 겹친다. 텅 빈 논에서 짚불을 지펴 구워먹는 밤의 맛은 먹어본 이만 안다. 이럴 때면 (부모가) 논을 가진 친구보다 밤을 가진 내가 더 주가가 높았다. 그런데 밤은 구울 때 반드시 대가리를 터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이 구우면 터져 사방으로 튄다. 여기에 맞아 다치는 친구가 부지기수였다. 곁을 지나는 어른들은 밤 굽는 애들을 보면 꼭 이런 충고를 했다.


물론 나는 이걸 잘 알기에, 밤을 구울 때면 친구에게 이로 밤 대가리를 까라고 일렀다. 이렇게 밤을 까다 보면 가끔 벌레 먹은 밤이 나온다. 먹기에는 영 꽝인데, 겉으로 보면 멀쩡해서 골라내기 어렵다. 이럴 때는 물에 밤을 넣고 떠오르는 걸 걸러내면 된다. 이런 건 십중팔구 벌레가 먹었다. 역시나 나는 이걸 잘 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는 이렇게 가려낸 실한 밤을 들고 간다. 그래서 나와 함께 밤을 구워먹으면 공짜인데다가, 튀어오른 밤에 맞아 다칠 리도 없었고, 벌레먹은 밤을 먹을 염려도 없었다. 우리는 누구 이로 대가리를 깐 건지 모르는 밤이 익으면, 누구랄 것도 없이 이빨로 까서 먹었다.


나의 밤 유년기에서 같은 동네 살던 스님은 불청객이었다. 새벽부터 불공을 드리는 스님에게 나는 상대가 안 됐다. 밤새 떨어진 밤은 대부분이 그의 몫이었고, 나는 스님이 훑고 간 산에서 빈 밤송이와 씨름했다. 밤을 가득 채우려고 들고간 양파망이 빈채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를 이른 새벽부터 깨워 채근했던 것이다. 어느날은 오기가 생겨 이른 새벽에 올라 스님을 이긴 적이 있다. 치킨게임의 시작이었다. 이후로 나는 아무리 일찍 산에 오르더라도 스님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전략을 바꿨다. 해가 지기 전에 산을 훑기로 한 것이다. 사실 산에서 밤을 수확하는 방법은 줍기만 있는 게 아니다. 장대로 밤나무를 털거나, 나무 해머로 밤나무를 때리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에 맞으면 꽤나 따끔한데, 밤송이라도 맞을라치면 여간 아픈 게 아니다.


밤나무를 털고 있는 내게 스님이 다가왔다. 열중하느라고 옆에까지 온 줄도 몰랐다. 스님은 땅에 떨어진 밤이 가엽지 않느냐고 했다. 익은 밤을 따는 과정에서 덜익은 밤까지 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밤은 영글지 못하고 썩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입을 벌리려고 한해를 기다렸건만 허사인 것이다. 말을 들어보니 밤톨이 가여웠다. 스님은 자기 밤을 몽땅 주고 돌아갔다. 덕분에 양파망을 밤으로 가득 채워서 돌아가 할머니에게 큰 칭찬을 받았다.


스님은 더는 새벽에 밤을 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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