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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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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n 30. 2023

Episode 19

Casa Las almas 01

이른 새벽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눈을 비비적거리며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니 5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조금 더 누워있을까도 싶었지만, 동트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주변 친구들이 잠에서 깰까 싶어, 살금살금 걸으며 짐을 챙겨 방에서 나왔다.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어느 정도 짐을 정리해 두어서 다행히 다른 친구들의 단잠을 방해하진 않았다. 

 로비에서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토스트 한 조각을 데워 먹은 뒤, 숙소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보라색 하늘이 굉장히 운치 있게 펼쳐져있었다. 보랏빛 하늘을 풍경삼아 함께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팜플로나에서 카메라와 약간의 짐을 산티아고로 부치고 로그로뇨에서 트레킹화도 새로 샀지만, 여전히 배낭은 무거웠고, 발바닥은 정상이 아니었다.

 한두 시간쯤 걸었을 때 보랏빛 하늘은 점점 사라지고 핑크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보랏빛 하늘이 내게 고요함과 차분함을 주었다면, 핑크색 하늘은 새로운 날의 산뜻함과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3월 이곳의 날씨는 각 시간대마다 그 차이가 명확했다. 걷기 시작할 때의 새벽 공기는 굉장히 날카롭고 차가운데 반해 해가 뜬 뒤로는 부드럽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른 아침인 여섯 시에서 여덟 시 사이의 공기가 좋았다. 그 이유 때문인지, 억지로 일어나려 하지 않아도 눈이 떠져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걷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렇게 걷다 보면, 부드러운 공기는 사라지고 조금은 무거운듯한 공기가 주변에 남아있었다. 해가 뜨거운 나라라 그런지 3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한국에서 초여름에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공기였다. 그러다 다시 부드러워지고, 해가 지면 다시 날카로운 공기가 남아있곤 했다.

 산토 도밍고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그라뇽이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간단히 아침도 먹고, 쉬면서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마을에 문을 연 식당과 펍, 카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구석구석 한참을 찾아 헤매다, 결국 앉아 있을 만한 벤치에 앉아 배낭 옆에 항상 꽂아 다니던 와인을 꺼내 한 모금 마시며 붉은 하늘이 파랗게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걸으면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변하는 하늘을 보고 있자면, 요동치던 심장도 머릿속에 가득했던 많은 생각들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번 가라앉히고 나면 하늘빛을 볼 때도, 숨을 쉴 때에도 조금은 더 넓게 보이기도 하고, 전보다 더 많은 공기가 숨을 통해 들어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금 와인 한 모금을 크게 마시고 자리를 일어났다. 쉬고 있다 보니 젖은 옷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려와 서둘러 짐을 챙겨 다시 길을 걸었다.

 하늘과 풍경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길을 걷다 보니, 12시쯤 되었을 때 전날 함께하던 친구들과 정해놓은 목적지인 벨로라도라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20km 초반 정도로만 걷고 나서 일찍 쉬려고 했는데, 막상 걷다 보니 걸으면서 몸이 풀렸는지 출발했을 때보다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아진 것만 같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전날 친구들과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에 가봤지만, 주인아주머니가 두세 시간 이후에나 문을 연다 해서, 한적한 공터에 있던 벤치에 짐을 내려놓고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기도 했고, 씻지 않고 계속 밖에 있으니 몸이 으슬으슬해져 조금 더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마을을 나와 다시 걷고 있으니 떨리던 몸은 금세 괜찮아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땀에 흠뻑 젖어져 갔다. 그렇게 옷이 다 젖을 때쯤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숙소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뒤, 지도에서 찾은 숙소에 가보니 한 곳은 운영을 안 하는지 문이 닫혀있었고, 다른 한 곳은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순간 조그만 걱정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나 하나 잘 곳이 없겠어?'라고 혼자 속삭이다 다음 마을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음 마을에는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을 거란 기대와 함께 미리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분명 내가 찾아본 리스트에 숙소는 여럿 있었지만, 전화를 받는 곳은 드물었다. 게다가 전화 연결이 된 숙소들도 이미 예약이 가득 찬 상태라고 할 뿐이었다. 작았던 걱정거리는 점점 커진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란 생각과 함께 원래 친구들과 함께 예약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야 할지 싶었다. 텐트라도 있으면 빈 공터에 텐트라도 치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지만, 텐트가 없어 그럴 수 없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오늘 하루만 노숙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하늘에 먹구름이 점점 끼더니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아 그마저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네시를 지나고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예약했던 숙소는 서너 시간 정도를 돌아가야 했다. 다음 마을까지는 여기서 한두 시간 정도 걸어야 했지만 마을에 도착한다고 해도 갈 수 있는 숙소가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게 선택지는 둘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는 친구들이 있는 숙소로 돌아가거나, 다른 하나는 다음날까지 계속 걸어야 했다. 결국 난 계속 걷기로 결정을 했고, 다시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상황에 대해 포기하고 '그래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해 볼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 가득하던 걱정거리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리고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나 내 어깨를 괴롭히던 배낭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걸어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쉴 수 있는 곳이 있겠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이 축축한 옷들부터 다 벗어버리고 일단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니 무겁던 발걸음 마저 한결 가벼워졌다.






그라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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