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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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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n 27. 2023

Episode 1

서울-파리공원

작업실이 있는 동네 주변에는 공원들이 많이 있다. 공원들 중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공원 한쪽 편에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과 개선문을 사람 크기만 하게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있다. 아직 파리라는 도시를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서는 에펠탑이 있는 ‘뚜르 에펠 정원’에 있는 것만 같은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파리공원이라 불렀다.

 공원 안에는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주변 높은 건물이나 나뭇가지처럼 시야를 방해하는 장애물 하나 없이 오로지 하늘만을 바라볼 수 곳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작업하다가도 창문 밖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 밤이면, 그곳으로 가 밤하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별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하루 동안 작업과 프로젝트들로 인해 마구 휘저어져 흙탕물처럼 탁해진 마음과 생각들이 다시금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구름이 없는 날 밤이면 밤마다 그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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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 몇 년을 지냈던 작업실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친 뒤, 현관문 앞에 서서 처음 들어올 때처럼 테이블 하나만이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좋았던 기억들 그렇지 않았던 기억들 모두 떠오른다. 그동안 여기에서 꿈꿨던 모든 게 여기 곳곳에 배어있었다. 그토록 잊을 수 없던 기억들을 안고, 젊은 날 마음껏 꿈꿀 수 있게 해 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항상 이곳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기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새기며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삶의 목적이 사라지고 걸어갈 방향도 잃어버린 채, 아무도 없는 거리에 홀로 서있다. 텅 빈 거리처럼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둘 곳이 없어졌다.

 서른넷.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때쯤 문득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걸어보고 싶었고, 걸으며 원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겐 그럴 시간이 절실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게 걸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름의 기준을 세워보고 난 후, 그 조건들에 맞는 장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세운 조건들이란 아래에 해당한다.


1. 그 누구도 나란 사람의 존재를 모르는 곳 이어야 한다.

2.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소식이 가능한 늦어야 한다.

3. 모든 게 마무리되었을 때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아야 한다.

4.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장소여야 한다.


 이 조건들에 맞는 장소들이 꽤나 많았지만, 네팔 히말라야, 뉴질랜드 말포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추려졌다. 하지만 세 장소들 중 히말라야는 7년 전에 걸어본 경험이 있었고, 말포드가 있는 뉴질랜드에는 친구가 살고 있었기에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만이 남게 되었다. 목적지가 산티아고. 피니스테라로 결정된 순간 그 자리에서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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