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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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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n 27. 2023

Episode 3

스테이시와 파리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여행을 오기 전 한국에서 예약한 호텔의 로비였다. 그녀는 그 호텔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파리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파리 10구에 위치한 예약된 호텔에 들어서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이곳을 찾아왔고, 들어온 호텔 카운터에는 윤기가 흐르는 뽀글뽀글한 곱슬머리가 인상적이었던 여자 직원 혼자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카운터 옆에 내 몸만큼이나 크고 무거운 배낭을 바닥에 툭 던져놓은 채 직원에게 예약한 내용을 보여주었다.


“오늘부터 3일 예약했습니다. 아마 soonho로 예약돼 있을 거예요.”

“네, 확인해 볼게요. 근데 우선 따뜻한 커피 한잔 드릴게요. 라떼로 드릴까요? 에스프레소로 드릴까요?”

지금은 2월이었다. 나에겐 지금 당장 침대보다도 따뜻한 차 한잔이 더 반가웠다. 에스프레소를 자주 마셔보진 않았지만, 라떼는 우유를 못 마시는 내게 또 다른 시련을 불러올 것만 같았다.

“에스프레소로 주시겠어요?”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호텔 직원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돌체 캡슐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가져다주었다. 난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권과 코로나시대인 만큼 그에 필요한 여러 서류들을 넘겨주며


“저 죄송하지만 확인하시는 동안 담배 한 대 피고와도 될까요? 커피가 생겼으니 안 피울 수가 없겠네요..”


 직원은 약간의 황당한 표정과 함께 이내 재밌다는 듯 웃는 얼굴로 알겠다며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 난 크고 무거운 짐 없이, 오늘의 가장 중요한 미션을 해결한 채 호텔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옆에 있던 화단 귀퉁이에 놓은 채, 담뱃불에 불을 붙여 담배 한 모금을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니 동네의 아기자기하고 잘 정돈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지금 내가 파리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고맙다는 말도 할 줄 모르는 세상 속에 ‘나 혼자 있다’라는 걸 알았다. 출발점에 도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온 나를 다시 한번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난 호텔에 대한 이용정보들과 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곤 그녀는 파리에 대한 여행 정보가 필요한지 내게 물었고, 덕분에 난 파리 곳곳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이기도 했고,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대이기도 해서 그녀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스테이시였다. 지금은 대학에서 공부 중이었으며 일주일에 3일 정도 이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스테이시의 집은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 이상 가야 하는 거리에 가족들과 살고 있다고 했다. 나 또한 나에 대한 이야기와 하고 있는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니, 스테이시는 굉장히 호기심 어린 얼굴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서투른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급격한 피로가 몰려오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체크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와서 스테이시에게 나중에 꼭 보여줄게라는 말과 함께 짐과 키를 챙겨 서둘러 방으로 올라갔다.


 하루 동안 코로나로 인해 골치 아팠던 서류준비를 마무리 짓고 어릴 적부터 보고 싶었던 에펠탑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스테이시가 전날 알려줬던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그전에 여행했었던 다른 유럽거리들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리였다. 길을 걷다 보니 대학생 때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던 ‘미드나잇 인 파리’를 인상적으로 본 내게 파리는 야경과 에펠탑의 도시였다. 영화 자체의 장면들도 하나하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극 중 아드리아나 역으로 출연한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의 매혹적인 눈빛은 내게 프랑스 여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영화 속 장면들을 기억하며 센강을 따라 30여분을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사진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에펠탑이 점점 가까워지며 그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난 그 크기에 압도당했다. 정말이지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크기였다. 아마도 이렇게까지 크고 높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센강과 에펠탑 사이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으니 한국을 떠나 이곳에 온 이유와 코로나 서류준비로 받은 스트레스들을 잊은 채 정말 순수한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어느새 해가 져물어 가려하고 있었다. 이제 그 유명한 에펠탑 야경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볼 생각에 설레어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습을 보지 않고 남겨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여지를 남기고 싶었던 거 같다. 그렇게 한다면 여기에 다시 와야 할 이유를 남길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은 더 살아보자’ 그것도 아주 행복하고. 나처럼. 그 번쩍임의 첫 순간이 그때가 아니었을까.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숙소 근처 마트로 가는 길에 테스를 만나 유심을 사게 되고, 마트에 들러 내일 이동 중에 먹을 간식들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에는 전날 볼 수 없었던 스테이시가 웬일인지 늦은 시간까지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 3일 동안 머물면서 스테이시는 가장 가까운 프랑스 사람이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큰 눈으로 웃으며 날 반겨주었다. 저녁으로 카레를 먹어서 인지 절실히 생수가 필요했다. (카레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음식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 먹은 카레는 굉장히 짰다.)


“혹시 여기서 생수를 살 수 있을까?”

“물론이지! 그런데 호텔이라 마트랑은 가격이 많이 달라..”

“응? 얼만데?”

“4유로야”

“4유로?”


 그 순간 내 주머니에는 큰 단위의 돈과 동전이 있었지만, 100유로짜리를 주기엔 미안했고 동전으로는 2유로 정도쯤 밖에 없어 아까 들렀던 마트에 다시 가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마트에서는 1유로 정도면 호텔에서 파는 물보다 두 배는 큰 1리터짜리 물을 살 수 있었다.


“많이 비싸다. 그냥 사거리 지나 있는 마트에서 사는 게 낫겠다.”

“음… 그래. 그게 좋을 거야! 10분 정도 걸으면 되니깐, 그렇게 해.”

“응, 고마워”

호텔에서 나와 100미터쯤 걸었을까? 

“순호! 잠깐만!”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길을 걷던 내게 내 이름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호텔 쪽에서 어깨에 맨 가방이 앞뒤로 정신없이 춤을 추며 스테이시가 다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야?”


 왼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은 그녀가 내 앞에 멈추고 나서야 조금은 진정되어 보였고, 그녀의 한쪽 손에는  생수 하나가 있었다. 


“순호야 이거 마셔.”

“응? 이걸 왜?”

“내가 샀어. 생각해 보니 고작 물하나 사러 마트까지 가기에는 멀잖아.”

“안 그래도 되는데.. So much Merci!!”


 너무 고마웠다. 단순히 고맙다는 말로 이 감정이 다 채워지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표현의 단어였다. 스테이시는 영어와 불어가 말도 안 되게 섞여있는 내 말에 크게 웃으며, 안 그래도 지금 퇴근하는 시간이라 서둘러 나왔다고 했다. 스테이시는 마트 가기 전 사거리에서 버스를 타야 된다고 했다. 같이 가서 버스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기로 하고 우리는 정류장까지 걸으며 서로의 sns도 교환하고, 내일 떠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가 학교에서 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버스 온다. 순호. 네 여행은 내일부터가 진짜겠다.”

“그러겠지?”

“항상 몸 조심하면서 여행 잘하고. 연락할게!”

“정말 고마워! 스테이시. 너도 잘 지내고! 연락할게!”


 그게 스테이시와의 마지막 대화였고 헤어짐이었다. 스테이시와 헤어지고 다시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나를 도와주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친구였다.

 한 손에 스테이시가 준 물을 손에 꼭 쥔 채 마트로 가 맥주 한 캔을 사고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호텔방안 침대 위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셨다.

 그날의 맥주가 그렇게나 내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던 건 단지 차가워서가 아니었던 거 같다. 

 사람의 인연이란 정말이지 너무나도 멋진 일이다. 그 인연이 좋은 인연일 수도 그렇지 않은 인연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며,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파리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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