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02
“뭐야 이거 바르셀로나에서 만들어진 거래!”
“말도 안 돼. 여기서 만들어진 게 한국으로 갔다가 다시 여기로 온 거네?”
“진짜 신기하다 신기해”
그렇게 우린 한참을 신기해하며 웃었다. 함께 한참을 웃고 나니 그와 함께 앉아있는 그 자리가 더는 어색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는 내게 궁금한 것들이 많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국 어디에서 왔냐
이름은 뭐냐
서울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인데 어떤 도시냐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했냐
이번이 첫 까미노냐
너의 목적지는 어디냐
먹어본 스페인 음식 중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냐
축구는 좋아하냐
나는 바르셀로나 살아서 바르셀로나 팬인데 혹시 어디 팬이냐
바르셀로나에서 누굴 가장 좋아하냐
올해 우승가능성이 있다고 보냐
한국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가 누구냐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한국이 같은 조가 된다면 누가 이 길거 같냐 등등
그의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을 해주었다.
한국에서 왔고, 이름은 순호다.
서울은 굉장히 큰 도시이고 또한 안전한 도시다.
나는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했고, 이번이 내 첫 까미노다.
목적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목적지가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따로 목적지는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걸어보려 한다.
먹어본 스페인 음식 중에는 음식은 올리브로 만든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축구는 사랑한다.
나도 바르셀로나 팬이다.
페드리!
올해 우승은 힘들지 않겠냐?
쏘니! (손흥민)
비기는 걸로 하자.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프리메라리가(스페인 축구리그)에서 가장 좋아하는 팀은 딱 한 팀이라고 말할 팀이 없었다. 축구를 사랑한다는 내 대답에 굉장히 신나 있는 그의 기분을 꺼트리고 싶지 않아서 나 역시도 바르셀로나 팬이라 했다.
나 역시도 그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펩이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축구선수이자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와 같은 성이었는데, ‘펩’이란 성이 바르셀로나 고유의 성이라고 알려주었다. 펩은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까딸루냐라는 지역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까딸루냐라는 지역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지만, 펩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이베리아의 여러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나라였는데 기존 스페인왕국의 중심지는 지금의 수도인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카스티야 지방을 말한다고 한다. 스페인 동북쪽의 까딸루냐, 북쪽의 바스크, 서북쪽의 갈리시아 지역은 지금까지도 정통 스페인과는 구분되는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펩의 고향인 까딸루냐지 지역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아직까지도 까딸루냐어라는 언어가 존재하며 일반적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까딸루냐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스페인어와 까딸루냐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까딸루냐 지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스페인 다른 지역의 공공기관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는 공무원들의 경우에는 까딸루냐에 속해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걸었던 길을 살펴보면 여행 초반에는 바스크, 나바라 지역을 지나왔고 그 이후엔 카스티야 지역, 갈리시아 지역을 거쳐왔다. 스페인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존재하지만 각 지역마다의 문화적, 지역적 차이점들을 눈으로는 볼 수 있었고 입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두 달가량을 걸으며 지금까지도 문화적, 지역적 고유함을 유지한 채 여전히 살아있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다채로운 색과 함께 그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적잖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길의 중간쯤에 우연히 만나 열흘 정도의 시간 동안 함께 길을 걸었다. 지쳤을 만도 한데 그는 길을 걷는 내내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말을 걸고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는 내게 스페인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었고 작은 부분들까지도 알려주고 싶어 했다. 펩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는 항상 내게 생각할 거리들을 만들어주곤 했다.
우린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는 처음 만난 성당 앞에서 내가 건네주었던 에너지바 포장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며 꺼내 보여주었다. 난 그의 모습과 진작에 버려도 될 에너지바 포장지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간 느꼈던 스페인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펩이라는 친구는 내게 있어서 작은 스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