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
설이가 모녀를 깨워요.
“어서 따뜻해져야 기름 절약할 텐데.”
아직 초봄이라 보일러를 켜는 엄마가 설을 보며 투덜거려요.
'전기장판 쓰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러고 싶지만, 설(고양이)이가 보일러만 좋아해서예요.
“원! 저리 까다로워서야!"
여러 번 보았지만, 보일러와 전기장판을 구별하는 게 신기한가 봐요.
따가운 시선을 느낀 설리가 엄마의 품으로 안겨 애교를 떨어요.
“저리 가! 뭐가 예쁘다고!”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살짝 밀어내요.
그러며 설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요.
모녀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던 중 '낑낑' 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 소리가 ‘살려 주세요!’ 하는 절박함 같아서 온 신경을 집중한 채 더듬더듬 찾았어요.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나 봐요. 좁은 골목에서 찾았어요.
“어머! 어떡해!”
눈에 묻힌 고양이를 본 민지가 발을 동동거렸어요.
엄마는 서둘러 눈을 걷어냈어요. 몸이 얼음장인 고양이를 만져보는 엄마도 새파래졌어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어요.
“이걸 어째!”
엄마는 고양이를 들고뛰었어요. 다행히도 집과 가까웠어요. 방에 들어온 엄마는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따뜻한 음식도 주었어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자 건강하게 깨어났어요.
“야옹!”
고양이는 엄마와 민이를 번갈아서 몸을 비볐어요.
“고맙다는 거냐! 호호호!”
“이름은 뭐라고 해요?”
민지가 돌돌 눈동자를 굴렀어요.
“그래! 눈 속에 있어서 설이라고 하자!”
엄마가 방긋 웃었어요.
“설! 좋아요!”
“야옹!”
민지도 고양이도 방긋 웃었어요,
엄마는 설리가 눈에 파묻힌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어요. 이웃들도 “모른다.” 고 했어요. 그래서 탐정 놀이는 그만두었어요.
'그때 전기장판으로 살렸어야 했는데.'
엄마가 입을 삐죽여요.
설이가 가족이 된 후부터 모녀의 일이 늘어났어요. 설을 목욕시키고 식사 주고 대소변을 치우는 거예요. 월, 화, 수는 엄마가 목, 금, 토는 민지가 일요일은 같이 하는 거예요. 귀찮을 때도 있지만, 엄마는 토요일 날 민지가 심심해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토요일도 일하니까요. 요즘 아이들은 휴일도 학원을 가요. 엄마도 학원에 보내고 싶지만, 형편이 어려워 보낼 수 없어요.
오늘도 학교 가는 민지와 장애인에게 동화 구연을 가르치러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하는 ‘설’
"오늘도 집 잘 지켜!"
엄마가 활기차게 말해요.
“안녕”
민지는 손으로 인사해요.
그런데 오늘은 서리가 "야옹! 야옹!" 저도 따라가고 싶다고 보채요.
"안 된다는 거 알잖아. 맛난 거 사 올게!"
엄마는 설의 애교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요.
그러자 남편 생각이 난 엄마의 얼굴이 굳어졌어요.
3년 전이었어요. **평생교육 동화 구연가 양성과정에 엄마가 등록했어요. 처음엔 단순히 취미로 배웠는데 지금은 생계에 보탬이 되었어요.
민지 가족은 풍족하지 않았으나 행복했어요.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가족이어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민지도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밝게 자랐으며, 그 사랑에 보답하려 열심히 공부했어요.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빠가 위암이 생겼어요. 처음엔 위염 정도로 생각해서 약만 먹고 버티었어요. 그러나 완쾌는 되지 않았고 점점 나빠져서 병원에 갔어요.
의사의 표정이 어두웠어요.
“왜 이제 왔습니까!”
“무슨 큰 병에 걸렀나요?”
엄마는 초조한 얼굴로 물었어요.
“그것이…….”
의사 선생님이 머뭇거렸어요.
“괜찮으니, 말해 주세요.”
아빠는 짐작한 듯 물었어요.
“위암 말기입니다.”
선생님의 무거운 대답에 엄마는 펑펑 울었어요.
아빠가 엄마를 위로했어요.
“수술하면 괜찮을 거야.”
웃으며 말했어요.
그런 후 의사 선생님에게 용기를 주라며 눈을 깜빡이며 말했어요.
“그렇죠?”
“암요! 요즘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수술하면 완쾌됩니다.”
의사 선생님이 일부러 크게 말했어요.
수술 날이에요.
“건강하게 나올 거야.”
엄마는 아빠를 보고서 빙긋 웃었어요.
민지가 울먹였어요.
“혹만 떼면 돼.”
아빠는 별거 아니라고 했어요.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와 민이는 활짝 웃으며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빠를 보았어요. 그때만큼은 종교는 없지만, 간절히 기도했어요.
수술이 끝이 났어요.
“아빠는요?”
민지가 물었어요.
“잘 됐어. 마취가 풀리면 깨어날 거야.”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민지의 얼굴이 밝아졌어요.
그런 후 의사 선생님이 침통한 얼굴로 따로 엄마를 불렀어요.
“죄송합니다.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하염없이 울었어요.
그렇다고 슬픔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당장의 생활고가 엄마를 짓눌렀어요. 먼저 기초 생활 보장 신청부터 했어요. 그리고선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동화구연을 가르쳤어요. 그러자 넉넉하지 않지만, 생활은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며칠이 지나도 아빠가 보이지 않자, 민지가 물었어요.
“아빠는 어디 있어요?”
“우리 집이 갑자기 가난해져서 멀리 돈 벌러 갔어.”
엄마는 쏟아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어요.
“언제 와요?”
“돈 많이 벌면 올 거야.”
엄마는 아빠의 장례식을 숨겼어요.
민지가 충격받지 않도록 하려는 엄마의 사랑이지요.
엄마가 요즘 자주 하는 얘기예요.
“엄마는 장애인에게 동화구연을 가르치는 게 보람돼. 어눌한 말과 몸을 뒤틀어가며 동화를 구연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와! 그렇지만 한편으론 용기를 얻어!”
그러나 민지는 ‘어눌한 말과 뒤틀리는 몸을 보고서 왜 용기를 얻을까?' 궁금했어요.
엄마는 평범한 주부였어요. 청결한 성격으로 매일 청소와 빨래를 해서 집에 먼지 하나 없었고 깨끗해진 이불과 옷을 보면 민지는 날아갈 듯 좋았어요. 요리 솜씨도 일품이어서 엄마의 요리를 먹으면 없었던 기운도 생겨났어요.
그러나 일을 하면서부터 청소도 빨래도 매일 하지 않았고 즉석식품 먹는 날이 대부분이었어요. 민지는 엄마가 게으름쟁이가 된 건 ‘아빠가 빨리 돌아오지 않아서야.’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빠가 빨리 돈을 벌어와 예전의 생활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매일 하늘에 기도했어요. 그렇게 되면 설이도 외롭지 않을 거예요.
“땡땡땡~”
학교가 끝났다는 종이 울리자 민지는 지루한 몸 한껏 늘렸어요. 그러나 집으로 갈 수 없어요.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돌봄 수업을 들어야 해요. 민지는 학원으로 가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어요. ‘아빠가 있으니까. 학원에 가는 것이다.’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외롭지 않아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오늘은 민이가 좋아하는 요리예요. 자신이 만든 요리를 친구와 엄마가 맛있게 먹으면 날아갈 듯 좋아요.
민지는 선생님의 설명대로 정성을 다해서 떡볶이를 요리해요. 민지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요.
“뽀글뽀글”
알람이 “삐~” 하고 완성됐다고 해요.
“요리 함께 먹자!”
선생님의 힘찬 구호에 각자 요리한 떡볶이를 오순도순 정답게 먹었어요.
“엄마 왔다!”
엄마의 목소리에 민지가 활짝 웃어요.
“안녕히 계세요.”
모녀가 같이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여요.
“엄마! 내가 요리한 거!”
엄마는 민지의 떡볶이를 맛보아요.
“와! 맛있다!”
엄마가 맛있다고 하자 민지의 얼굴이 환해졌어요.
“설에게도 주고 싶어요.”
민지가 말해요.
“설이는 매운 거는 싫어한다.”
엄마의 대답에 민지가 실망해요.
그러자 엄마가 “마트에서 고양이 캔 사자!” 웃으며 말해요.
“야옹!”
집으로 돌아온 모녀를 설이가 반겨요.
“오늘도 잘 지냈어?”
엄마는 설의 등을 쓰다듬어요.
“외로웠지! 고양이 캔이다.”
그러자 “야옹!(엄마, 고마워요)’ 인사해요.
"우리도 먹자!"
엄마는 즉석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요.
민지는 엄마의 요리를 먹고 싶었어요. 그러나 축 늘어진 엄마에게 “엄마 밥 해줘!” 할 수 없었어요.
"오늘도 잘 지냈어?"
"그럼요!"
식사를 마치고 뉴스를 보는데 왕따를 당한 아이가 자살한 소식이 나와요.
엄마가 민지에게 말해요.
"요즘 왕따가 심하다고 하던데 그런 일 있으면 바로 말해!" 당부의 말에 민지는 "난 강해요. 엄마!" 하고 태권도 주먹 지르기를 했어요.
엄마가 말을 이어요.
“그걸로 안 돼! 학급에서 따돌림당하는 친구 있으면 보호해줘야 하고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
재차 말하자 민지는 잔소리 같아요.
“알았어! 그만해!”
밤이 깊어졌어요. 모녀는 자려고 이불을 폈어요. 설이도 바구니에 들어가요.
엄마가 꿈을 꾸었어요.
설에게 사료를 주자 다른 날에 비해 급히 먹어요.
엄마가 말려요.
“천천히 먹어!”
하지만 듣지 않아요. 여느 날과는 다른 태도에 엄마는 당황해요.
“천천히 먹어!”
엄마의 목소리가 올라가요.
그러자 설리가 엄마 손등을 할퀴어요.
“안 돼!”
비명에 민지가 화들짝 깨어나요.
“엄마!”
민지의 얼굴이 창백해져요.
“무서웠구나. 괜찮다.”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켜요.
그런 후 설치를 보아요.
“후!”
새근새근 잠을 자는 설리를 보자 안도해요.
다음 날 저녁에 외할머니가 오셨어요.
"어쩐 일로."
엄마가 움츠러들자 민지의 입술이 삐죽여져요.
할머니가 민지를 보며 야단쳐요.
“계집애가, 사나워서야!”
민지가 얼른 엄마 뒤로 숨었어요.
“친구 집에 놀다가 들렀다.”
엄마에게 불만스러운 말투로 대꾸한 후 민지를 보며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넋두리하듯 혀를 찼어요. 엄마의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어요.
“나 올 거 없다!”
“조심히 가세요.”
엄마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배웅해요.
민지는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엄마에게 크게 말해요.
“엄마 바보야! 할머니에게 화도 욕도 해!”
엄마가 조용히 말해요.
“그건 엄마가 잘못해서야. 그러니 할머니 미워하지 마.”
그러면서 민지를 꼭 안아요.
민지는 엄마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데 어째서 잘못했다고 하는지 알 수 없어요.
아기와 동물의 공통점은 호기심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오늘은 토요일, 설리는 엄마만 조용히 깨워요. 민지가 맘껏 꿈을 꾸라는 설이의 배려지요.
“아하!”
엄마가 작은 기지개를 해요.
“어쩜! 이리도 똑똑하니!”
엄마는 자신만 깨운 설이가 기특해요.
민지가 깨어나서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어요.
“또! 엄마 못 봤네.”
민지가 고개를 푹 숙여요.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고서 설리와 나들이를 나갔어요. 모처럼의 나들이에 흥분한 설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녀요. 이제 완연한 봄인가 봐요. 알록달록 꽃들이 저마다 예쁨을 자랑했고 사람들의 옷도 가벼워졌어요. 민지도 가벼운 옷으로 꽃의 예쁨을 넋 놓고 보아요.
“설아! 예쁘지?”
설이를 보았으나 감쪽같이 사랴졌어요.
“어디에 있어?”
민지는 먼 외진 곳까지 왔어요.
“꽥!”
민지가 소리 나는 곳을 보자 설이가 괴로워하며 바들바들 떨어요.
“설아!”
민지가 겁먹은 목소리로 외쳐요.
“왜 그래?”
민지가 울먹여요.
황급히 엄마에게 전화해요.
“왜?”
“엄마! 설이가 죽을 것 같아!”
민지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엄마의 심장이 요동쳐요.
“민지야, 천천히 말해봐.”
엄마가 부드럽게 안심시켜요.
“쾍! 쾍!”
전화 너머로 설이의 괴로움을 들은 엄마가 목이 막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꿈!’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져요.
“먼저 119에 전화해!”
엄마가 알려줘요.
“어딘지 몰라.”
민지가 당황해요.
“119 아저씨가 찾아갈 거야.”
엄마는 119 아저씨가 위치 추적한다는 것을 아니까요.
“알았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저씨! 설이가 죽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딘지 몰라요. 엉! 엉!”
“네 동생! 알았다. 이름이 뭐니?”
설이라 해서 사람인 것으로 알은 119 아저씨가 서둘렀어요.
“김 민 지!”
빨리 찾으라고 또박또박 말해요.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설아, 조금만 참아.”
민지가 설이 등을 쓰다듬어요.
“위옹~ 위옹.”
119구급차 소리에 민지가 손을 세차게 흔들어요.
“김 민 지! 여기요!”
구조대 아저씨 2명이 들것을 들고 급히 뛰어요.
“동생은?”
“설아! 이젠 괜찮아.”
구조대 아저씨가 허탈해해요.
“설이 살려주세요!”
민지가 구조대 아저씨를 보며 울어요.
“그래도 다행이네.”
구조대 아저씨는 한숨을 쉬어요.
“알았다. 동물병원에 데려다줄게.”
엄마가 동물병원에 왔어요.
“설은?”
황급히 설의 상태를 물어요.
“지금 수술해.”
민지가 떨며 말해요.
모녀는 초조하게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어요. 1초가 1시간 같았어요.
수술이 끝나고 설이가 나왔어요.
“무사한가요?”
엄마가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요.
“네! 성공입니다. 마취가 풀리면 깨어날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활짝 웃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녀는 거듭 고개를 숙어요.
설이가 마취에서 깨어났어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다음부터 아무거나 먹지 마!”
엄마가 기쁨의 눈물을 흘려요. 민지도 악의 없는 눈빛을 흘겨요.
그러자 설이가 민망한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