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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들

by 이종열

손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혹시 죽었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아예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지가 꽤 오래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몇 달은 된 듯 보인다.


혹여 죽어 버렸으면 사체라도 치우려고 보면 아직 숨은 쉬고 있다.

죽은 것이 아니어서 치울 수도 없다.


내 휴대폰 이야기이다.

내 휴대폰이 휴대폰 본연의 일을 태업한 지가 몇 달이 되었다.


손으로 아무리 건드려보고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시체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그저 나지막이 숨만 쉬고 있다.


혹여 고장이라도 났을까 싶어 안부를 핑계로 한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였던 친구 녀석들한테 전화를 해 보았다.

"뚜우~뚜우~"

신호가 잘도 간다.

고장은 아니다.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아빠 휴대폰에 전화를 한번 해 봐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유를 묻는 아들놈한테 내 휴대폰이 잘 울지를 않아서 그렇다고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해 컬러링을 무엇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아서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아들의 전화에 내 전화벨 소리가 선명하게 울린다.


죽은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하루에 한 번 지방자체단체에서 보내주는 어제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와 오늘 폭염경보가 발령이 되었으니 가급적 바깥 외출을 삼가라는 등의 문자는 보내준다.

그러니 시체라고 치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심하게 내 앞에 죽은 듯 누워있는 내 휴대폰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피식 실소가 나왔다.

'내가 어쩌다~' 싶은 마음에 살짝 허무한 마음도 들고 인생무상의 거창한 철학적인 생각도 허무주의와 섞여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불과 5년 전만 하여도 내 휴대폰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하루의 중간쯤에 충전을 한번 더 해야 할 만큼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전화벨은 하루에도 수 십통씩 울어 대었고 문자메시지도 수 십통씩 쏟아 내었다.

날짜를 꼭 지켜야 할 중요한 문자였는데 미처 다 읽지를 못해 낭패를 본적도 많았고 끊으면 오고 끊으면 오는 전화 벨소리에 몸서리가 나서 아예 휴대폰을 꺼놓은 적도 더러 있었다.


카카오톡 친구란은 하루에도 몇 명씩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성가시고 크게 중요성도 느끼지를 못해 그냥 흘려보내가 일쑤인 적도 많았다.


그때는 나를 찾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귀찮고 성가셨다.


나는 어제쯤 휴대폰의 공해에서 해방이 될까 손꼽아 그날을 기다려왔다.


그랬던 내가 몇 달째 침묵하고 있는 휴대폰을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하고 혹여 고장이라도 났을까 툭툭 쳐보기도 한다.

이제는 캔디폰(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이 된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어주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런 휴대폰에서 나는 또 인생을 배운다.

지금 나에게 너무 많아 성가시고 힘에 부치는 것들이 하나씩 나에게서 사라지고 나면 그것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늘 가까이에 있어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늘 가까이에 있어 물의 소중함을 모르는 물고기나 아둔함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깨닫는다.


오랜만에 前 직장 동료였던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점심을 함께 하잔다.


1초의 망설임 없이 친구가 정해주는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런 일상의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걸음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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