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건 이름뿐이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몰랐으나, 매일 서로를 배웅하고 마중했어

by 여강

빌라 경비원이 그만둔다고 한다. 현관 출입구에 붙은 방을 보고 알았는데, 경비원 둘 중에 누가 그만두는지는 모르겠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서로 부를 일도 없었고, 이름을 몰라도 말이 통했기에, 반드시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방을 보니, 이름을 모르는 그 분은 개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둔다고 한다. 내가 이분이 그만두는 이유까지 알아야 하는지 싶다가도 문득 생각이 길어진다.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일터와 보상이 흡족하면 일하려고 한다. 나도 이직을 해보았고, 이직한 주변인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말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이직한 이들은, 월급받기를 거부하면서 사직 사유에 솔직하게 적지 못하고, 일신 상의 사유라고 썼다. (가끔 '회사가 X 같아서'라고 적는 이들도 있다.) 거짓을 쓴 것은 아니지만, 사실을 쓴 것도 아니기에, 거짓말에 가깝다. 그래서 사직 사유를 적는 행위는 대체로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하다.


경비원이 실제로 무슨 이유로 그만두는지는 모른다. 평소 경비원과 관계를 맺은 빌라 거주자는 이별의 이유를 알고 싶을 테지만,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이분이 다른 데서 일을 하는지, 다른 직업을 가진 것인지, 아예 일을 못하는 건지, 혹은 일에서 해방된 건지 모른다. 물으려다가 통성명도 하지 않은 사이에 실례 같아서, 두었다. 그저 경비원이 개인 사정을 퇴직 사유로 적으면서 자신에게 당당했기를 바랐다.


집으로 간 경비원이 떠오른 건, 마을버스에서 만난 승객의 대화 때문이었다. 빌라 정문 정류소에서 그날 첫 마을버스에 오르자, 한참 얘기가 오가는 중이다.


"여기서 내리는 그분은 일을 그만 두셨나보네."


버스에서 대화를 나누려면 어지간하게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하니, 얘기가 쉽게 들렸다. 듣고 보니 이름도 모르고 그만둔 이유도 모르는 그 경비원 얘기였다. 매일 같은 시각과 장소에서 버스를 타면 같은 사람을 만난다. 내릴 사람이 벨을 안 눌러도 버스가 서고, 타야 할 사람이 안 보이면 버스가 천천히 가는 게 마을버스인데, 무려 첫차를 타는 이들이니 엔간히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마땅히 내려야 할 승객이 내리질 않으니, 떠올랐을 것이다. 승객들이 다 내릴 때까지 경비원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 다들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첫차에 오른 이들은 그들의 유대감으로 모르는 이도 알고 있었다. 모르는 건 이름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매번 첫 마을버스를 탈 적마다 그가 마을버스에서 내렸다. 승객들이 내리는 경비원을 배웅하는 순간, 나는 내리는 경비원을 마중했다. 둘 다 출근하는 길에서, 나는 빌라를 떠났고 그는 빌라로 향했다. 빌라는 나에게 집이었지만 빌라는 그에게 일터였다. 집과 직장이 공존하는 빌라에 나와 그가 존재했지만, 둘은 공존하지 못했다.


며칠 이따 단지에서 만난 낯선 이가 경비복을 입고 있기에, 새로 출근한 경비원인가 싶었다. 나는 새로 출근한 경비원의 이름을 몰랐다. 문득 얼마 전에 붙은 관리사무소 공지에 경비원이 그만두는 사실과 함께 새로 출근할 경비원의 이름이 적혀 있던 게 떠올랐다. 읽었지만 기억하지 않았으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새로 온 경비원이 집에 가는 날까지 이의 이름을 알게 될지 모르겠다. 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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