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네스
걷기 시작한 지 삼일 정도 되었을 즘 발병이 나버린 나는 팜플로나라는 도시에 도착해 2박 3일 동안의 짧지만 충분한 휴식을 갖기로 했다. 팜플로나에 도착한 다음날 배낭의 짐을 줄이기로 결정하고 카메라와 다른 것들을 작은 디팩에 차곡차곡 담아 숙소 근처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에 도착하여 산티아고로 먼저 보낼 짐의 무게를 재어보니 약 4킬로 정도 되는 무게였다. 이곳의 지형과 맞지 않은 트레킹화와 함께 15킬로 정도 되는 무게를 진채로 걷다 보니 발이 만신창이였다. 그래도 걷는 거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내가 직면한 여러 상황들을 발이 견뎌내기엔 조금 힘들었던 거 같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내렸던 비에 그 비로 인해 걷기에 힘들었던 진흙 길, 현지에 맞지 않는 신발, 그 신발안에 신고 있던 젖어버린 양말, 무거운 배낭무게까지 하루 8-10시간 정도를 이 모든 상황들과 함께 길 위에서 보내다 보니 발병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발바닥과 발가락 곳곳이 물집 투성이었다. 다행히 근육이나 인대 쪽에 염증이 생기진 않았지만, 한국에서부터 좋지 않았던 왼쪽 무릎이 조금씩 아파오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도 산티아고로 조금의 짐을 먼저 보낸 건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던 거 같다.
팜플로나에서의 이틀은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천천히 둘러보고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팜플로나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자주 갔었던 카페가 있다는 걸 찾게 되었다. 평소에 헤밍웨이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기도 했고, 헤밍웨이란 사람에 대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을 해와서 이튿날 그가 종종 갔다던 그 카페로 점심을 먹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Ibuna’라는 카페를 찾아가다 중앙 광장에 앉아 화요일 평일 낮 시간 스페인 사람들의 하루를 관찰해 볼 수 있었다.
나처럼 광장 나무들 밑 벤치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여유로운 낮시간의 따듯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사람들.
서로 담배를 피우며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고, 홀로 맥주 한 병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쾌활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한쪽 공터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서로의 기술을 과시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어찌 됐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다름을 느꼈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나는 종종 평일 그 시간대에 사람들을 관찰하곤 했다. 내가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들과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은 조금 많이 다르게 보였다. 조금은 더 여유로워 보였고 삶을 대하는 모습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내가 본모습이 일부분일 테지만 나름의 구체적인 상황들을 공통적으로 설정하여 바라본 모습에 있어서는 다름을 느꼈다.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잘 산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어떠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있어 잘 산다는 건 행복하게 산다는 말인데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들은 그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쉬워 보였다. 많은 고민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거리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앉아있던 벤치 뒤의 ‘Ibuna’ 카페에 들어갔다. 사진으로 봤던 모습보다 카페 내부의 모습은 굉장히 시간이 오래되어 보였다. 낡았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나도 관리가 잘 되어있는 상태의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고풍스럽다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을 시키고 나서 가장 구석진 자리를 찾아 샌드위치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나서 공간 곳곳을 바라보며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눈과 입이 모두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매일 와도 지겹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스란히 자신의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이 주는 기분 좋은 모습들과 오래되었지만 나무 구조물들과 가구에서 은은히 나는 나무향이 진한 커피 향과 맛스럽게 섞여 충분한 쉼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팜플로나는 내게 좋은 것만 주던 기분 좋은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이틀밖에 안 머물렀지만 충분했다.
모든 게 괜찮아졌다. 가방도 가벼워졌고 발도 약국에서 알려준 치료방법덕에 이틀 전보다 훨씬 괜찮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채로 다시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어느 정도 길을 걷다 큰 나무그늘아래에 앉아 발을 말리기 위해 신발을 벗어놓은 채로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출발하였지만 발 상태를 지켜보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따라온 다른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앞으로 순례자 몇몇이 지나가고 나서 허리까지 올 정도로 머리가 굉장히 긴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게 그 순간이 인상적이었던 건 무엇보다 그 사람의 걷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일곱 살 유치원생이 너무 기분 좋은 선물을 받고 집에 가는 발걸음과 비슷했다. 저 멀리서부터 살랑살랑 걸어오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걷는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그녀는 내가 앉아있던 자리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바로 옆에서 보니 그녀의 밤색깔 머리는 정말 길었고 위아래로는 검은색의 자켓과 레깅스, 트레킹화를 신고 있었다. 왠지 검은색을 좋아하는 사람인 거 같았다. 짙은 눈썹에 깊고 큰 눈, 길쭉한 코와 아담한 입에 꽤나 까무잡잡했던 피부였지만 굉장히 건강해 보이는 피부톤이었다. 까무잡잡하다고 생각했던 피부톤은 이곳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보니 전형적인 스페인 사람의 피부톤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지쳐 보이는 그녀에게 초콜릿을 조금 주고 싶었다.
“안녕. 초콜릿 좀 줄까?”
“초.콜.렛.?”
“응. 초콜릿.”
“아이 돈 노우.”
“쪼. 콜. 릿.”
“왓?”
내 발음이 이상했는지 그녀는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었다. 우리 앞으로 지나가던 다른 여자 순례자 한 명(리사)이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옆에 앉아있던 그녀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전달해 줬다.
“지금 쟤가 너한테 쇼콜라뗴(초콜릿) 먹을 건지 물어보는 거야.”
“오! 쇼콜라테! 너무 좋지! 고마워!”
그랬다. 그녀는 영어를 많이 못하는 스페인사람이었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편견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초콜릿이 전 세계 공용어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과 백인이어서 영어를 너무나도 잘해 보이지만 나보다도 영어를 못하는 것이었다. 난 두 사람에게 쇼콜라테를 나눠주고 당을 채웠다. 지나가던 친구는 초콜릿 한 조각을 먹고선 다시 발걸음을 이어나갔고 나와 머리가 긴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쇼콜라테와 물만 마시다 출발했다. 앉아있는 동안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에 서로의 이름조차도 모른 상태에서 며칠 뒤 한 숙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며칠이었지만 나는 몇 가지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만난 그곳에서 그 친구의 이름이 이네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숙소에서 펩과 리사, 후안 등 그동안 만났던 친구들과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이네스와의 대화가 가능했다.
“이름은 뭐야?”
“이네스야. 너 이름은 뭐야?”
“순호.”
“그때 그 쇼콜라테 너무 고마웠어. 진짜 그때 네가 안 줬더라면 걷다가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네!”
여행길동안 나와 가장 오랫동안 길을 함께 걸은. 함께 걸어준 친구가 이네스였다. 비록 중간중간에 서로의 템포가 달라 따로 걷는 날도 있었지만, 길을 걸은 지 일주일정도 되었을 때 처음 만나 포르투에서 걸음을 멈추기 며칠 전까지 거의 40일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한 친구였고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산티아고에 나보다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려준 친구도 이네스였고 세상의 끝이라는 피네스테라까지 함께 걸었던 친구도 이네스였다. 포르투를 향해 걸어갈 거라던 내 말에 자기의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함께 걷겠다고 했던 친구도 이네스였다.
함께 스페인을 넘어 포르투갈의 국경마을인 Valenca라는 마을에 도착해 포트와인으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다음날 아침은 겨울비 같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날은 이네스와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나의 일정은 포르투까지 걸음을 이어가는 것이었지만, 이네스의 일정은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가 그녀의 쌍둥이 동생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우린 여느 아침과 같이 빵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나서 숙소를 나왔다. 숙소에서 버스터미널까지 향하는 길과 포르투로 향하는 길이 우연찮게 같아 15분 정도 함께 더 걸을 수 있었다. 비를 맞아가며 15분가량을 걷다 보니 터미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마웠어 이네스.”
“나도 고마웠어. 마지막까지 네게 즐거운 길이 되길 바래.”
“응. 고마워. 언젠가 꼭 다시 너와 우리 친구들을 만나러 올 거야”
“꼭 그래야 해.”
훨씬 더 많은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더 많은 말을 했다가는 오늘의 헤어짐이 더 크게 다가올 것만 같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훌쩍이며 짧지만 따뜻했던 포옹을 하고 나서, 이네스는 터미널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훌쩍이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뒤돌아보지 않은 채 걸어갔고, 난 아쉬운 마음에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항상 나를 챙겨주던 친구의 뒷모습을 사라지는 순간까지 지켜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많은 친구들과의 헤어짐의 순간들 모두 가슴 찡하고 모두 다 아쉬운 순간들이었지만, 유독 이네스와의 헤어지는 장면이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건 그날 아침의 날씨와 여태껏 길을 걸으며 가장 자주 보던 친구의 뒷모습 때문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