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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Apr 11. 2023

지게의 키

나도 지게를 지고 싶어서 지게 다리를 잘랐다

지게의 다리가 잘려나간 날이었다. 내 손에는 톱이 들려 있었다. 톱이 지게의 다리를 켜서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내 손이 톱을 시켜서 한 짓이다. 큰일이다. 지게가 없으면 집안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여덟 살 먹은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아버지 손에 매가 들렸다. 할머니가 아들의 손을 뿌리치고, 손자에게 물었다. 제대로 대답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도 지게를 지고 싶었어!”


내 키는 지게를 지기에 턱없이 작았다. 키가 자라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지게의 키를 내게 맞추기로 했다. 이렇게 나는 아득한 몇 년을 벌었고, 동시에 매도 벌었다. 아버지 손에 들린 부지깽이가 춤을 췄다. 부지깽이는 동족을 불사르는 과정에서 부역했던 녀석이다. 그간의 주홍글씨를 씻어내기라도 한 마냥, 잘려나간 지게 다리의 복수를 하는 듯, 나의 몸을 타작했다. 나는 다리가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같은 고통을 겪었을 지게에 비로소 미안했다. 지게가 뭐라고, 나는 왜 지게를 지고자 한 것인가.


나무하러 가서 그 자식만 만나지 않았더라도 이런 사달은 없었을 것이다. 여덟 살을 꼬박 먹은 내가 하는 나무는 나무랄 것도 없었다. 마대 자루 한 장을 들고 산을 올라서, 따끔거리는 마른 솔잎을 주워 구겨 넣거나 기껏해야 야윈 나뭇가지를 욱여넣어 가져오는 게 다였다. (사실 나의 나무를 과장할 수도 있지만, 곁에 있는 갈퀴가 다 봤기에 그럴 수 없다.)


“가차운 데로 다녀오니라.”(할머니)


산을 오를 것도 없이 기슭으로 다녀오면 그만인 일이니, 나무하다보다 ‘줍다’가 맞을 듯하다. 그날도 기슭을 훑던 나는 느긋하게 누워 있던 나무를 마주했다. 아버지 허벅지와 키만 한 그 자식의 얼굴에서 조소를 읽었다.


‘너는 나를 데려가지 못한다.’


사실이었다. 나는 이 자식을 집으로 데려갈 여력이 없었다. 마대 자루에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분지르지도 못하고, 그렇게 해서 넣는다손 하더라도 지고 갈 자신이 없었다. 분한 마음에 나무를 부러뜨려나 볼 성 싶었다. 온힘을 다해 밟았다. 나무는 끄떡하지 않았다. 발바닥이 아프다고 난리다. 심술을 부렸건만, 내가 이 나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한 게 없었다. 화끈거리는 발바닥을 달래가며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아버지라면 어땠을까. 그 자식은 대번에 동강이 나서 지게에 실릴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지게가 있었다.


지게는 가족을 먹여 살렸다. 이렇다 할 농기계를 장만하기 어려운 형편이던 우리 집에서, 지게는 농사짓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다. 아궁이를 때야 가족은 난방하고, 밥을 짓고, 물을 끓였다. 그러려면 산에서 나무를 해야 했다. 산과 아궁이를 잇는 게 지게였다. 하물며 논과 밭으로 퇴비를 가져가서, 거기서 수확한 농작물을 집으로 가져오는 일도 지게가 아니면 못했다. 변소에 분변이 차면 길어서 논밭에 뿌려야 하는데, 여기에도 지게가 쓰였다.


지게는 선생님이었다. 나는 지게에게 조화와 균형을 배웠다. 짐을 쌓을 때는 위로(수직) 쌓는 게 기본인데 장땡은 아니다. 물을 길거나 묶음 단위를 옮기려면 양쪽(수평)에 실어야 한다. 허리를 살짝 구부려야 지고 내릴 때 힘이 제대로 실린다. 구부린 허리 각도에 맞춰 지게 뒤편에 적당하게 무게를 실어야 한다. 지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진 이의 힘이 아니었다. 앞뒤와 위아래, 그리고 좌우로 잡힌 균형이었다. 지게는 삼차원을 개념을 설명하기에 완벽한 교과서였다.


지게 다리를 자른 날. 당시만 해도 나는 지게를 키로만 지는 줄 알았다. 나의 키가 지게만 했다면 지게를 질 수 있었을까. 지게에서 조화와 균형의 교훈을 얻지 못한 나였기에 아마 그러지 못했으리라. 까짓 거 교훈이야 배워서 익히면 되니 시간이 해결했으리라. 나중에 알았지만, 지게를 진다는 것은 가족을 건사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나는 지게를 못 졌을 것이다. 요령은 익히면 되지만, 의무는 익히는 게 아니다. 나의 애먼 욕심은 아버지의 의무를 섣불리 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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