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숙제였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스무 살에 했던 고민은 서른 살이 되어서도 똑같았다. 애초에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연결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선택하려 했다. 전제부터 잘못된 고민에 진자운동을 하듯 계속 제자리에서 똑딱거렸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취미가 뭔지에 대한 물음에 항상 물음표였다.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스스로 답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좋아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먼저 좋아하는 일이란 무엇일지 의미를 적어볼까.
하고 있을 때 재미를 느낀다.
집중이 잘된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해야 한다는 압박이 들지 않는다.
생각보다 먼저 행동한다.
음, 막상 작성해보니 좋아하는 일이라 너무 어렵네. 다 좋은데? 뭐하나 고를 수 없다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좋다. 아 그러네. 글을 쓰는 이 순간 알아챘다.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모르겠어.’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수분을 섭취한다. 물을 한잔 마시곤 식물에게도 물을 준다. 냥이와 멍이에게 말을 하듯 초록이들에게 말을 건다. 너희들도 목마르지? 우리 집엔 반려 식물이 매일 자라나고 있다. 하나하나 돌아본다. 알로와 카시아, 몬스테라, 아이비BI, 고무고무, 수국들, 율마, 베라… 이제는 다 이름을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누가 새순이 자랐는지, 시든 잎은 없는지, 혹여나 병이 생기진 않았는지. 신기하게도 매일 관찰하다 보면 하루 밤새 새순이 잎을 펼치고 또 다른 여린 잎을 만들어낸다. 꽃꽂이하고 남은 아이들을 데려다 물에 꽂아 놓는다. 요 작은 아이들이 살겠다고 잘린 가지에서 뿌리를 뽑아낸다. 그 광경을 본 순간부터 매일 뿌리가 얼마나 자라났는지 환경이 맞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체크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보답이라도 하듯 꽃을 피워내고 ‘나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남부럽지 않은 집사가 되어가고 있다. 식물을 돌보는 일이 좋다.
지극한 ‘I’ 성향을 가졌지만 페스티벌이나 클럽, 파티에 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둠칫 둠칫’ 하곤 했다. 귀를 가득 채우는 사운드와 가슴을 둥둥거리게 하는 드럼과 베이스가 황홀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생각이 많아져 아차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흐느적대는 모습조차 뭔들 흥이 차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 나를 바꿔버린 건 다 소진되어버린 체력이었다. 온몸을 둥둥거리게 만들던 힙합의 드럼 소리는 머리를 때렸다. 귀를 붙잡았다. 힙합뿐만이 아니었다. 잔잔한 클래식은커녕 벽 너머로 들리는 작은 말소리조차 듣기 싫었다. 지쳐버린 몸과 마음은 모든 소리를 ‘소음’으로 만들었다. 누워있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몸은 한없이 무거운 추를 달고 추락했다. 누운 자리가 뻥 뚫려 까만 구덩이만 남기고 알 수 없는 저 아래로 떨어졌다. 공중에 붕 뜬 머리는 허공을 뱅뱅 돌았다. 지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아프면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조차 의미가 없구나.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요즘이지만 몸이 지칠까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일주일에 꼭 하루에서 이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전되기 전 몸을 충전해야 한다. 1%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좋아하는 일이지만 하고 나면 아직은 꼭 등 한가운데가 쑤신다. “너 아직은 아니야. 안돼.”라고 말하듯. 그럼 이불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쉬어야 해. 쉬자. 지치지 말자.
지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