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관음증으로 신혼여행을 보기에 최고의 최음제 아닐까
신혼여행 얘기는 엔간한 사람도 만담꾼으로 만든다. 나같이 말주변이 없는 이라도 상대방 귀가 쫑긋거린다. 이 얘기는 다분히 관음증을 자극하고, 우리 대부분은 약간은 관음적인 탓일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걸 몰랐다. 남에게 관심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어김없이 돌아온 질문이 신혼여행 어디가느냐였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남의 신혼여행을 궁금해하는 걸 알았다. 기혼자는 과거의 여정을 끌어와 빗대며 짐짓 우열을 가릴 기세이고, 미혼자는 앞으로 있을(지 모를) 여정을 그리면서 사뭇 진지하게 듣는 눈치다.
요르단 암만 상공에서 바라본 사막 모습.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려고 하강하는 도중에 찍었다.
이런 맥락에서 나와 처가 다녀온 요르단은 가히 최음제 수준이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이들은 이 나라를 가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몰랐다. 이런 나라에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니, 되게 듣고 싶어했다.
만약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신혼여행을 하와이간다고 거짓말할까 싶을 정도였다. 하와이는 정답이어서 설명할 게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르단은 오답에 가까웠다. 나는 이게 오답이 아니라는 걸 굳이 설명해야 했다. 설명하는 건 귀찮은 일은 아니었다. 다만 상대에게는 한번이 나에게는 수백 번 반복됐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늘 재밌지는 않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반복됐다.
그래서 이참에 요르단도 신혼여행의 정답일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그 풀이를 덧붙여두기로 했다.
우선은 왜 ‘요르단’을 갔는지이다.
순전히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내가 그리던 신혼여행은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를 한잔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하와이였다. 이 두 곳은 처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와이를 가지 못한 이유를 첨언하면 처가 이미 다녀온 곳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앞으로 얼마나 산다고 해외에 갔던 곳을 또 가느냐고 하는데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반박의 여지가 있더라도 신혼여행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선택지 가운데 요르단은 최선이었다.
처는 피라미드의 이집트와 페트라의 요르단을 제시했다. 처는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신혼집을 서울 종로구에 차린 이유 하나도 이 동네가 오래된 까닭이다. 좌우튼 피라미드와 페트라의 기원은 기원을 거슬러가니 제격이었다. 수천 년 세월이 빚은 사막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일방적이지 않고 선택지를 받은 것은 고마워할 일이지만 어느 하나도 최선은 아니었다. 차선에서 최선의 선택지는 요르단이었다. 눈동냥과 귀동냥을 해보니 요르단 치안이 나아 보였다. 이집트가 위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적어도 신혼여행이 뉴스가 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이제 요르단을 ‘왜’ 갔는지이다.
나는 대상을 색감과 질감으로 인식하곤 한다. 서울은 거친 콘크리트를, 동해는 출렁이는 푸르른 바다를 떠올리는 식이다. 요르단은 사각의 모래가 서걱거리는 무채색의 나라였다. 너무나도 단조로워서 너무나도 재미없는 나라라는 결론을 얻으려고 일부러 지어낸 거짓 인식이다. 애써 가는 신혼여행이 재미있기를 바랐다.
실체를 마주하고 이런 인식은 무너져내렸다. 책으로 배운 요르단과 내가 겪은 요르단은 전에 알던 요르단이 아니었다. 요르단 사막의 모래는 불면 날아가고, 손대면 놀라고, 만지면 깨지고, 들면 흐를 만큼 고왔다. 서걱거리는 바다 모래만 겪어본 나의 모래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순간이었다.
무채색의 나라도 개뿔 같은 소리다. 붉은 사막(페트라·와디럼)과 상아빛 평원(그냥 나라 전체가 그래), 옥빛 바다(사해·아카바)를 보는 내내 눈이 호강했다. 나는 여행을 시각으로 기억하기에, 이 나라가 뿜어내는 다채로움을 기록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사람과 시설이 후진 건 아닐지 하는 우려는 참으로 후진적인 우려였다.
내가 만난 요르단인 대다수는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었다. 뉴스나 영화에서 그리는 외부인에게 호전적인 아랍인은 만날 수 없었다. 앞서 사막 모래의 고운 질감을 접하고서 요르단 사람들의 심성도 이럴까 싶었는데, 대부분이 이랬던 거 같다. 보이는 게 우리네보다 낡은 건 사실이다. 건물이건 자동차건 다 오래됐다. 그렇다고 사람까지 낡은 건 아니었다.
모든 시설이 낡은 것도 아니다. 사해(Dead Sea)와 남부 해변 아카바를 낀 리조트는 모히또와 하와이에서 그리던 휴향지에 버금갔다. 오성급 호텔은 시설이건 서비스건 절대적으로 훌륭했다. 많은 유러피안이 여기서 휴가를 즐긴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었다.
왜 요르단을 갔고, 요르단을 왜 갔는지를 얼추 얘기한 것 같다. 이어서는 요르단의 각주를 달아보고자 한다. 잡기에 가까운 내용일 것이라서 여행을 위한 자세한 정보를 얻어가기는 어려울 거 같다. 외국인의 운전 요령, 애주가의 이슬람 음주, 비흡연자의 흡연천국 숨참기, 페트라의 호갱 피하기 등 따위일 테니까.
어때. 되게 관음적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