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꿈이 사납다.
그 사나움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깨어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깊이 잠들었던 나를 깜짝 놀라게 해서 깨울 만큼 사나운 꿈이었지만 정작 방금 내가 꾼 꿈이 무슨 꿈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꿈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명 개꿈일 거야.
틀림없어"
잠을 청해 보려 다시 누웠지만 이미 깨어 버린 잠을 태운 버스는 저만치 가버렸고 다시 돌아올 기미는 아예 없어 보인다.
조금 뒤척이다 휴대폰을 들었다.
매일 아침 내가 잠을 깨서 하는 루틴 첫 번째가 휴대폰 앱에서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이다.
21세기에 아직도 운세를 보는 사람이 있나?
인공위성이 달을 넘어 화성까지 가는 지금에도?라고 하겠지만 꽤 오랫동안 그렇게 해 온터라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오래전 어느 여성 법무부 장관도 아침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했는 일이 책상 위에 놓인 신문에서 '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이었다니 나 같은 凡人들이야 하며 21세기, 화성 하며 운세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답변을 하고 나에게 자위를 한다.
그렇다고 그 운세를 100% 신뢰를 하고 그 운세에 따라 나의 하루 일정을 바꿀 만큼의 정도는 아니고 그저 그 운세가 좋다고 나오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면 되고 또 좋지 않게 나오면 매사에 조심하면 될 일이 아닌가?
행복만땅
새벽 사나운 꿈에서 일어나자 내가 본 오늘의 운세가 이렇게 제목 지어져 있다.
' 그래
그러면 그렇지
꿈은 반대라잖아
꿈이 그렇게 사나운 것은 반대로 오늘 일진이 아주 좋으려고 꾼 꿈이라니까 '
입가에 씩 웃음이 묻어 나왔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혼자 웃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나의 셀프 웃음은 이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아침 선식을 먹으러 거실 부엌으로 갔는데 아뿔싸 선식 재료가 하나도 없다.
어제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트에 들른다는 것을 깜빡하였다.
할 수없이 식빵 몇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집을 나섰다.
자동차가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가야 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엘리베이터가 하필 내가 서있는 층을 이제 막 지나 내려가고 있었다.
지하층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지하에서 엘리베이터가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머물러있다.
'젠장, 이 아침에 누가 엘리베이터를 이리 오래 잡고 있어?'
혼자 구시렁거리며 기다리는데 그 체감시간이 10분은 더 있는 듯하였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데 이번에는 맨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오늘 일진이 왜 이래?'
또 혼자 구시렁댄다.
맨 꼭대기층 25층에서 내가 살고 있는 13층까지 내려오는데 대여섯 번은 멈추었다 내려온다.
드디어 13층에서 문이 열렸는데
헐, 엘리베이터가 콩나물시루이다.
내가 발을 들여놓으면 이내 삐익 소리가 날 것 같아 그냥 내려가시라고 손짓을 하고 걸어서 내려갔다.
처음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부터 지금 지하주차장에 도착을 하기까지 족히 15분은 더 걸린 것 같다.
걸어서 내려 지하주차장에 있는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오 마이 갓~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내 차 양옆으로 주차한 자동차가 크기가 승용차보다 훨씬 더 큰 트럭과 봉고차가 아닌가?
내가 들어갈 틈이 없다.
아무리 보아도 내가 들어갈 수가 없어 보였다.
다행히 봉고 자동차 앞 유리에 운전자의 휴대폰 번호가 있어 그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는데 받지를 않는다.
두 번을 다시 해보았지만 역시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마침 뒷문으로 조금의 여유가 보여 문을 열고 거의 몸을 구겨 넣다시피 해서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서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땀을 뻘뻘 흘리고 시동을 걸고 있는데 내 휴대폰이 운다.
낯선 번호였지만 이내 조금 전 내가 걸었던 봉고 자동차 운전자의 번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얄미워서 나도 받지 않았다.
드디어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아파트 정문 출입구에 이삿짐 자동차가 떡하니 막고 서있다.
이삿짐을 다 싣고 마무리 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운전자로 보이는 분이 연신 고개를 굽신이며 손으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라 나도 손을 들어 괜찮다고 하였지만 마음은 조급하였다.
자동차로 내가 가는 목적지로 가는 도중 내내 신호등 전부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파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꾸며 나를 세웠다.
우회전을 하려고 오른쪽 차선으로 가면 사거리 모퉁이마다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서있는 차가 꼭 내 길을 막아섰다.
머피의 법칙이 꼭 오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어휴
오늘 꾼 꿈이 개꿈이 아니었어.
오늘 일진이 이리도 좋지 않으려고 꾼 꿈이었어"
이런 날은 급한 용모가 아니면 일찍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는 것이 상책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평소보다 두어 시간을 앞당겨 잠자리에 들었다.
반듯이 누워 오늘 하루를 회상해 보았다.
힘든 하루였다.
피곤한 하루였다.
띵동
휴대폰 카카오톡으로 문자가 들어온다.
김포에 있는 큰 딸이 가족들 단톡으로 오늘 하루 자기 가족들이 보낸 시간들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네 살 된 손주 놈이 재롱을 부리는 것이 단톡의 전부를 채우고 있다.
아내와 둘째 딸, 아들이 곧이어 귀엽다는 댓글을 달고 이모티콘으로 큰 딸의 단톡에 답을 하였다.
나도 댓글에 참여를 하였다.
큰딸이 단톡의 마지막 인사를 한다.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요"
조금 전 회상하였던 힘듦, 피곤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행복이 살포시 들어와 앉는다.
입가에 웃음이 돈다.
그리고 보니까 오늘의 운세가 맞았다.
오늘 하루 내 주변에 사람들이 아무 탈 없이 하루를 잘 보낸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싶다.
오늘 나의 일진은 행복만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