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똥을 먹는 똥개, 개똥은 먹지 않는 똥개. [김제유년]
우리집 개는 잔반을 먹고 자랐다. 개밥은 보잘 것 없는 날이 잦았다. 우리집 식구가 육체노동을 하려면 밥심이 필요했다. 밥을 아주 좋아했으니 밥을 남기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잔반이 개한테 돌아갔다. 가족이 개를 기른 이유는 잔반을 처리하는 게 하나였다. 개를 위해 잔반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사료를 안 먹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개는 사료보다 잔반을 좋아했다.
잔반보다 좋아한 게 인변이었다. 똥개는 어린 변만 먹었다. 할머니는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나를 개 앞으로 데려가서 바지를 내려주었다. 나는 개가 보는 앞에서 일을 봤다. 내가 바지를 입으면 할머니는 개의 쇠목줄을 풀었다. 식사 시작이었다. 화장실이 없어서 이런 것은 아니었다. 변은 가족이 개에게(나는 개를 식구로서 여기기에, 사람에게 쓰는 조사 '에게'를 쓰기로 했다) 주는 밥이었다.
나는 이런 식의 거사가 영 불편했다. 개는 내가 바지를 내리면 침을 흘리면서 달려들었다. 버티고 있는 쇠목줄이 튕기며 가야금 뜯는 소리가 났다. 이런 터에 쇠목줄 반경 바깥에 쭈끄려앉은 나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시선으로 보자면 아동학대였지만, 그 시절 나는 아동이기에 앞서 가족의 일원이었다. 시골에는 가족 각자가 맡은 일이 있었다. 하나라도 소홀하면 집안은 돌아가지 않았다. (당시 우리집 법칙의 시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니 논외로 하려고 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은 개가 필요했고, 내가 싸지 않으면 개는 굶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 상황 자체를 벗어나기는 어려우니 환경을 바꿀 방법을 고민했다. 사실 굳이 개의 앞에서 거사를 치를 필요는 없었다. 멀리서라도 얼마든지 가까이로 전달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러한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태어나고 처음 논리적이었을 때가 있었다면, 당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내게 삽을 들려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화장실에 삽을 갖고 들어갔고, 나오면서 개에게 삽을 가져다줬다. 삽은 개의 밥그릇이 됐다.
개는 불사의 존재같았다. 변을 먹을 수 있다면, 스스로 먹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평생 먹이가 끊길 리 없다. 그런데 똥개는 개똥을 먹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이게 궁금하다.
그러다 문뜩 가축이 인간과 공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떠오른다. 먼 옛날 야생의 동물이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건(공존) 생존 목적이 컸다,고 인류사는 기록한다. 공존하려면 인간과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 먹이가 겹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집 개는 사람이 먹는 밥을 먹고 자랐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안 먹는 것(잔반)을 먹었지만, 거슬러가면 사람이 먹는 것(밥상)도 먹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래서는 공존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개는 메시지가 필요했고, 스스로 똥개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이 먹는 것을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먹지 않는 것도 먹는다는 메시지 말이다. 이게 인변을 먹는 행위가 아니었나,라고 헤아려본다. 그래서 똥개라는 이름에는 생존을 지향하는 처절함이 담겼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