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빗방울 소리가 내 몸을 누른다. 점박이 강아지 인형도 귀찮은 듯 하품만 해댄다. 그러나 해님이 가장 툴툴거린다. 비가 멈춘 뒤 젖은 세상 온 힘을 다해 말려야 해서다.
“이 녀석, 일어나지 못해!”
호랑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내 입이 반사적으로 ‘일 분만 더!’간절히 부탁했지만, 엄마는 이불을 젖히는 것으로 거절하셨다.
“아이, 귀찮아!”
비로 묵직해진 솜 같은 몸 겨우 일으켜 욕실로 갔다.
“빨리 어른 되고 싶다.”
학교도 가지 않고 숙제도 없는 어른이 부럽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느릿느릿 식사했다.
“어서 먹어! 학교 늦겠다!”
엄마가 재촉하자 나는 물 마시듯 식사를 끝냈다.
문을 여니 빗방울이 한층 굵어졌다.
“다녀올게요.”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엄마는 나보다 공부가 먼저인가 보다.
수업은 지루하고 따분하다. 놀이터와 오락실에 가고 싶지만, 엄마의 눈이 무서워 칠판만 멍하니 보았다.
“이 문제 풀 사람?”
선생님의 질문에 친구들은 눈치만 살폈다.
고요한 정적만이 계속 흐르자
“정말 없나요?”
선생님이 얼음장처럼 말하셨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자
“민! 나와.”
선생님은 포기하셨다.
‘또, 민이야.’
내 입이 툭 나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공부를 가장 잘하니까. 재빠르게 문제 푸는 민이가 그저 놀랍다.
지루한 수업에 하품이 나오려 하자 재빨리 고개 숙여 하품했다.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한지 여자 짝이 쪽지를 주었다.
-마음으로 시간아, 빨리 가라. 주문 외워봐.
-그런다고 빨리 가니?
내가 쪽지로 되물었다. 그러자 짝이 눈으로 재촉했고, 속는 셈 치고 ‘시간아, 빨리 가라.’ 마음으로 외웠다.
그러자‘딩동~ 딩동~’ 마침 종이 울렸다.
“진짜네!”
내 눈이 왕 사탕처럼 커졌다.
“우리 집에서 게임하자.”
민이는 새 게임팩을 사면 자랑한다.
“엄마! 왔어요.”
“왔니?”
아줌마가 미소 짓는다.
“안녕하세요!”
난 씩씩하게 인사했다.
“민호구나!”
부드러운 아줌마의 목소리가 가슴을 환하게 했다.
“내 방에서 기다려.”
민이가 욕실로 갔다.
민이 방은 침대며 컴퓨터며 텔레비전… 온갖 게 다 있다. 이런 방이면 공부도 즐거울 것 같다. 그에 비해 내 방엔 책상과 의자가 전부다. 민이가 들어오자 게임을 시작했다. 요즘 최신 유행인 ‘인어공주를 구하라!’였다. 화려한 그래픽과 웅장한 소리에 빠진 마음이 벙글벙글 웃었다.
“똑똑똑”
아줌마의 손에 간식이 있었다.
“맛있게 먹어!”
“고마워요, 엄마!”
“감사합니다, 아줌마!”
달콤한 초콜릿이 게임을 더 즐겁게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졌다. 그런 내게 "그만하자!" 민이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집으로 가는 내내 돌에‘툭툭’ 아쉬움을 풀었다.
성난 엄마를 보자 고개가 내려갔다.
“왜, 늦었어!”
엄마의 뿔난 소리에
“정민이랑 놀았어.”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가
“학교 마치면 집에 와서 숙제부터 해야지!”
내 머리를 꾹 누르셨다.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욕실에서 짜증을 씻었다.
“밥 먹고 숙제부터 해.”
누그러진 엄마를 보자 잔뜩 움츠린 채 부탁했다.
“엄마, 부탁이 있어요.”
“뭔데?”
“게임기 하나만 사주세요.”
“안 돼!”
엄마는 단칼에 자르셨다.
그러자 내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나를 본 엄마가
“사내 녀석이….”
한숨 쉬셨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난다. 자상하신 아빠라면 사 주셨을 거다.
아빠는 가난해도 내가 사달라는 건 다 사주었다.
“돈도 없는데! 후!”
엄마가 아빠에게 핀잔을 주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에요!”
하고 얼버무렸다.
그래서 엄마보다 아빠하고 친했다. 나는 아빠가 영원히 살아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고된 일로 쇠약해져 가고 있었고 결국 돌아가셨다. 아빠가 사라지자 지옥 같은 일만 벌어졌다. 엄마는 “안 돼!”라는 말만 하셨다. ‘사탕 많이 먹지 마라.’‘초콜릿 많이 먹지 마라.’ ‘TV 많이 보지 마라.’ ‘하지 마라.’‘하지 마라.’
책상에 앉았지만 ‘인어공주를 구하라!’ 게임만 맴돌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어공주 구하는 왕자가 될 수 있다면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겠어요.’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정말이니?”
갑작스러운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님이다! 너의 기도가 하도 간절해 들어주러 왔다.”
나는 다시 물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러니 너도 약속 지켜라.”
“네! 그러고 말고요!”
내가 약속하자 바람이 게임 속으로 데려다주었다.
“기사님! 갑옷과 칼, 방패 대령했습니다.”
요정이 말하자 순식간에 멋진 기사로 변했다. 내 심장이 콩닥콩닥 튀었다.
“출전하셔야죠!”
요정이 문을 열자 의기양양하게 한발 뗐다.
첫 번째는 마을에서의 전투다.
“이얏! 이얏!”
에너지가 조금 줄었으나 가볍게 첫 번째 보스를 물리쳤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바닷속 전투다. 늙은 마법사에게 바다에서도 숨 쉴 수 있는 알약을 사서 검은 마녀가 있는 궁으로 향했다. 벌 때 같은 적들과 중간급 보스에게 에너지가 많이 잃는 험한 전투 끝에 검은 마녀의 궁전에 왔다.
“여기까지 잘도 왔군!”
뱀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이글거리는 불이었고 이빨은 드라큘라 같았으며 창백한 피부가 공포 자체였다.
“기사님!”
철창에 갇힌 인어공주가 나를 애타게 부르자 얼굴이 빨개졌다.
“반드시 구해 주리다!”
그러나 마지막 보스답게 강했다. 여러 번 공격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많은 체력을 사용해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 여기에 온 게 후회가 되었다. 탈출하고 싶었고 무섭기만 했던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하하! 이제 끝이다.”
검은 마법사의 날카로운 손톱이 나를 덮치자 ‘엄마!’가 불렀다.
“민호야! 민호야!”
흔드는 소리에 깨어나니 엄마가 보였다.
“웬, 땀이니? 오늘은 일찍 자라.”
엄마가 걱정했다.
그러나
“숙제하고 자겠어요! 하하!”
나의 뜻밖의 대답에 엄마가
“별일이네!”
당황하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고마워요!”
감사의 인사를 거듭했다.
그런 나를 보고서 점박이 강아지 인형이 ‘컹컹’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