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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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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n 27. 2023

Episode 13

유정 02

며칠 뒤 아줌마를 로그로뇨라는 도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난 하루를 더 머물렀는데, 도착한 날에 비해서 다음날에는 이곳 알베르게엔 다른 순례자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작은 마을이 아닌 만큼 여러 군데의 알베르게가 있다 보니 다들 여기저기 흩어진 거 같았다. 그렇게 이날 저녁 장을 봐와서 아주머니와 또 다른 한국인 아저씨 한분과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다. 이날의 메뉴는 삼겹살과 약간의 샐러드와 치즈 그리고 와인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길을 걸으며 아주머니와 몇 번을 더 만나게 되었다. 함께 길을 걷고 같이 쉬고 같이 식사를 하며 이곳에서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재밌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함께 걸으면서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 딸한테 장가 오라는 거였다. 그 이야기가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고맙기도 했고 재밌었다. 처음에는 마냥 장난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 듣다 보니, 나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텐데 어떤 생각으로 저런 얘기를 하실 수 있을까 궁금했다. 더군다나 아줌마의 딸은 나보다 12살이 어렸다. 


“순호씨는 어쩜 이렇게 예의가 바르실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당연히 제가 해야죠.”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이래서 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니깐. 봐봐요. 신선생님(나이가 지긋하시던 한국인 아저씨) 요새 이런 청년이 어딨어요. 안 그래요?”

“허허.. 그렇긴 하지. 순호씨는 부모님이랑 있을 때도 이렇게 해?”


 순간 멈칫했다. 부모님과 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그럴 때는 난 음식을 해본 적이 손에 꼽았을뿐더러 식사준비를 할 때에도 그저 반찬이나 숟가락만 챙겨 놓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 집에서는 그냥 이것저것 나르기만 하죠.. 하하”

“에이 그건 당연한 거지. 엄마가 해준 요리가 제일 맛있을 텐데.”

“그렇죠 그건..”

“아니 그래서 순호씨는 내일 출발하시는 거예요?”

“네, 어제 도착해서 오늘 하루 푹 쉬었으니, 내일 다시 출발해야겠죠? 아주머니는요?”

“나도 내일 출발해야죠. 미국 가는 비행기표가 일정이 빠듯해서 서둘러야 돼요. 그나저나 여긴 왜 혼자 왔어요? 혼자보다 둘이 오면 더 좋을 텐데.”

“아, 친구들은 다들 회사 다니느라 일정을 빼기가 좀 힘들기도 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그래서요”

“혼자 여행하는 거 좋죠. 나도 여행하는 거 좋아하는데, 가족들이랑 같이 하는 여행도 좋긴 한데, 혼자 하는 여행만큼 좋은 건 없는 거 같아요.”

“맞아요. 혼자 하는 여행도 좋고, 함께하는 여행도 좋죠.”

“그럼 다음엔 우리 딸이랑 같이 셋이서 오면 되겠다! 그렇죠?”

“아.. 또 얘기가 그쪽으로… 그건 좀.. 생각해 볼게요….”

“그래. 한번 생각해 봐요. 우리 딸 진짜 좋은 애라니깐!”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한참을 딸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며 우린 와인을 양껏 마셨다. 평소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꽤나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도 있었다. 평생을 함께 길을 걸어갈 것만 같았지만, 그 사람과도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 만큼 결혼은 내게 있어 비중이 큰 일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전날 저녁에 와인을 너무 마셨는지 자는 동안 내내 속이 좋지 않았다. 어느 순간 속이 너무 안 좋아 화장실에 가서 게워내고 누워 시간을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어차피 지금 누워있어도 속만 안 좋을 거 같아 짐을 정리하고 난 다른 날보다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6시에서 7시 사이에 출발을 해서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날이 밝아지곤 했었는데, 이날은 아무리 걸어도 해가 뜰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혹시나 해서 챙겨 온 헤드랜턴 덕분에 걷는 새벽길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다. 로그로뇨 이후 그다음 마을에서 아주머니를 한번 더 뵐 수 있었다. 그렇게 걷고 쉬고를 며칠 하다 보니 ‘레온’이라는 큰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길을 걸으며 큰 도시에 도착해서는 하루정도 더 머물며 도시 구경도 하고 사람구경도 하며 나름의 휴식을 즐기곤 해서 이곳에서도 하루정도는 더 있을 생각으로 수녀원을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던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있었다. 짐을 풀고 있던 내 등뒤로 누군가 나를 크게 불렀다.


“순호씨!”


난 그 소리에 놀라 숙이고 있던 허리를 갑자기 피는 바람에 2층 침대머리에 뒤통수를 쿵! 하고 박아버렸다.


“쿵!”

“괜찮아요? 아이고야”

“어? 유정님! 안녕하세요!”

“머리 괜찮아요? 세게 박으셨는데..”

“아.. 네네 괜찮아요. 먼저 가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또 뵙네요!”

“네, 물집이 너무 심하게 생겨서 많이 못 갔어요.. 어찌 됐든 반가워요!”


 아주머니와 레온이라는 곳에서 헤어진 지 며칠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루를 같이 보내며 아주머니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주식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테슬라라는 회사에 대해 굉장히 큰 믿음이 있었다. 나도 물론 주식을 조금 하고 있었지만 해외주식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관심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아주머니와 그동안 얘기를 해오며 세뇌되었는지 어느새 테슬라 주식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주식에 대해서 하루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 덕분에? 테슬라를 몇 주 사봤지만 지금은 파란색이다) 

 다음날 아침 난 일찍부터 일어나 숙소 1층에 있던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새벽바람을 맞으며 마시고 있었다. 


“순호씨. 일찍 일어났네.”

“네.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전 이틀정도 더 있을 예정이라 오늘 늦게까지 자려했는데, 눈이 떠지더라고요.”

“역시나 훌륭한 청년이네.”

“그게 무슨 소리신가요.. 그냥.. 담배 피우러 나온 거예요. 하하”


아주머니는 오늘 떠난다고 했다. 괜히 담배 피우러 나왔다고 말은 하긴 했지만, 아주머니 가는 길에 인사하러 나온 거였다. 아주머니도 커피 한잔을 뽑아 놓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몇 마디 나누고 있을 때쯤이었다.


“순호씨. 이거 얼마 안 되는데, 나중에 맛있는 거 사 먹어요.”

“네? 아니 아니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시더니 20유로를 꺼내 내게 건네주셨다. 


“아니야. 그래도 한국인 정이라는 게 있는데,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는데, 왠지 앞으로 못 볼 거 같아서 그래요. 얼른 받아요.”

“저 학생도 아니라서 정말 괜찮습니다.. 마음만 정말 고맙게 받을게요.”

“아니야. 아들 같아서 밥 한 끼라도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래. 고마워서 그래.”

“아…. 그래도 이건 좀.. 정말 괜찮아요..”

“큰돈도 아닌데 뭐, 힘들 때 맛있는 거 사 먹어요.”


몇 번이고 거절하면서 마음만 받겠다고 했지만, 계속 거절하는 게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건강하게 걸으시고요. 산티아고에서 일정 맞으면 한번 꼭 다시 봐요!”

“네. 아주머니도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하게 걸으시고요. 감사합니다.”


 20유로는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3만 원 정도 하는 돈이었는데, 한국에서는 3만 원이 그리 크진 않은 돈이었지만,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 20유로면 보통 내가 하루 생활하는 금액의 80프로 정도 되는 돈이었다. 얼마인지가 중요하다기보다 챙겨주고 싶으신 그 마음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이곳에 오기전과는 다르게 고마운 마음이 전해지기에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나 보다 싶었다.

 그 이후로 길을 걸으며 아주머니와는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나와는 다르게 일정이 정해진터라 빠듯하게 움직이시다 보니 내가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도 서로 번호를 교환했던 터라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긴 일정의 1차 최종 목적지였던 산티아고로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이날은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비가 조금씩 왔는데, 하루종일 비가 오다 안 오다를 반복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두어 시간 전쯤부터 종일 비를 맞으며 젖은 채로 걸어서인지 몸에 오한이 들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젖은 옷을 벗었는데, 마침 길 건너에 있던 음식점이 가게문을 열고 있었다.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점심 먹을 시간이기도 했고, 저기서 밥도 먹고 옷도 갈이 입고 화장실도 해결하고 난 뒤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건너편에 있던 음식점은 문어요리 전문점이었고 식당 규모도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일주일 전쯤부터 들어섰던 ‘갈리시아’ 지역에서는 유독 문어요리를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길에서 함께 했던 여러 스페인 친구들에게 들을 수 있었는데, ‘갈리시아’ 지역은 대서양과 붙어 있는 스페인 서북쪽 지역으로 유럽 최대 면적의 ’리아스식’ 해안이 있어 해산물 양식에 굉장히 유리하면서 해산물들이 신선하고, 유럽 내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도 싼 지역이라고 했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갈리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요리로는 ‘Pulpo a Feria’라는 요리인데, 이 음식은 나무 그릇에 올리브유와 함께 삶은 문어가 올라가 있는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뿔뽀’라고 불렸다. 

 처음 뿔뽀를 맛봤을 때, 내 입맛에 너무 잘 맞기도 했고, 아무래도 타우린이 풍부한 문어다 보니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몸이 힘들 때마다 먹고 싶었지만, 여행자 입장에서 뿔뽀는 꽤나 비싼 요리기도해서 자주 먹진 못했었다. 하지만 이날은 요리 가격은 전혀 안중에 없었다. 내게는 아주머니가 준 20유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바 테이블에 앉아 큰 사이즈의 뿔뽀와 화이트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식당 화장실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서 주문 한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마셔댔다. 타이밍도 뿔뽀도 게다가 화이트 와인마저 모든 게 완벽했다. 

 재정비를 마치고 나서 세 시간쯤 더 걷다 보니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있던 작은 카페에 빈자리가 있어 앉을 수 있었다. 커피 하나를 주문하고 멍하니 앉아있다 문득 아주머니가 생각나 연락드려, 오늘 아주머니가 준 20유로로 문어요리 먹고 덕분에 기분 좋게 산티아고에 도착했다고 감사하다고 말을 전했다.


“정말 잘하셨네. 몸은 이제 좀 괜찮아요?”

“네! 덕분에 오늘도 기운 내서 도착할 수 있었어요.”

“아유. 그렇게 얘기하니 괜히 내가 더 고맙네. 이제 어디로 가요?”

“여기서 조금 쉬다가 이제 피니테라까지 다시 가려고요. 아주머니는요? 이제 미국 돌아가시는 거예요?”

“네 맞아요. 내일 비행기타야 돼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함께 걷는 내내 너무 좋았어요.”

“에이 무슨. 내가 너무 귀찮게 했죠 뭘.”

“아니에요. 너무 아들같이 잘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

.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나서, 우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꼭 연락할 테니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함께 했던 시간 동안 아들처럼 나를 대해주던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따뜻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 서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6개월 뒤 추워지기 전 22년 가을에 아주머니와 난 을지로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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