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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사랑에 빠지다.

by 이종열

따르르릉~

어제 맞추어 놓은 휴대폰 알림이 1분 1초도 틀리지 않은 시간에 정확히 울어댄다.

새벽 4시다.


사실 골프가 있기 전 날 맞추어 놓는 알람의 기능은 나 에게는 거의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지금껏 골프가 있기 전날 맞추어 놓은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날은 내 기억에는 거의 없다.

늘 내가 먼저 잠에서 깨어 제시간에 울어대는 알람을 재우기 일쑤이다.


티업 시간과는 무관하게 거의 새벽 한 두시에 깨어서 뒤척이다 알람이 알려주는 시간에 맞추어 준비를 한다.

새벽의 시간에 설레는 마음은 초등학교 때 소풍 가기 전 날의 기분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이다.


뒤척이는 시간 동안에도 벌써 내 머릿속은 오늘 가야 할 필드의 첫 홀이 나온다.

이 홀은 이렇게 치고 저 홀은 저렇게 쳐야지~

머릿속이 온통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데 시간과 상관없이 잠이 오겠는가?


행복하다.

좋은 사람들과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내 나이 벌써 60

그 행복의 이유가 어디 좋은 사람들과의 라운드라서 만이겠는가?


나이 육십에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한 일인가?

오늘 골프백을 매고 필드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내 몸이 건강하다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또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간의 돈은 써야 하는데 내가 하루 라운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있다는 것이 또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그리고 오늘 하루 내 모든 생각을 골프에 집중할 수 있게 당장 내 앞에 큰 근심과 걱정이 없다는 것 또한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 아닌가?


골프를 통해서 늘 내 곁에 있어서 그 고마움을 잊고 사는 공기와 같이 무탈한 일상의 소소함에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든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준비하는 행복은 또 얼마나 크고 소중한가?

어떤 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날 가방을 싸면서 행복을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볼 영화표를 예매하면서 행복을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맛있는 먹거리를 검색하면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나는 골프를 준비하며 가방을 쌀 때가 그렇게나 행복하다.

특히 오늘 함께 할 동반자들이 내가 좋아하고 편한 동반자들 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지만 얼마 전까지 기분이 우울하고 쳐질 때 내일 라운드가 없어도 가방을 싼 적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up이 되었다.


오늘 라운드를 함께 할 동반자 (골프에서는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인생의 길을 함께 한다는 뜻의 동반자라 칭한다)들을 한곳에서 만나 한차로 골프장으로 향할 때부터 나는 행복하다.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들의 수다를 떨면서 가는 한두 시간은 10분이 가듯이 금세 가버리고 차는 어느새 골프장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골프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속으로 오늘은 이렇게 쳐야지, 저렇게 하면서 새벽에 상상하였던 것을 다시 되뇐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티업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엄살이 심한 친구들은 벌써 걱정을 늘어놓는다.

골프가 안 되는 이유 108가지 중에 서너 가지를 마치 사실인양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한다.

어제 시골 어머니 집에 갔다가 서너 시간 마늘을 뽑았더니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오늘 채를 들 힘도 없다.

최근에 스윙 자세를 바꾸었더니 샷이 엉망이 되었다.

어제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다가 딱 한 시간을 자고 바로 나오는 길이다.

석 달 전에 골프를 마치고 그때 차에 실은 골프백을 오늘 처음 꺼냈다 등.................


그런 친구들의 엄살에 다른 친구들은 또 맞장구를 쳐준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오늘 어떡하지?' 하면서.............


그랬던 동반자들이 막상 티업을 시작하면 그 자세가 사뭇 진지하고 어떤 이는 비장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 어떤 이도 '조금 전에 죽는소리를 하더구먼 어떻게 그렇게 잘 쳐?' 하며 따져 묻지 않는다.

조금 전 그 말들이 전부 허풍이고 엄살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여름, 한낮의 태양이 뜨겁다.

필드 잔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움의 열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어떻게 전반을 마치면서 경기 보조원(캐디)이 후반을 시작하기 전까지 약 40분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40분의 시간.

망설임 없이 그늘 집으로 들어가서 동동주에 두부김치를 시켜놓고 아침에 다하지 못하였던 수다를 다시 떤다.

그때는 그랬었고 또 어떤 때는 이랬노라고~


40분이 또 5분이 가듯이 간다.

문득 본 휴대폰에 친구 하나가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별 일이 없으면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한다.


문자로 답을 하였다.

오늘 친구들과 라운드 중이라 그대와 점심을 할 수가 없으니 우리는 다음에 하자고 하였다.


이내 그 친구한테 문자가 다시 온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 그런 힘든 일은 머슴들 시키면 되지'


다시 답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내가 그랬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머슴을 시켜?'


약속된 40분이 지나 다시 스타트하우스로 나갔다.

그늘집의 시원함은 일시에 끝이 나고 금세 다시 불볕의 뜨거움이 우리를 맞는다.

조금 전 마신 동동주가 그 열기를 더한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숨이 턱 막힌다.

'머슴한테 하라고 할 것을 그랬나?'


그래도 또 티샷을 할 때는 비장하게 시작을 한다.

'이러다가 오늘 100타를 치겠어' 하는 친구도 있고 '역시 라운드 전날 마늘을 뽑는 것은 무리야'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오늘 잘하면 싱글 핸디캡을 하겠는걸?

더 신경 써서 오늘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해 줘야지'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골프에 귀가 달렸는가 보다.

싱글이라고 하였던 조금 전의 생각이 아직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미스샷이 나온다.

더 잘 쳐 보리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이래서 본인의 핸디캡은 카트도로 아스팔트에 숨어 있다가 그 도로를 뚫고 언젠가 나온다는 말이 있었구나.


골프를 통해서 인생을 배운다.

노력을 하고 애는 쓰되 집착은 하지 마라.

과감하게 승부할 때와 잘라가야 할 때를 잘 구분하고 판단을 해라.

더 잘하려는 마음이 머리를 지배하면 그 머리는 몸에 힘을 넣어 오히려 샷과 인생을 더 망친다.

Golf & Life인가 보다.


싱글 핸디캡의 미련을 버리고 억지로 보기플레이로 오늘 라운드를 마쳤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여름 골프의 매력 중 하나가 락카에서 젖은 옷을 벗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다.


이때의 상쾌함은 오늘 타수의 결과를 싸악 날리고도 남는다.


동반자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 아쉽다며 근처 카페로 가서 오늘 하루 종일 하였던 수다의 마무리를 마저 한다.


지금 시간이 저녁 9시.

그리고 보니 오늘 아침 7시에 만나서 14시간을 동반자들과 같이 있었다.

동반자들이기에 14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았다.


행복하였다.


띵동~

오늘 낮에 점심을 먹자고 하였던 그 친구한테 문자가 온다.

'오늘 라운드를 하고 피곤한 줄은 알겠지만 모레 라운드를 할 수 있느냐?"라고 한다.


'당연하지 친구야~

피곤은 무슨 피곤? 내가 골프 가방을 살 때 얼마나 행복한데?'


내가 골프와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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