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산 끝에 걸터앉아 그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하고 있다.
"나 이제 곧 떠나
우리 작별인사라도 하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의 머리에는 중절모가 쓰여있고 등에는 괴나리봇짐도 매여져 있다.
손에는 길이가 꽤나 긴 지팡이까지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떠날 채비를 마치고 서있는 듯 보인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나도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바위 끝에 피어있는 산삼을 캐려다 미끄러져 낭떠러지에 매달린 심마니 마냥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지도 않고 80년을 살아내고 이제 곧 떠날 채비를 하는 임종의 노인 숨소리 마냥 거칠지도 긴박하지도 않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그가 곧 떠날 나그네인지, 이제 막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길손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평화롭고 고요하다.
오늘 하루를 살아낸 고단함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오늘을 떠나는 이별의 아픔도 그의 얼굴 어디에도 없다.
그저 평화롭고 고요하다.
떠나는 그를 배웅하는 구름도 그 구름을 품고 있는 파란 하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가지고 있는 붉은 끝동의 색깔을 내어준다.
그의 주변 사방이 붉고 밝다.
어느새 내가 뒤돌아 그를 본 처음보다 그의 얼굴은 붉은 하늘보다 서산 뒤편으로 더 넘어가 반쪽도 보이 지를 않는다.
그때에도 그는 발버둥을 하지 않고 숨소리에 거침이 없다.
그저 평화롭고 고요하다.
내가 그의 마지막을 찍으려 카메라를 꺼내 들었을 때 그가 반쪽도 남지 않은 얼굴에 웃음을 보였다.
"나 이제 떠나
가는 나를 끝까지 지켜봐 줘서 고마워
내일의 나는 아마 오늘과는 다른 모습일 거야"
그가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였을 때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내 입이 그에게 작별인사를 준비하려는 순간 그는 이미 떠나 버렸다.
일순간에~~
그가 떠난 자리에는 아직 끝동의 붉음과 그 붉음이 물들인 푸르고 붉은 하늘이 그의 임종을 지키고 있다.
나는 그저 뒤돌아 조금 전 가던 길을 다시갔다.
뒤 뒷머리에는 아직 노을 한 자락이 남긴 붉은 석양의 빛이 나를 비치고 있지 싶다.
평화롭고 고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