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약

by 손성일

아빠가 엄마는 근육 세균에 감염됐대요. 근육 세균은 근육을 먹어서 힘을 없애는 굉장히 무서운 세균으로 약을 먹어도 고칠 수 없대요. 그래서 엄마는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열심히 해요. 집에 있을 땐 텔레비전만 봐요. 그러다가 갑자기 화를 낼 때가 있어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손으로 하늘을 보며 욕을 해요. 이럴 땐 깜짝 놀라요. 아프기 전엔 곱고 예쁜 말만 하고 나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준 엄마였어요. 나는 엄마가 욕을 할 땐 무서워서 몸을 웅크려요. 몇 차례 무서워서 떠는 내 모습을 본 아빠가 말해요.

“엄마가 마음 세균에도 감염되어 그래. 마음 세균은 근육 세균보다 무서운 거야.”

아빠가 미소로 말했어요.

“마음 세균도 물리치료하면 늦출 수 있나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어요.

“마음 세균은 근육 세균과 달라. 수정이가 따뜻이 안아주면 사라지는 세균이야.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고 엄마를 꼭 안아줘.”

마음 세균은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세균은 감염되니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데 안아주면 사라진다니 꼭 안아주면 사라지는 얼음 같아요.


여름방학이 오늘로 마지막이에요. 엄마가 텔레비전과 숙제하는 내 모습을 번갈아 봐요. 그때 엄마가 손에 힘을 주며 엉금엉금 기어서 주방으로 갔어요. 그러다가 그만 컵을 엎질러서 바닥이 물로 흥건해졌어요. 나는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으러 갔어요.

“오지 마!”

그러더니 울어요. 하늘에다 욕도 해요. 날카로운 엄마 목소리가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찌르자 정말 살이 뜯긴 것처럼 아파요. 실컷 울더니 진정이 됐나 봐요. 진정이 된 엄마를 내가 살포시 안아주었어요.

“미안해!”

엄마의 목소리가 젖어있었어요.


밤이 어두워지자 아빠가 왔어요.

“모두 잘 지냈어?”

아빠의 물음에 나와 엄마는 미소 지었어요.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어요. 아빠가 알면 마음이 아플 거예요. 아빠가 치킨을 내게 주었어요.

“오늘은 치킨을 먹자꾸나.”

월급을 받은 날이면 술 냄새와 함께 치킨을 사 와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술 냄새가 싫다며 아빠를 향해 잔소리했어요. 그러나 나는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월급날이 좋았어요.

“오늘 월급 받았어요?”

내가 묻자

“아니! 방학 끝나서 슬픈 너를 위로하려고 사 왔지!”

하고 방긋 웃었어요.

아빠의 고소한 냄새가 내 가슴속 엄마의 슬픈 일을 까맣게 잊히게 했어요.


다음날 학교에 가니 친구들 얼굴이 까맣게 변했어요. 나만 그대로예요. 모두 재잘재잘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요. 해수욕장에서 수영한 일,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한 일, 시골 할머니 집에 갔던 일, 비행기를 타면 어떤 기분일까? 너무 궁금했어요.

“수정아, 너는?”

단짝 미영의 물음에 우물쭈물 망설였어요. 엄마 식사 도와주고 엄마랑 병원에 가고 엄마가 소리치면 꼭 안아주고 자랑할 일이 없었어요. 친구들은 엄마가 아픈 줄 몰라요. 괜히 말해서 놀림이나 당하지 않을까. 창피해 서예요.

“방콕 했네!”

가만히 있는 나를 진호가 놀렸어요. 나는 그만 눈물이 나왔어요.

“그러지 마!”

미영은 진호에게 눈을 흘겼어요. 그러자 진호는 삐죽이며 자신의 자리로 갔어요. 개학 첫날부터 엉망이에요.


집에 오니 엄마가 멍한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요.

“저 왔어요!”

엄마를 밝게 해 주려 애써 웃으며 인사했어요. 그렇지만 텔레비전만 봐요.

‘엄마, 나도 마음에 세균이 들어왔나 봐. 마음이 아파.’

그러다 엄마가 내게 보여준 눈물을 먹는 고양이 인형이 생각났어요. 내가 넘어져 울 때마다 엄마는 고양이 인형을 보여주며 “고양아! 고양아! 수정이 눈물 먹어라.”하고 주문하면 신기하게도 눈물이 멈췄거든요. 나는 엄마 서랍에서 고양이 인형을 꺼내어 “고양아! 고양아! 내 눈물 먹어라.”주문하자 정말로 멈췄어요.


“딩동!”

“우리 공주님, 여왕님 잘 있었어!”

나는 웃지만, 엄마는 여전히 어두웠어요.

아빠가 배고프다고 말하며 옷을 갈아입으려 방에 갔어요.

나는 아빠, 엄마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그만 뜨거운 국물을 쏟아서 팔에 작은 화상을 입었어요.

“으앙!”

내 울음에 아빠와 엄마가 놀라요.

“대인 거야? 어서 찬물에 샤워해!”

엄마가 황급히 화장실에 가라고 손으로 말해요. 그렇지만 너무 놀라서 울기만 했어요. 그때 아빠가 와서 나를 안고 화장실로 갔어요. 찬물이 닿자 조금 나아졌어요.

“그러게 왜 뜨거운 국물에 손을 대!”

엄마가 큰 소리로 야단쳤어요.


아빠와 병원에 갔어요.

“다행히 심하지 않네요. 연고 바르면 나을 거예요.”

아빠는 의사의 대답에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그러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여보! 의사가 괜찮대요.”


“왜 그랬어?”

아빠가 운전하며 물었어요.

“아빠가 피곤하니까.”

나의 울먹이는 말에 아빠가 후~ 큰 한숨을 내쉬었어요. 나도 가슴이 답답했어요.

“나 콜라 먹고 싶어.”

탄산음료를 마시면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았거든요.

“목말랐구나.”

나와 아빠는 집 앞 놀이터에서 콜라를 마셨어요.

“큭, 큭”

“억, 억”

콜라를 한 모금 마셨더니 트림이 나왔어요. 우린 마주 보며 웃었어요.


아빠는 나를 업고 집으로 왔어요. 문을 여니 엄마가 있었어요.

“다신 그러지 마!”

엄마가 크게 소리쳤어요.

그러고선 붕대 감긴 내 팔을 보더니 으악!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더니 고개를 바닥으로 숙이며 엉엉! 울어요. 나는 무서워서 아빠 등 뒤로 숨었어요.

“당신 걱정 많이 했구나.”

아빠가 엄마를 안으며 말했어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어.”

엄마가 울먹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니야, 내가 부주의해서 그래. 괜찮으니 됐어.”

“난 소리만 질렀어요. 수정이가 아파하는 데도 소리만.”

아빠가 괜찮다고 하면서 엄마의 등을 토닥였어요.

“수정에게 미안해서 미치겠어. 내가 죄가 많은 걸까?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아. 시설에 보내줘. 갈래.”

엄마의 울음에 나와 아빠도 울기 시작했어요. 내 가슴이 투명한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팠어요.

“나는 엄마가 필요해!”

내가 사나운 동물이 울부짖듯 크게 외쳤어요. 엄마 아빠가 놀라며 나를 봐요.

“나는 엄마가 필요해. 방학에 놀지 못해서 친구들의 얘기에 멍하니 있었어. 그래서 개학 첫날에 슬펐어. 어릴 때 내가 다치면 엄마가 치료해 줬잖아. 엄마 나 아파. 으앙!”

나는 소리 내어 울었어요. 그러자 엄마 아빠가 더 크게 울었어요. 나는 울음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양이 인형을 들고 왔어요.

“이건 왜?”

엄마가 훌쩍이며 나를 보았어요.

“우리 가족의 눈물 고양이가 멈추게 하려고요.”

내 말에 엄마 아빠가 살짝 웃었어요.

“그래, 정말 멈췄어. 고마워! 수정아.”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상처가 사르르 다 나았어요.


그날 밤이었어요. 누군가 내 팔을 만지는 느낌이 나서 움찔하며 눈을 떴어요. 엄마였어요. 엄마는 붕대 위로 손을 올리더니 말했어요.

“하나님. 수정이 상처 흉터 없이 낮게 해 주세요.”

“엄마!”

내가 부르자 엄마는 얼른 눈물을 닦았어요.

“또 고양이 인형 필요하겠다.”

나는 웃으며 말했어요. 그리고 엄마를 꼭 안아주었어요. 엄마를 아프게 하는 마음 세균을 사라지게 하는 수정이 약을.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맛있는 소리가 나서 주방으로 갔는데 엄마 아빠가 나란히 음식을 만들었어요.

“엄마! 아빠!”

“우리 딸 일어났어! 어서 씻고 식사해라.”

엄마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나는 엄마에게 갔어요. 그러자 엄마가 내 눈을 바라보았어요. 예전의 맑고 따뜻한 눈이었어요.

“수정아, 미안해. 이젠 울지 않을 게.”

“마음 세균 없어진 거야.”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었어요.

오늘은 엄마가 해준 밥을 먹어서 힘이 났어요. 나는 활짝 웃으며 교실로 들어갔어요.

“오늘 무슨 일 있니?”

미영이가 물었어요.

진호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어요.

“울보가 오늘 이상하다.”

“방학 동안 아픈 엄마 돌봤어.”

나는 진호에게 톡 쏘았어요.


집에 오니까 엄마가 활짝 웃으며 나를 보았어요.

“이리 와!”

나는 콩콩 뛰어서 엄마에게 갔어요.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었어요.

“이제 내가 매일 안아줄게.”

이젠 집으로 오는 길이 무섭지 않아요. 그리고 고양이 인형도 필요 없어요. 고양이 인형보다 백배 더 강력한 엄마 빨강 약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