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과 클라리스 01
생장 피데포르. 프랑스길의 출발지. 난 55번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있다. 일반적으로 이곳에 도착해서 순례자 등록을 마친 뒤 순례자 여권을 받고, 길을 걷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가리비를 하나씩 산다. 그렇게 등록을 마친 후, 그다음 날부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기 시작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며칠 동안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많이 써서인지 몸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이런 상태로 다음날부터 길을 걷기에는 힘들 것 같아, 하루 더 이곳에 머물면서 동네 구경도 할 겸 여유 있는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를 편히 보내고 나면 컨디션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 생각했고, 길의 시작부터 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바욘에서 출발하여 오후쯤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하루 동안 함께 지낼 다른 친구들 몇몇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친구들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친구들은 프랑스에서 왔다는 친구들이었다. 다섯 명이 한 그룹을 이루는 친구들이었는데, 프랑스 ‘보르도’라는 도시에서 공연 같은 걸 하며 서로 친해졌다고 했다. 그들 대부분은 나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였다. 그 무리 중에서도 콧수염과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검은색 헤드밴드를 이마에 한채 몇 달은 미용실에 안 간듯한 머리를 손 가는 대로 대충 정리한 모습이 마치 히피 같은 친구가 내게 말을 걸었다.
“헬로. 여기 혼자 온 거야?”
“응. 오늘 여기 도착했어.”
“오호! 우리도 오늘 도착했어! 우린 프랑스에서 왔어. 넌 한국에서 왔지?”
“잉? 그걸 어떻게 알았어?”
“원래 산티아고길 걸으러 한국 사람들 많이 온다고 들었어. 그래서 그런 거 같았어.”
“그래도 단번에 그걸 안다는 게 신기하다.”
나와 이야기를 하는 내내 담뱃잎을 꺼내 담배를 만드느라 그의 손은 굉장히 바빠 보였다. 그 친구의 이름은 조나단이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다. 조나단은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엔, 그의 큰 눈은 더 커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조나단 옆에 앉아서 함께 담배를 만들던 친구하나가 불어로 조나단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그녀 역시 조나단과 같은 무리였는데 그녀의 이름은 클라리스였다. 클라리스는 금발의 긴 머리와 함께 왠지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여배우인 마리옹 꼬띠아르의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큰 이목구비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클라리스는 겉모습보다 웃음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그녀의 웃음소리는 목소리가 걸걸한 50대 아저씨가 ‘꺽꺽꺽’ 거리는 웃음소리였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클라리스의 웃음소리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처음엔 그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당황스러워 적응되지 않았었는데, 나중에는 다시 만났을 때에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수노 스너 발음하기 어렵다.”
“맞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하더라. 그래서 그냥 스노우라고 얘기하면 쉽게 알아듣더라고.”
“그래도 난 순.호. 라고 부르겠어.”
“스노우. 미안한데, 난 스노우라고 불러도 될까? 발음하기가 어렵네..”
“문제없어! 너네 편한 대로 부르면 되지!”
클라리스에겐 스노우로 조나단에겐 순호로 내 이름은 정해졌다. 서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클라리스와 조나단을 포함한 이 무리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출발지는 이곳이 아니라는 말에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순례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길이 5가지의 길만이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프랑스길의 출발지인 이곳 생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프랑스 북부에서부터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그들이 알려준 길의 루트를 핸드폰으로 찾아보니, 그들은 이미 800km 정도의 길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걷고 있었다. 클라리스와 조나단에게 그럼 어디까지 걸어갈 계획인지 물었을 때, 그들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발길 닿는 곳까지 걸어보려 한다고 말을 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둘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너희의 여행이 부러워. 그렇게나 긴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게 난 너무 부럽다.”
“음.. 부러울게 뭐가 있지? 이건 정말이지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누구나 마음의 결정만 내리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마저 부럽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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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호 네 삶이야. 네가 행복한 걸 찾아.”
두 친구 말을 듣다 보니, 자신의 삶을 직관적으로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게 있어도 행복이란 게 참 특별한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을까 란 생각을 잠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둘과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무리의 다른 친구 셋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내 한참 동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상당한 양의 치즈와 양배추를 잘 개 썰어 섞은 뒤 넓적한 햄을 둘둘 말고 있었다. 어떤 맛일지 상상이 안 가는 음식이었지만, 햄과 치즈가 들어가서 맛은 있어 보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떠나는 날도 아니었는데, 일찍 방에서 나와 주방 테이블에서 전날 저녁 숙소 관리인이 미리 준비해 놓은 커피와 비스킷을 먹고 있을 때, 프랑스 친구들 하나둘씩 방에서 나왔다. 그들은 어제 미리 만들어둔 이상한 샌드위치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나단과 클라리스가 커피에 비스킷만 먹고 있던 내게 물었다.
“스노우. 너 이 샌드위치 좀 먹을래?”
“그게 무슨 샌드위치야? 맛있어?”
“응. 치즈랑 양배추, 햄으로 만든 샌드위친데, 네가 치즈를 좋아한다면 꽤 맛있을 거야”
“그럼 조금만 먹어볼게.”
난 분명히 조금만 달라했는데, 그들은 샌드위치 한 덩이를 건네주었다. 칼로 햄 한가운데를 자르니 어마어마한 양의 치즈가 넘쳐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이게 과연 맛이 있을지 약간의 의구심을 품은 채 맛을 봤다.
“어때? 맛있지 않아?”
그들은 내게 굉장히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맛은 있었는데, 그렇게나 많은 치즈를 눈뜨자마자 먹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치즈피자를 먹어도 그렇게 많은 양의 치즈는 본 적이 없었다.
“음.. 맛있어. 근데 온통 속이 치즈뿐이네?”
“응! 프랑스 치즈로 만든 샌드위치야! 네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메르씨!(고마워)”
분명 맛은 있었는데.. 내겐 조금 도를 지나친 치즈양이었으나, 그렇게나 해맑은 표정을 하고, 어떠냐고 묻는 말에 다른 말을 할 순 없었다. 만들어준 사람의 호의와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샌드위치를 한입한입 다 먹었을 때, 클라리스가 내게 하나 더 먹을 건지 물었다. 하지만 너무 배가 부르기도 했고, 치즈 때문에 속이 더부룩하기도 했다. 더 이상은 못 먹겠다고 하니 그제야 친구들의 표정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들은 먹고 남은 샌드위치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서둘러 짐을 챙겨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커피 한잔을 더 가지고 숙소 앞 벤치에 앉아, 친구들의 떠날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그들의 짐을 보니 얼마나 오랫동안 걸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배낭 위를 덮는 레인커버가 여기저기 찢어져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다른 순례자들의 배낭과 옷들은 나름 깔끔했는데, 이 친구들의 옷과 배낭은 상당히 오래되어 보였다.
자기 몸보다 큰 배낭을 들쳐 메고 떠날 채비를 다 하고 나서 나는 친구들 한 명 한 명과 포옹했다. 포옹을 할 때마다 친구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인지, 아침을 너무 든든히 먹어서인지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몸 건강히 다치지 않고 여행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멀어지는 친구들에게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프랑스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 편견을 깨준 사람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도 생장을 출발하여 순례길을 걸은 지 2주쯤 되었을 때, 산토 도밍고라는 마을의 한 카페에 앉아있을 때 우연히 카페 앞을 지나가는 조나단과 클라리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난 뛰쳐나가 황급히 그들을 불렀다.
“조나단! 클라리스!”
“어?? 스노우!!”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워! 잘 지냈어?”
“응! 다른 친구들은 먼저 떠났고 나랑 클라리스는 쉬엄쉬엄 걸어가고 있어! 넌 어때?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물론이지!”
그렇게 두 친구와 다시 포옹을 했는데, 두 친구의 가슴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내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생장에서의 첫 번째 헤어짐에서는 알지 못했다.
둘은 이곳에 전날 도착해서 이제 출발하는 길이라 했다. 그동안 걸어왔던 서로의 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조나단이 조금만 기다려보라며 카페를 나갔다. 15분쯤 지났을까. 조나단이 카페문을 열며 허겁지겁 들어오곤 나에게 날 위한 선물이라며, 내 손바닥 만한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특별한 건 아닌데 한번 열어봐”
그가 건네준 꼬깃꼬깃한 초록색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보니, 그 안에는 진한 보라색 조형들이 나름의 규칙성을 갖고 매달려 있는 십자가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종교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고마운 그의 마음이 내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예쁘다. 너무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그거 가톨릭 묵주야. 네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이 묵주가 조금이나마 지켜줬으면 해서 네게 선물하고 싶었어!”
“아. 이게 가톨릭 묵주구나. 목에다 하면 되는 거야?”
“응.! 이렇게 하면 돼!”
그렇게 말하며 조나단은 그의 목에 걸고 있던 묵주를 꺼내 보여주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꼭 목에 걸고 다닐 필요는 없고, 네 품에만 지니고 다녀도 돼.”
“너무 고마워. 너무.”
이날 조나단이 내게 준 선물은 작은 크기였지만, 그 작은 선물이 지닌 가치는 너무나 컸다. 좋은 기억을 가져다준 그의 마음이 너무도 귀하게 여겨졌다. 그날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서로의 소식을 물으며,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이가 될지는 생장에서 헤어졌을 때 몰랐던 것처럼, 우연히 만났던 이날의 두 번째 만남에서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