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친구, 살랑바람과 개구리

여름의 끝자락에서

by 작연

아무리 뜨거운 열대야도 선풍기 한 대면 충분하다. 그 마저도 여름 내내 필요하진 않다. 정말 뜨거운 한여름이 되어서야 주섬주섬 꺼내 먼지를 씻어내곤 한다. 더위에 강하다는 표현보단 더위를 즐긴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더위를 즐긴다니. 뭔가 여름의 최강자가 된 것 같다.


에어컨보단 선풍기 바람을 좋아하고, 선풍기 바람보단 창문으로 넘어오는 살랑바람이 좋다. 끈적이는 땀을 씻어낸 후, 찬물의 차가움을 머금고 침대에 누우면 뜨거운 열기의 미지근한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때 스쳐지는 바람의 촉감이 좋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8살의 여름, 언덕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위치한 주택에 살았다. 온전한 주택은 우리 가족의 몫이 아니었다. 그저 주인집에 딸린 셋방이 우리 집이었다. 두 개의 방의 작은 창문은 바람 길이 되어주진 못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주인집의 옥상 계단을 올랐다. 아빠의 손엔 사각의 큰 모기장이 들려있었다. 빨래 줄이 걸린 지지대는 모기장을 걸기에 딱 적당한 높이였다. 베개를 들고 한 켠의 방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서 있었다. 옥상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깔고 모기장이 세워지면 모기가 들어갈세라 모서리를 슬쩍 들고 후딱 들어가곤 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 더 높게 올라간 옥상 바닥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고, 살랑이는 바람은 시원했다. 옥상에 세워진 모기장 안에 5명의 가족이 나란히 누웠다. 등에 느껴지던 따땃한 온기와 가끔 찾아오는 바람에 집중하다 보면 열대야도 금세 이겨낼 수 있었다. 때론 예기치 않게 내리는 여름 비와 이슬이 드리울 땐 새벽잠을 깨고 일사불란하게 모기장을 걷어내야 했지만 그 해 여름은 뜨겁기보다 따땃하게 남아있다. 그때부터 꽁꽁 닫힌 에어컨보단 활짝 열린 여름밤의 살랑바람을 찾는다.


뜨거운 한 여름의 낮보단 밤이 좋다. 해가 뜨면 매미들은 아침부터 울기 시작한다. 맴맴 맴맴. 그래, 너 매미인 거 알아. 매미가 우는 이유를 알지만 매미의 존재감은 뜨거운 열기에 짜증으로 밀려올 때가 있다. 밤이 되면 매미들도 잠을 자는지 지겨운 매미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대신 그 빈 공간을 개굴개굴 개구리들의 사운드로 채워진다. 이것도 여름밤의 묘미다. 여름만 되면 개구리들은 어디서 그렇게 찾아오는지. 여름이 지나면 어디로 그렇게 돌아가는지. 어느 밤. 갑자기 개굴 소리가 들려오면 이제 진짜 여름이라는 걸 알아채곤 한다. 개굴 소리는 뜨거운 밤을 시원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듣고 있으면 편안함과 동시에 온몸이 청량하게 느껴진다. 귀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니. 개구리에게 고마움을 느낄 줄이야.


여름밤이 지겹지 않다. 살랑바람과 개굴 소리는 뜨거운 여름밤이 오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테지. 이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여름밤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8월 25일 여름의 끝자락에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작게나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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