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아침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시작됐다.
그이와 함께 출근 전에 걷는 아침 30분.
특별한 계획은 없고,
그냥 하루를 열기 위한
습관 같은 것이었다.
이 평범한 시간 속에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삶을 바꾼다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런 하루를
계속 이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교통사고 후유증 이후,
노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그의 걸음은 한동안 많이 느렸다.
발을 질질 끄는 소리는
서로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동시에
서두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앞서가거나 끌어당기기보다는
같은 자리에 머무는 쪽을
선택했다.
속도를 맞추기 위해
우리는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맞추며 걸었다.
뒤꿈치부터 디디는 법을
다시 익히는 데만
서너 달은 걸렸다.
주 3회 정도,
빠지지 않고 같은 길을 걸었다.
서두르지 않기 위해
서로의 발을
자주 확인했다.
그 시간 동안
무언가가 빨리 나아지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시간이
서로에게 무리가 되지 않기를,
하루의 시작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여행을 다녀온 어느 아침
30분 정도를 걷고 있는데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발이 끌리지 않았다.
속도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와 보조가 맞았다.
내 속도에
정확히 들어와 있었다.
그 순간,
‘잘 해냈다’는 말보다
‘함께 왔다’는 감각이
먼저 들었다.
서로를 보며
“지금 괜찮아?”
“응, 괜찮아.”
확인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기뻐서라기보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이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서두르지 않은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확인이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보다 당신이
더 기뻐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덧붙였다.
“이러다 며칠 지나면
더 빨라질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며
출근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동행 서비스의
한 조각이구나.
누군가를
앞서 끌어주지도 않았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대신 속도를 맞췄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의 리듬이
회복되고 있었다.
이건 관리도 아니고,
치료도 아니고,
성과를 증명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걷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속도를
존중한 결과였다.
그날 이후
동행이라는 말을
조금 더 믿게 되었다.
아이디어로서가 아니라,
이미 내 삶 안에서
작동하고 있던 방식으로.
그래서 나는 안다.
동행은
설명으로 시작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이미 누군가의 하루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