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알레르기

한국에서 알레르기를 가지고 산다는 건

by 작연

나와 밥을 처음 먹는 사람은 꼭 거쳐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더불어 꼭 거쳐야 하는 행동 패턴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아연의 식사 매뉴얼’이다.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식당을 들어가면 서둘러서 메뉴판을 제일 먼저 스캔한다. ‘쓰윽’ 그다음 할 일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상황 1. 따로 먹는 메뉴를 고를 때.


① 사진이 있는 메뉴판은 참 친절하다. 사진이 없다면 우선 메뉴를 후다닥 고르고 열심히 직원 분을 찾는다. 마음속의 메뉴는 항상 3순위까지 정해야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메뉴판을 집어 들지만 메뉴를 결정하는 일은 제일 오래 걸리고 만다.


② 묻는다. “혹시 이 메뉴에 계란이 들어가나요?”

“안 들어가요.”, “들어갑니다.” 어떤 대답이든 바로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②-1 대답이 “들어간다.”일 경우, 메뉴는 1순위에서 2순위로 바뀌고 2순위 마저 먹을 수 없다면 3순위로 결정한다. 대개 3순위까지 가는 일은 드물지만 어떤 대답을 들을지 모르니 안전망으로 정해 놓는다.


②-2 “아… 잠시 만요.”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때부터 뻘쭘한 시간이 시작된다.

직원이 돌아오기까지 함께한 다른 이들도 식사시간이 지체된다.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은 같이 있는 모두의 기다림이 된다. 그럼 다음 할 일은 태연한 듯 표정을 지으며 다른 화젯거리로 말을 돌린다. 속으론 언제 돌아오실까 굉장히 초조해하면서 말이다.



상황 2. 함께 먹는 메뉴를 고를 때.


메뉴를 열심히 보지만 먼저 메뉴를 고르지 않는다. 메뉴에 계란이 들어간 음식이 없다면 안심. 계란이 들어간 음식이 있다면 ‘제발 그 메뉴는 고르질 않길!’ 속으로 바란다. 상대방의 결정 속에서 그 메뉴를 피하면 다행이지만 그러다 혹 계란이 들어간 메뉴를 고른다면 민망한 듯 말한다. “앗…! 제가 계란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그리곤 잘못을 한 것 마냥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메뉴를 먼저 고르지 않는 이유는 혹시나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다른 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지 못하게 한 미안함 때문이다.

다음 말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 그럼 다른 거 먹자!”와 “계란 정말 맛있는데~”이다. 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간장계란밥이고 지금 당장 제일 먹고 싶은 것이 계란찜이에요!”

속상하다. 계란, 치즈, 강아지, 고양이, 토끼, 말갈기… 참말로 알레르기도 참~ 많다.

이 중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알리는 건 ‘계란 알레르기’다. 한국인의 밥상에선 계란이 잘 빠지지 않기 때문이고,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비염을 앓았을까. 훌쩍훌쩍 매일 코로 울다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았을 즈음이 중2, 처음 알레르기를 알게 된 때다. 비염 수술을 하기 위해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등에 바늘이 닿았다. 50번의 바늘구멍. 50번의 시약. 그렇게 몸속의 알레르기란 존재를 알았다. 결과지는 영어로 적혀 있었다. 체크표시된 알레르기를 영어사전에서 더듬더듬 찾았다. 얼마나 많은지 다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충격이었다. 에? 그럼 강아지도 못 키워, 고양이도 못 키워, 말도 못타. 토끼도 못 만져?

가장 충격적인 건 ‘whole egg’란 단어였다. “호~올 에그????” 전자사전을 보며 눈이 커졌다.



[whole egg 명사 식품공학 전란(全卵)]



“전체 계란? 그럼 노른자도 흰자도 다 못 먹어?”

그때부터 스스로 계란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극심했던 콧물과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던 두통, 배앓이가 조금씩 좋아졌다. 여태 삶의 고통의 팔 할이 계란 때문이었다니. 콧물과 재채기의 고통은 줄었지만 계란을 참는 고통의 삶이 시작되었다.


계란이 들어가지 않는 메뉴를 고르고 음식을 기다린다. 이런, 계란이 들어가 있다.

하하! 우리나라 메뉴판은 정말 불친절하다. 알레르기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식당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생긴 습관이 어떤 메뉴든 확인해야만 한다. 한식은 어디든 계란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예측은 금물이다. 반복되는 질문과 기다림 속에서 매번 생각한다. ‘메뉴판에 알레르기 표시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확인을 하고 또 해도 정말 당당하게 계란이 ‘까꿍’하고 나올 땐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바쁜 주방에서 순간 까먹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보려 하지만 계란이 들어갔다 나온 흔적이 선명하게 남기도 한다. 빨리 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3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아!처럼 말이다. 그래도 계란후라이나 삶은 계란이라면 그대로 들어서 상대방에게 기분 좋게 선물할 수 있다. 하지만 국물에 가득 풀어진 계란이라면… 하, 정말 어쩔 도리를 모르겠다.

몇 년 전 메뉴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육개장 집을 갔었다. 먹고 싶지 않은 메뉴였지만 유일하게 계란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여 고른 메뉴에서 계란이 잔뜩 들어있었다. 확인을 했는데… 안 들어간다고 했는데… 직원을 부르기 위해 손을 들었다. 순간 옆에 있는 어른에게 제지당했다. “그냥 먹어.”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날 육개장엔 한 숟가락도 대지 못하고 음식값을 지불했다. 그 이후엔 어쩔 수 없이 웃어넘겨야만 했다. 남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알레르기 표시가 없는 메뉴판은 이래저래 어떤 상황이든 미안하고 불편하고 속상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알레르기를 알리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상대방에게 정말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을 때, 정말 어려운 상대일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거나 어른들이 많은 자리에선 그냥 먹기도 한다. 남이 알지 못하게 계란을 슬쩍슬쩍 피하거나 평소보다 먹던 양보다 적게 먹는다. 그런 날은 양껏 먹지 못해 배가 고플 때도 있다. 그러다 누군가 소리친다.

“어? 너 계란 못 먹잖아!”

“하하, 진짜 먹고 싶을 땐 먹어요.”

“뭐야? 선택적 알레르기네?”



상황 3. 식료품을 구매할 때 (혼자든 다른 사람과 함께든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


먹고 싶은 식품을 발견해도 바로 카트에 담지 않는다. 뒷면의 원재료명을 본다. 많은 원재료를 한참 쳐다본다. 그 사이에서 달걀의 다른 여러 가지 이름을 찾는다. 알류, 난각 분말, 난각칼슘, 계란, 난백, 난황, 알부민 등.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찾느라 한참 걸리기도 했다. 때론 정말 알레르기 표시명을 찾기 힘들면 이 문구를 찾는다.

‘이 제품은 알류, 메밀, 땅콩, 복숭아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알레르기를 유의하라는 문구지만 ‘아, 이게 계란이 안 들어간 거군!’으로 자체 해석한다. 이 문구까지 카트에 담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나에겐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이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계란 맛을 몰랐다면 덜 괴로울 것 같지만 스스로에게 계란 알레르기는 크게 불편하진 않다. 이런 상황들이 불편할 뿐 세상엔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 많고, 때론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지만 맛있는 음식을 당연하다는 듯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은 과자나 케이크 등 살찌는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는 날씬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러 불편함이 “살 안 찌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라는 말에 감춰진다.



그렇게 때론 잠깐의 한 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진짜 속내를 알리지 않은 채 선택적 알레르기가 되곤 한다. 이렇게 알레르기 표시가 없는 불친절한 메뉴판은 정말 당혹스럽지만 수많은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간다. 아무리 피곤해도 맛집을 찾고 음식점을 알아보는 일을 자처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면 일차적으로 메뉴에 계란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걸러낼 수가 있고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오늘도 그렇게 계란이 없는 맛집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