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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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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l 06. 2023

Episode 22

Miguel 02

어디서부터였을까. 미겔을 만난 곳이 어디가 처음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부턴가 항상 함께 있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그는 항상 옆에 있었다. 

 새벽 5시 맞춰놨던 알람 소리에 눈이 떠져 잠에서 깼다. 오늘 5시에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라 미리 알람을 맞춰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코파 델 레이’는 스페인 축구 국왕컵 대회인데, 오늘 있을 결승전엔 레알 마드리드와 오사수나 fc. 가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출근 걱정이 없는 일요일 새벽 경기라 부담 없이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오사수나 fc. 가 결승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을 때 스페인에서 함께 했던 팜플로나 아저씨인 ‘미겔’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결승전에 춤을 추며 좋아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다 문득 길을 걷다가 미겔과 ‘마카레나’를 춘 기억이 났다.


함께 프로미스타라는 마을을 향해 길을 걷던 중 미겔이 내게 물었다. 


“쑤너. ‘마카레나’라고 알아?”

“마카레나? 알지!”

“오! 그럼 마카레나 춤도 출 줄 알아?”

“어떤 춤인지는 알아!”


그의 말에 난 핸드폰을 꺼내 유투브에서 마카레나 MV를 찾아 재생시켰다.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반주가 시작되자 미겔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미겔과 내가 함께 춤을 추자, 같이 걷고 있었던 펩과 후안이 그 모습에 자지러졌다. 한바탕 춤을 추며 걷다 보니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 중간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높지 않았지만, 조금 가파른 언덕이었다. 미겔은 가파른 오르막 길이 힘들었던지 언덕 위에 도착하자마자 벤치에 철퍼덕 널브러졌다. 난 그 옆에 앉아 오는 길에 조그마한 마트에서 샀던 와인 한 병을 꺼내 마시고 있었다.

 너무 기분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파랬고 구름은 마치 흰 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 하얬다. 바람은 또 바람대로 시원히 불어와 길을 걸으며 젖은 머리와 옷들을 천천히 말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있으니 새삼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러다 같이 걷고 있던 펩과 후안이 내게 물었다.


“순호. 오늘 밤에 바르셀로나랑 오사수나 fc. 경기하는 거 알지?”

“그럼 알지. 이따 밥 먹고 같이 보자 나 데이터 무제한이야”

“오 좋아. 이따 맥주 마시면서 보면 딱이겠다”

“훌륭하지”


펩은 바르셀로나 팬이었고, 후안은 레알마드리드, 팜플로나에서 온 미겔은 오사수나 팬이었다. 마침 오늘 바르셀로나 대 오사수나 경기가 있었고, 우린 오늘 함께 그 경기를 보기로 했었다. 오면서 산 와인 한 병을 넷이 나눠 마시며 축구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옷이 다 말라있었다.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넷이 같이 있다 보니 쓰는 언어는 달랐지만, 대화를 하는데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마다 자신의 팀이 최고라며 얘기하는 걸 보니, 축구 얘기할 때는 어딜 가나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겔은 자기 팀인 오사수나 fc.라는 팀을 한창 자랑하다가 팜플로나라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사수나 fc. 는 팜플로나라는 도시를 연고로 하고 있는 팀이고, 팜플로나가 속해있는 ‘나바라’라는 지역의 유일한 팀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바르셀로나가 축구는 잘할지 몰라도 오사수나 선수들보다 작고 여리다며 펩을 놀리기 시작했다. 표본의 수가 단 둘밖에 없었지만, 미겔의 말대로는 펩은 전형적인 바르셀로나 사람의 모습이었고, 미겔은 전형적인 나바라 사람이었다. 미겔의 얘기를 들어보니, 오사수나는 속해있는 지역인 나바라 주의 사람들 위주로 팀을 구성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바라 주 남성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했는데, 그가 말한 나바라 주 남자들의 특징으로는 골격이 스페인 다른 지역의 남자들보다 크고, 얼굴이 각진 형태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튼튼하며 다른 팀들의 선수들에게는 없는 강인한 남자의 팀이라 했다. 평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 라리가를 즐겨보던 나는 미겔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했다. 라리가 경기를 보다 보면,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 아트레티코 마드리드 같은 빅클럽들의 선수구성은 국적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여러 인종의 다양한 선수들이 섞여 있고, 피지컬적으로도 작은 선수들과 큰 선수들이 함께인 전형적인 축구 클럽의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오사수나 fc.라는 팀은 리그 내에서 그렇게 뛰어난 성적은 아닌 팀이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굉장히 다부진 체형을 가지고 있었고 조금은 투박하지만 투지만큼은 다른 빅클럽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팀이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미겔의 말이 허투루 들리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미겔이 이야기한 나바라 주 남자들의 특징이 그에게도 진하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굉장히 각이 진 얼굴에 부리형의 큰 코는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집 있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적합했다. 그의 큰 콧속에는 코털이 무성했고, 그는 도수가 굉장히 높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도수가 얼마나 높은지 그의 안경 너머로 살짝 보이는 배경의 모습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연결되는 회오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언제나 입에 물고 다니던 이쑤시개와 나바라 주 안에 속해있는 바스크 지역을 상징하는 전통 모자와 ‘파누엘리코’라는 나바라 전통 복장 중 하나인 빨간 스카프를 항상 목에 두르고 다닌다는 거였다.

 미겔과는 어느 한 숙소에서 만났었는데, 그는 외모와는 전혀 다르게 편견 없는 굉장히 말랑말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미겔은 그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있어서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강인한 인상 때문인지,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나 지난 지금도 길을 걷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이쑤시개를 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미겔이 생각났고, 빨간 목도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역시나 그가 떠올랐다.

 어찌 됐든 코파 델레이 결승전은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끝났다. 오사수나가 나름 선방한 경기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클럽 사이즈에서부터 차이가 많았던 두 클럽 간의 경기였지만, 어찌 보면 뻔한 결과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스페인에서 미겔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이른 새벽 경기를 보기 위해 일어났을까?


 친구들과 한참 수다를 떨며 걸어서인지 다른 날들보다는 훨씬 가벼운 몸으로 프로미스타라는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찾아둔 숙소 앞에서 주인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20분 정도 지났을까 문이 끼익 열리더니 인상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숙소 주인이라고 소개한 할아버지는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내려놓았던 배낭을 들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미겔과 나머지 두 친구가 먼저 체크인을 하고 난 뒤, 2층에 있는 순례자들 방에서 먼저 짐 풀고 씻고 있겠다며 먼저 올라갔고, 나는 체크인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같은 순례자여도 자국민이었던 사람들의 체크인은 굉장히 금방 끝나는 반면, 외국인이 체크인할 때에는 체크하거나 적어야 할 것들이 조금 더 있는 편이라 그들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는 편이었다. 물론 같은 유럽 국가들 사람의 경우에도 금방 체크인이 이루어졌다. 들어간 방에는 따뜻한 색채의 그림 작품들이 여럿 걸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림들은 저마다 에디션이 적혀있는 판화 작품들이었다. 마침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했기에 그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판화 작품들은 직접 작업하신 거예요?”

“오! 판화작품인지 어떻게 알았어? 우리 와이프가 작업한 거야! 그런데 판화인지 아는 경우는 드문 일인데..”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해서 알아봤어요! 그나저나 작업들 엄청 좋네요. 저도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고마워. 너도 작업한다고? 그럼 작가인 거야?”

“네, 작가예요”

“오! 그럼 나도 네 작품들을 볼 수 있을까?”

“물론이죠!”


난 주인 할아버지에게 작품들 몇 가지를 보여주었고, 우린 한참을 판화얘기와 그림 얘기를 이어갔다. 할아버진 내가 보여준 작품들을 소장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 난 그 말이 너무 기쁘고 고마웠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었기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두 번째 까미노를 걷게 된다면, 그때는 꼭 기억해서 작품을 가지고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언제든, 누구든 내가 작업한 작품을 갖고 싶다거나, 구매하겠다는 말은 그 어떤 평가나 평론보다도 기분 좋은 말이었다. 그냥 작품을 산다는 것이 온전히 그 가치를 상대방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얘기하다 방이 있는 숙소 2층으로 올라와보니 익숙한 얼굴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팜플로나에서 이틀간 지낼 때 같은 방에서 함께 머물렀던 발냄새가 심했던 미국인 아저씨도 있었고, 이네스와 미하우, 유정 씨도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고, 오늘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던 이날은 완벽한 날씨와 하늘, 좋은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길, 숙소와 주인분과의 그림 얘기, 다시 만난 반가운 얼굴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했던 저녁식사와 맥주를 동반한 축구경기로 하루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서 모든 게 풍족하다고 느꼈던 하루였다.








카스트로헤리스







미겔, 후안, 펩





미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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