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읽고
늦깎이로 공부하던 시절,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과제로 읽은 적이 있다.
『채식주의자』를 읽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병원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의 감정이
오래 남았다.
그 삶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시에서 멀어져 있었다.
퇴근 후, 도서관에서 빌린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꺼냈다.
정말 오랜만에 시집을 잡았다.
몇 편을 읽었다.
노벨문학상 이후,
한강이라는 이름이 다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읽을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생각은 무거워지고,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몇 문장을 반복해 읽을수록,
길을 잃는 기분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고,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
어쩌다 한 번 숨을 쉬고
잠깐 바깥으로 나왔다가
다시 또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감각.
얼마나 삶이 깊은 늪에 빠져야
이런 문장들이 나올 수 있을까.
몇 편을 읽었을 뿐인데도
그 의미의 일부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마 이런 읽기 앞에서
멈춰 서 본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집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글들이 서 있는 삶의 깊이가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한강의 글에 대해
사람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작품들의 무게는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에서 온다고.
감정을 설명하거나
상처를 덜어내려 하기보다,
고통이 머무는 자리를
그대로 남겨 두는 언어라고.
그래서 독자는
그 빈자리를 지나가며
저절로 숨이 가빠지고,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가
다시 안쪽으로 끌려 들어간다고 한다.
굴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빠져나올 출구를
미리 마련해 두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이 시집이 왜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이제는 내가 왜 답답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전까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저 답답함으로만 남아 있었다.
잠시 한강의 삶을 떠올렸다.
이 문장들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많은 답답함을
수없이 지나왔을까.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그 안에 오래 머물러야만
말로 남을 수 있는 언어의 깊이 또한
그만큼 깊어졌을 것이다.
한강의 문장들은
젊고 날카롭기보다
오래 버텨온 문장들처럼 느껴졌다.
쉽게 말하지 않고,
말해야 할 것만 끝내 남긴 문장들.
답을 주지도,
빠져나올 길을 가리키지도 않으면서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문장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세상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무슨 생각이
나를 이렇게 답답하게 만드는가.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동행하듯 읽고 싶어졌다.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걷는 방식으로.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도,
이 정도의 읽기가
필요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