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4번 출입구에 자리한 김 씨네 구둣방, 지붕 위로 살포시 벚꽃이 떨어져요. 손님 하나가 겨우 앉을 만큼 작지만, 할아버지가 친절하고 수선기술이 좋아서 손님이 많아요.
할아버지는 점심시간도 잊고서 수선에만 집중했어요. 그러자 밍밍이가 “야옹!”하고 점심시간을 알렸어요.
“또, 깜빡했네! 고맙구나!”
그리 말한 후 오른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가게 문을 여는데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시래요.”
할아버지는 활짝 웃는 수정을 보자 피곤이 싹 날아갔어요. 그러나 손을 저었어요.
“됐다! 폐 끼치기 싫다.”
수정이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끌어요.
“할머니가 꼭! 데려오래요!”
밍밍이도 가자고 보채요.
“야옹! 야옹!”
거듭된 할아버지의 거절에도 수정인 막무가내였어요. 결국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어요.
"알았다! 알았어!"
“할아버지 왔어요!”
식당에 수정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방에서 하얀 조리복을 입은 할머니가 나왔어요.
“어서 오세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어요.
할아버지가 미안한 미소를 보여요.
“매번,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우리 손녀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작죠.”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리고선 밍밍이의 먹이를 챙겨주어요.
“옜다! 맛나게 먹어라!”
그러자 밍밍은 혀를 날름거리며 맛나게 먹어요.
할아버지가 밍밍을 보며 너털웃음을 보여요.
“음식이 맛나서 보챘구나!”
식사를 마친 수정과 밍밍은 벚나무 밑에서 활짝 핀 벚꽃을 만지려고 콩콩 뛰었어요. 그러나 수정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할 뿐, 땅에서 1cm도 떨어지지 못했어요. 얇고 짧은 다리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어요.
그 모습을 할아버지가 측은히 보아요.
“얼마나 뛰고 싶을까!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쯧쯧!”
결국,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빨개졌어요.
할머니가 주방에서 나오자 할아버진 얼른 눈물을 닦아요.
“수정 댁의 음식은 언제나 맛나요. 하하!”
할머니가 말해요.
“맛있게 먹어주니 저야, 고맙죠!”
할아버지는 손녀의 부모에 관한 것과 홀로 키우게 된 이유를 묻지 않았어요. 아픈 상처를 꺼내는 것 같아서였어요.
“아이고 허리야! 이젠 몸도 마음도 쉬라고 하네요. 하긴 50년째이니까요.”
할아버지는 힘든 한숨을 쉬었어요.
“무슨 말씀을! 아직 손님이 많은데…….”
할머니는 말하며 맞은편에 앉았어요.
할아버지와 수정의 인연은 3년 전이었어요. 그때도 벚꽃이 아름다움을 자랑했어요.
그날도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구두를 수선하는데 ‘드르륵’ 문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구두를 수선해 줄 수 있나요?”
하고 할머니가 부탁했어요.
“그럼요! 어느 구두인가요?”
할머니가 손녀의 발을 보여주며 말해요,
“우리 손녀의 오른쪽 다리가 짧아요. 다리 길이에 맞춰주세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촉촉했어요.
할아버지는 당황했지만, 여자아이가 측은해 고개를 끄덕였어요,
“치수 재자!”
수정이는 빨개진 얼굴로 짝짝이 다리를 보였어요. 할머니 외에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건 처음이니까요. 여태껏 할머니의 눈짐작으로 사 왔지만, 이제는 안 되었어요. 그러나 다리 길이를 맞춰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요.
할아버지는 꼼꼼히 치수를 재었어요.
할아버지가 수정을 보며 ‘씽긋’ 웃어요.
“이제 다됐다!”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공손히 인사했어요.
어느덧 밤이 깊었어요. 이 시간이면 단꿈을 꾸었겠지만, 이날은 특별한 손님을 사랑한 구두 수선 소리로 가득했어요.
사흘 후. 구두가 완성됐다는 전화에 할머니와 수정인 할아버지께 갔어요.
“구두 신어보렴!”
할머니의 말에 수정이는 구두를 신어보았어요. 처음인데도 폭신폭신 편안했어요.
“엄청 좋아요!”
그리 말하며 ‘콩콩’ 뛰었어요.
“휴! 다행이구나!”
할아버지의 피로가 ‘싹’ 날아갔어요.
“얼만가요?”
할머니는 꼬깃꼬깃 접었던 지폐를 내밀었어요.
“그냥 가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흔들었어요.
“아닙니다! 값은 치러야죠.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할머니는 미안해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밥 한 끼 사세요!” 하고 껄껄 웃었어요.
할아버지가 말해요.
“나도 쉬고 싶어요. 그래도 수정이의 구두는 힘닿는 데로 수선해 주리다.”
할머니께 말하고선 정말로 문을 닫았어요.
할아버지는 꿈을 꾸었어요.
“돌칠 아!(할어버지의 젊은 적)”
순자는 환하게 웃으며 돌 칠을 불렀어요.
돌칠 이 가 손을 흔들어 반겨요.
“순자야!(할머니의 젊은 적)”
둘은 개울에서 노래도 부르고 산딸기도 먹고, 처음으로 순자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요. 돌칠 은 이 행복 영원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한 사내가 오더니, 순자를 데리고 도망치듯 달려요.
“거기서! 거기서!”
돌칠이는 절박하게 불렸어요.
밍밍이가 할아버지를 깨워요.
“야옹!”
“꿈이었구나! 휴!”
할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평소 안 보이던 순자가 어찌 보였을까?’
할아버지는 전등을 올려다보았어요.
할아버진 아침이 되자 수정에게 갔어요.
벚꽃을 잡으려고 ‘콩콩’ 뛰던 수정이가 할아버지와 밍밍을 보며 미소 지어요.
“할아버지!”
“밍밍아! 안녕!”
“신발은 편하니?”
할아버지는 물었어요.
수정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구두의 그림을 자랑했어요.
“예쁘죠!”
할아버지는 그림을 보았어요. (새 같은 것이 네 잎 클로버를 물었어요.) 그러나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어서 자세히 살폈어요.
“아!”
첫사랑에게 그려준 그림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물어요.
“누가 그렸어!”
“할머니가 그렸어요. 행운이 있다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심장이 콩닥거렸어요.
이 그림은 순자에게 가르쳐 준 특이한 화풍(엉성한 그림)이라 그 누구도 똑같이 못 그려요. 있다면 첫사랑이겠지요.
할아버지가 잰걸음으로 식당에 가요.
‘설마!’
수정이는 궁금한 눈으로 달리는 할아버지를 보았어요.
“헉! 헉!”
할아버지의 호흡이 고르지 못해요.
“웬 호흡이 그리 가빠요? 식사하러 오셨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어요. 얼핏 젊은 적 모습이 보였어요.
할아버지가 흥분을 감추려고 너스레를 떨어요.
“그쪽을 보려고 달려오느라 숨이 찼소.”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해요.
“일단 의자에 앉아요.”
"이젠 지난 이야기는 터놓을 사이도 되지 않았소!”
할아버지는 말했어요.
할머니가 의자에 앉으며 물어요.
“평소엔 묻지도 않으시더니만.”
“일을 그만두니 잡생각만 들더이다.”
“한 많은 인생 들어서 뭣 하려고요?”
“죽기 전에 털어놓으면 저승 가는 길 편하잖소!”
“우리 손녀가 걱정돼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할머니의 눈동자에 근심이 가득했어요.
“수정이 부모는 어찌 됐소?”
할아버지는 조심스레 물었어요.
“아범이 암으로 죽던 그날로 도망가더이다. 온전치 못한 딸을 버리고서요. 모진 년!”
할머니는 분노를 하며 떨었어요.
“괜한 걸 물어봤소.”
할아버지는 미안해했어요.
“아닙니다! 이 년 팔자가 사나운 거지요.”
할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나저나 수정이 구두의 그림은 뭐요?”
할아버지가 눈을 반짝거려요.
“호호! 풋사랑의 흔적이랄까요. 이젠 기억도 안 나요.”
할머니의 마음이 녹았어요.
“들려주지 않겠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빤히 보았어요.
“조용하신 분이 오늘따라 왜 이러시나요? 얘도 아니고. 결혼 안 한 게 후회되세요.”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빨개졌어요.
“수정에게 잘해준 보답으로 해 주는 거예요.”
할머니는 미안했던지 추억을 들려주었어요.
할머니의 고향은 산과 냇물이 어울려진 자그만 시골이었어요. 냇물을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맑고 깨끗했고 곱고 어여쁜 산새와 꽃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마을이었어요. 게다가 사람도 자연을 닮아서 집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될 정도로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었어요.
순자(할머니)는 맑고 착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예비 신부였어요.
“순자야! 잘살아야 한다.”
순자의 어머니가 훌쩍여요.
“아랫마을로 가는 건데요.”
순자는 애써 담담히 말했어요.
“순자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었어요.
“돌칠 아!(할아버지) 왜?”
“네가 시집간다기에 이거 주려고.”
돌칠 은 애써 밝게 말하며 그림을 주었어요.
“어머! 고맙다.”
순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행운이 있을 거야.”
돌칠 도 훌쩍였어요.
돌칠 은 순자를 짝사랑했어요. 그러나 용기가 없어서 머뭇거리기만 했을 뿐, 고백은 못 했어요. 돌칠 은 순자를 그림자처럼 지켰어요.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밤길 같이 걸어주고 온갖 어려운 일도 도왔어요.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하여 돌 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던 순자의 부모가 혼담을 약속해버렸어요. 그 소식을 들은 돌칠 은 밤새 울었어요.
돌칠 은 마지막으로 그림을 주고서 떠났어요. 김순돌로 계명도 했어요. 모든 걸 잊고 새로이 출발하려는 것이지요.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럼, 잘 사셨소?”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림이 거짓인가 봅니다. 6.25가 나서 남편은 죽었고 간신히 얘만 낳아 키웠어요.”
할머니의 눈물을 본 할아버지가 자책했어요.
‘내가 용기를 내어 결혼했더라면 지금보다 낮지 않았을까.’
“갖은 고생은 다 하면서 아들을 키웠건만, 손녀가 장애라니.”
할머니는 손녀를 걱정했어요.
“그럼, 행운도 없는 그림은 왜 그렇소?”
할아버지는 물었어요.
“손녀가 행운이 있길 바란 거지요.”
할머니는 말하고서 긴 한숨을 쉬었어요.
할머니가 물어요.
“할아버지는 어찌 혼자세요?”
“첫사랑을 잊지 못해 서지요.”
할아버지의 얼굴이 빨개졌어요.
“엄청 예뻤나 보군요.”
“예뻤죠! 세상을 덮을 만큼!”
“순정파가 여기에 있었네요. 호호!”
“이 나이에 순정은!”
할아버지는 창피함을 감추려고 가게를 나왔어요.
마침 수정이가 빨개진 할아버지와 마주쳤어요.
“땅에 떨어진 벚꽃을 주웠어요. 예쁘죠!”
수정이는 밝게 말했어요.
할아버지가 허리를 숙여 수정이의 맑은 눈을 보아요.
“그래! 너처럼 예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