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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푸념

by 이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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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크고 자라는 것을 보면 우리는 참 늙지 않는다'

오래전 아직 내가 키가 자랄 때 나의 할머니가 커가는 나를 보면서 하신 말씀이다.

요새 부쩍 할머니 말씀이 실감이 나고 그 말씀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맞는 말씀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과 마주하고 앉은 그제 할머니 말씀이 다시 생각이 났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내가 직장일을 마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정말 엊그제 같은데 이 눔이 벌써 서른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들과 마주하고 있으면 태어나서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이 눔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포대기에 싸여 있는 갓난아기 아들을 처음 안아 보았을 때, 유치원에 다니던 때, 초, 중, 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였을 때가 생각이 난다.

또 군에 입대를 한다며 집을 나서며 큰절을 하던 때도 생각이 난다.


그랬던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지가 학과로 전공하였던 곳에 취업을 하였다.


아들이 첫 출근을 하던 날~


미리 조금씩 장만한 회사에서 쓸 물건들이 꽤나 되는 것 같아 내가 차로 회사까지 태워주었다.

아무래도 사회 첫발을 내딛는 첫날이라 긴장도 될 것 같고 가는 동안 말동무라도 되어 줄 요량이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 줄까?


아들의 전공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라 실무적인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없고 해서 그저 저 보다 인생을 먼저, 또 오래 산 인생선배로서, 저 보다 직장생활을 먼저, 또 오래 한 직업인의 선배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말을 하였다.


"아들!

오늘 출근을 하면 지금부터 긴 직장생활이 시작이 될 것이야.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능력을 인정을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인성을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상사나 선배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이들을 대하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들을 대하면 조금 부족한 능력은 이런 것들이 커버를 할 것이야"


생애 첫 출근을 하는 아들에게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어 간단히 하였다.

나의 짧은 조언에 아들도 짧게 내 말에 답을 하였다.

"아빠,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이 누구 아들인데요"


기특하고 갸륵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내 말에 대한 단순한 답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들은 첫 직장에서 3년을 넘게 근무를 하다가 올해 8월에 직종이 같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면서 직장 가까운 곳에 오피스텔을 얻어 그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독립을 하고 거의 석 달만인 그제 하루 휴가를 얻었다며 아들이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아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저녁을 같이 먹었다.

얼굴이 전에 보다 조금은 핼쑥해진 것 같아 밥은 잘 챙겨 먹느냐고 물었다.

이 눔 대답은 늘 심플하고 우렁차다.

"아들이 또 밥 하나는 잘 챙겨 먹지요"


그런데 얼굴이 좀 상해 보인 다고 다시 물었다.

나의 물음에 이번에는 심플하지도, 우렁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대답을 하였다.


이리저리 말을 꽤나 길게 하였지만 아들 말의 요점은 이랬다.

같은 부서의 팀장이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성격이 너무 개성이 강하고 사고(思考)하고 판단하는 것이 너무 자기중심적이라 속이 상할 때가 자주 있다는 것이었다.


부서의 전체 직원들이 생각하는 반대방향의 업무를 지시하고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드는 사람을 어떤 형태로든 갈구고 해코지를 한다고도 하였다.


더 기간 찬 것은 얼마 전에 자신이 지시한 대로 일을 하고 있는 팀원들을 불러 왜 일을 그런 방향으로 하느냐며 또 야단을 치고 다그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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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화살이 나에게로 향하였다.

"아빠가 나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어요?"


짧은 아들의 질문에 내 머리는 순간 무엇에 얻어맞은 듯 띵하였다.

'하아~

나 같으면........'


일순간 내가 직장에 있을 때 나도 내 팀원들에게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결정하고 지시를 한 일을 두고 이들도 집으로 돌아가서 고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앞의 생각과 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하여야지


"글쎄 아빠라도 속이 많이 상할 것 같은데...."


그런데 말이야 아들

이 말을 하려는 찰나에 아들이 내 생각이 말로 바뀌려는 것을 막아섰다.


"그렇죠? 아빠

우리 팀장님 이상하죠?

우리 팀장님 이상하시다니까"


우리 부자의 팀장에 대한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아들은 나에게서 이상한 팀장에 대한 대처법을 얻으려고 한 말이 아니고 그저 자신의 힘듬을 내가 물으니까 답을 한 것에 불과하였다.


아들의 물음에 솔로몬의 지혜로 답을 하지 못한 나는 아들의 급회전 대화에 못 이기는 척 말을 잇지 않았다.


아들이 지 집으로 돌아가고 아까 '그런데 말야 아들'하고 아들에게 해 주려 하였던 답을 아들이 없는 허공에 대고 혼자 아들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아들!

아빠가 네가 첫 출근을 하던 날 너에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나니?

직장 사람들을 대할 때 예의를 갖추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하라는.......


네가 힘들어하는 너희 부서 팀장님도 스스로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이상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비정상의 것이라는 알고 계실 거야.

설사 그분이 그렇게 생각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맞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팀장님의 몫이고 그 팀장님의 인생이야.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

백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야.

그저 다를 뿐이지'


나는 나의 생각을 아들에게 말로도, 글로도 답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이 꼭 맞다는 보장도 없고 설사 맞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그것을 이해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들의 물음에 정확한 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세월이 가르쳐 준 스스로의 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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