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우 02
이네스가 추천해 줘서 먹었던 음식들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 세 가지를 꼽자면, 첫 번째로는 병아리콩을 곁들인 스페인식 돼지내장 수프였는데, 음식 이름이 ‘Callos con garbanzos’(까요스)라는 음식이었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 곱창전골과 맛이 굉장히 비슷했다. ‘까요스’를 먹을 때면 도수가 높은 술과 함께 하곤 했는데, 술이 음식의 풍미를 더 살려주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는 간식으로 먹었던 추로스였는데, 스페인이 워낙 추로스가 유명하다고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스페인에서 먹어본 적은 없었다. 내가 먹어본 추로스는 우리나라 극장과 놀이공원에서 파는 것만 먹었었는데, 처음엔 달달해서 맛있었지만, 몇 입 먹다 보면 금세 물리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파는 카페에 이네스와 있었을 때, 이네스가 피곤해하는 나를 보고 커피와 함께 추로스와 초콜릿 한 컵을 주문했다. 내 기억 속에 있던 추로스를 생각하고 한 조각 집어 들어 초콜릿을 듬뿍 찍어 한입 크게 물었을 때에, 내가 알고 있던 이 세상 달콤함이 아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몸속 혈액이 폭발적으로 도는 기분이었다. 갓 구워져 나와 설탕이 솔솔 뿌려진 추로스를 걸쭉하게 녹여져 나온 초콜릿에 푹 담갔다가 먹으면 쌓여있던 피로가 풀리면서 기분도 좋아졌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슈하스코’라는 음식이었다. 내게 죽기 전에 마지막 식사로 뭘 먹을지 묻는다면, 난 약간의 망설임 없이 ‘슈하스코!!’라고 외칠 정도다. 물론 이 말에 이네스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미하우는 ‘슈하스코’라는 내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고 했을 만큼 고기의 풍미가 너무나 훌륭했던 음식이었다. 슈하스코는 고기와 야채, 과일을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브라질 전통음식인데, 내가 스페인에서 먹었던 슈하스코는 꼬치 없이 우리나라 LA갈비식의 소고기를 자르지 않고, 함께 구운 피망과 함께 나왔었다. 그렇게 나온 슈하스코는 숯불고기가 이렇게까지 담백할 수가 있을까 싶은 맛이었다. 앞에서 말한 감바스가 맥주를 부르는 음식이었다면, 슈하스코는 와인을 부르는 맛이었다.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았던 둘과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우리’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는 역설적이게도 ‘언어장벽’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점이 셋을 더 긴밀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애주가라는 점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감바스와 맥주로 출출하던 배를 어느 정도 채운뒤, 동네를 한참 동안 걸어 다니다가 마트에 들러 저녁장과 걸으며 필요한 것들을 사고, 숙소에서 저녁을 함께 준비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했다. 난 소시지와 그간 아껴두고 있던 유정님이 준 라면 한 봉지를 꺼내어 뽀글이를 만들기 위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준비한 라면 봉지를 조심히 뜯어 면을 반으로 부셔놓고 수프와 분말을 넣고, 마트에서 사 온 날달걀을 꺼내왔다. 물이 튀지 않게 천천히 부어주고 준비해 둔 날달걀을 깨어 라면봉지 속에 쏙 넣었다. 봉지 끝을 돌돌 말아 포크로 고정시키고 나서 앞을 보니, 미하우는 저건 무슨 요린가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그렇게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뽀글이에 대해 걱정하던 미하우에게
“걱정 마. 3분이면 돼.”
라고 말하니, 미하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뽀글이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은 눈치였다. 그렇게 3분이 다되었을 때쯤, 옆에 있던 하연씨가 시간 다 됐다고 알려주었다. 돌돌 말아놓은 뽀글이 봉지에 고정시켜 주었던 포크를 조심히 빼내어, 적당한 크기의 그릇에 뽀글이를 부으니, 주방에는 온통 라면 냄새가 가득했다. 미하우는 뽀글이를 부어놓은 그릇을 한참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적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하연씨가 라면 한 입씩 크게 먹고 있을 때, 대뜸 미하우가 자기 핸드폰을 쓱 내밀었다. 우린 핸드폰을 보자마자 너무 크게 웃음이 나서 입에 있던 라면을 미하우에게 뿜을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한참을 웃느라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미하우가 우리에게 보여준 건 한국어로 번역된 폴란드 말이었다.
“I gdzie to sie podzialo?”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
미하우는 계란의 행방이 궁금했는지 우리에게 스프(라면) 속 계란이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번역된 말을 보자마자 정말이지 이번 여행기간뿐만 아니라, 그 당시 몇 년 동안 그렇게나 웃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미하우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분명히 날달걀을 넣는 걸 봤는데, 막상 꺼내보니 사라진 달걀의 존재가 너무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라는 문장이 너무나 직관적으로 이해돼서 한참을 웃었다.
미하우에게 달걀은 스프 국물에 퍼져 있다고 설명해 주고 한번 먹어보라고 건넸다. 그는 한입 먹어보더니, 연신 맛있다는 말과 함께 라면 속 계란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지 날달걀의 행방에 대해 포크로 찾고 있었다. (훗날 헤어질 때쯤에 그는 내게 슈하스코보다 그때 먹었던 라면이 더 맛있다고 했다.)
그렇게 숙소 부엌에 모여 서로가 준비한 음식과 와인을 나눠먹고 마시며, 그날의 피로를 각자의 방식대로 풀고 있었다. 함께 저녁을 즐기다 하나 둘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올라갔다. 나도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상태로 방으로 갔다. 그날 저녁자리에서 미하우가 보여준 구글 번역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상태로 잠자리에 누워있었다. 와인 때문에 오른 취기 때문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라는 질문처럼 그동안 내게 있어서 큰 의미였던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은 어디에’라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질문에 대해 답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