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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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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l 05. 2023

Episode 20

Casa Las almas 02

두 시간쯤 걸었을까.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더니 주황빛 하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걸음을 멈춘 채 멍하니 아름다운 노을이 가득한 하늘을 감상하고 있을 때, 평소에는 울릴 일 없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번호에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누구세요?"

"아! 여기 Casa Las almas 알베르게야. 지금 어디야?"

"아, 지금 로디야?라는 마을 지나고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다행이다. 아까 예약한다고 전화했을 때, 숙소가 꽉 차서 없다고 했었잖아"


 몇 시간 전, 여기저기에 예약 전화를 돌렸을 때에 통화를 했었던 한 알베르게 주인이었다. 숙소 예약을 하기 위해 이곳 알베르게 주인과 통화를 했었는데, 내가 숙소를 도저히 못 구할 거 같아서 그냥 계속 걷기로 했다고 얘기를 했었다. 


"네, 기억나요."

"지금 비도 많이 오고, 네가 걱정돼서 전화했어. 숙소는 구했니?"

"네? 아니요.."

"잘됐다! 너 오늘 진짜 운 좋은 거야. 오늘 묵을 사람 중 한 명이 걷는 중에 다리가 안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연락 왔어. 네가 괜찮다면 와서 쉬어도 돼!"

"네? 정말요? 와!! 무우초 그라시아스(너무 감사합니다) 에요!! 지금 당장 갈게요!"


 정말이지 기분이 좋아서 방방 뛴다는 말을 평생 한 번도 표현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전화를 받고 나서 통화를 하는 내내 난 7살짜리 애처럼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내가 뛰고 싶어서 뛴 게 아니라 몸이 자동으로 반응을 하고 있었다.


"지금 너 있는 곳에서 한 30분? 정도 돌아오면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라는 마을이 있어. 아마 지나쳐 갔을 거야"

"알아요! 금방 갈게요! 고마워요!!"

"비 오니깐 조심히와. 도착하면 다른 순례자들이랑 같이 저녁식사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둘게"

"... 너무 감사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고?' 정말이지 다 포기하고 단념한 채 걷고만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숙소 주인도 내가 가면 남는 자리를 채울 수 있기에 손해 볼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통화를 하는 내내 단순히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게 느껴졌고, 숙소가 단 네 자리밖에 없어서 예약을 못해준걸 굉장히 미안해하셨다. 어찌 됐든 에스피노사 마을로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도착한 에스피노사는 열 채 정도밖에 안 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작은 마을이었기에 숙소를 찾는 일은 쉬웠다. 숙소 앞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르니 웬 인상 좋으신 노부부가 기분 좋은 미소로 반겨주었다. 


"어서 와. 오늘 많이 힘들었지?"


오들오들 떨리던 몸이 노부부의 미소와 함께 집안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온기에 사르르 녹고 있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너무 감사해요"

"참 신기한 일이야. 그렇지?"

"네,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요"

"맞아. 이게 까미노야"


'이게 까미노야'라는 말에 그동안 길에서 만났었던 인연들과 걸으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과 함께 오늘 일어난 이 일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굉장히 짧은 말이지만, 모든 의미를 담아 놓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를 배정받아 짐을 대충 놓고는 얼른 씻으러 들어갔다. 축축해질 대로 축축해져 버린 옷들을 벗고 따뜻한 물을 맞고 있자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평소보다 오랜 시간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 뒤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카렌?"

"어! 순호!"


 밖에 앉아있었던 사람은 카렌이었다. 카렌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펩과 이네스 등 친구들과 같이 다닐 때, 함께 했었던 친구였다. 카렌은 덴마크에서 온 젊은 의사였고, 나와는 동갑내기였다. 함께하며 서로 말을 많이 해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 있어서 한결 마음이 더 편해졌다. 


"오늘 애들이랑 벨로라도에서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응, 맞아.. 맞는데.."


 난 카렌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카렌은 굉장히 재밌어하는 표정과 함께 연신 '어메이징!'이라 말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머물게 된 숙소는 'Casa Las almas'라는 숙소인데, 그동안 머물렀던 숙소들과는 다르게 일반 가정집을 알베르게(숙소)로 등록하여 인자한 노부부인 Sabine와 Uli가 운영 중이었다. 그들의 가정집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하루에 머물 수 있는 순례자 수가 4명일 정도로 굉장히 작은 숙소였다. 오늘 이곳엔 나와 카렌, 그리고 70대 스페인 할머니와 60대 스페인 아저씨? 가 오늘의 게스트였는데, 모두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 숙소의 특별한 점은 스페인 가정식을 저녁으로 제공해 주신다는 거였는데, 한 번도 스페인 가정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고대하며 오늘의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식사가 준비되었으니 내려오라는 사비나의 말에 우르르 1층으로 내려가 식당 안에 있는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70대 할머니와 60대 아저씨 그리고 30대 동갑내기 둘이 한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있으니, 무언가 가족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넷이 함께 저녁을 기다리고 있으니 집에 있을 가족들이 떠올랐다. 미안한 감정과 함께 그리운 감정이 들어 마음이 촉촉해져 갈 때, 사비나가 스프를 가지고 식당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자! 오늘의 스타트는 양송이 크림 스프입니다"


 양송이 크림 스프는 굉장히 큰 접시에 담겨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의 부드러운 냄새가 콧속에 훅 들어왔다. 스프는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충분히 위로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그릇을 다 비워 갔을 때, 적절한 타이밍이다 싶었는지 울리는 서랍장에 있던 레드와인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울리가 가지고 온 와인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시중에 파는 와인이 아닌 '리오와' 지역의 한여름에 제배한 포도를 구매 한 뒤,  사비나와 둘이 직접 담근 하우스 와인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스페인 가정식에 직접 담근 하우스 와인까지 함께 하니 고되었던 하루에 대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와인을 몇 모금 마시고 있을 때 사비나는 메인 디쉬라며 큰 그릇에 가득 담긴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 음식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지만, 음식의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후춧가루가 뿌려진 수제비 같은 것에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듯한 걸쭉한 소스와 함께 닭고기와 병아리콩이 꽤나 많이 들어있었다. 메인 음식의 맛은 마치 정말 맛있는 피자 소스에 염질이 잘 된 닭고기를 쫄깃쫄깃한 떡에 싸서 먹는 맛이었다. 그렇다고 식당에서 먹는 자극적인 맛이 아니어서 그런지 손 맛 좋은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맛이었다.

 우리가 먹는 내내 화로 안에서 장작은 계속 타고 있었다.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그 온기가 우리가 있던 공간을 감싸주고 있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따뜻하게 씻기도 하고 맛있는 집밥으로 배도 채우고 와인도 적당히 마시고 나니 하루동안 내내 움츠려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풀리고 있었다. 비를 맞아가며 종일 추위와 싸운 몸은 많이 지친 상태였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와인 세 잔에 이미 축 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피곤함이 몰려오자 함께 있던 사람들보다 먼저 올라와 침대에 누웠다. 분명 끝날 거 같지 않던 하루였는데, 푹신한 침대에 배부르게 누워있으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Casa Las almas 입구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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