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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내 앞에 서면...

by 이종열


'귀하의 건강검진 결과 별다른 소견이 없습니다.

늘 지금처럼 건강관리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경한 위염 증상이 있으니 꾸준히 운동하시기 바랍니다. '

재작년에 내가 받은 건강검진표에 쓰인 내용이었다.

지금껏 늘 이렇게 받아왔다.


혈압, 당뇨, 고지혈 등 대부분의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 두 가지 성인병들이 나에게는 없었고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내 혈압이 얼마인지 모르고 있다.

늘 '정상입니다'라는 말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고 앞으로도 늘 이럴 줄로만 알았다.

당연히 내게 주어진 건강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고마운 줄을 모르고 살았다.


그랬던 내 검진표 나뭇가지에 작년부터 하나씩 열매가 열리더니 급기야 그제 받은 표에는 8가지나 되는 적지 않은, 어쩌면 꽤나 많은 이상이 있다는 열매가 달려 있었다.

담낭에 0.2mm쯤 되어 보이는 용종이 보인다, 간에 작은 혹이 하나 보인다, 골다공증의 초기 증상이 나타났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치보다 조금 높다는 등등...



주변의 친구들에게서 하도 많이 들어왔던, 어쩌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몸에 달고 있었던 나의 지금 이런 현상들에 대하여 친구들은 무덤덤하게 그게 무애 그리 대수냐며 덤덤해하였다.


나는 걱정이 오만상인데.....ㅠㅠ


그 여덟 가지 이상중에 검진 당일 판독 의사가 나를 앞에 앉히고 설명한 것 중에 하나가 위염에 관한 이상 설명이었다.

위염이 심해서 조직 일부를 떼어 조직검사를 의뢰하여 놓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약물치료를 겸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헬리코박터균이 원인일 수도 있고 내 잘못된 식습관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대부분 스트레스가 원인일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딱히 뭐............


의사 선생님께는 기억이 날 만큼의 스트레스는 없었노라 대답을 하였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찌 작은 스트레스조차 없을 수 있겠는가 싶었다.



스트레스!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느끼는 불안과 위협의 감정'이라 되어 있지만 내 판단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변 상황이 자기가 생각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를 않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걱정이 쌓이고 마음이 쓰이는 것을 일컬어하는 말 일 것이라 여겨진다.


얼마 전까지 나는 나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스트레스가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 때문에 생기는 것쯤으로 생각을 하였고 그것은 내가 job을 가지고 있는 한 나를 따라다니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내가 퇴직을 하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job이 사라지면 스트레스도 당연히 따라 사라질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퇴직을 하였고 내가 가지고 있는 job도 없다.


그런데 스트레스라니~~

그런데 그 스트레스가 내 위장을 갉아먹는다니~~


건강검진표에 달려있는 8개의 가지를 보면서 나는 비로소 느낄 수가 있었다.

스트레스라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동반을 해야 하는 평생의 친구이구나,

스트레스라는 것은 어떤 모양체를 갖춘 형상을 지닌 주체가 아니고 그저 내가 내 마음속으로 만들어 낸 무형의 객체였구나.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모양조차 없는 무형의 객체 스트레스와 나는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하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할 수도, 내가 거부를 할 수도 없는 내 인생과 함께 하여야 할 인생의 동반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할 수도, 나를 피해가지도 않을 형체조차 없는 유령과도 같은 스트레스와의 불편한 동행, 그것도 평생 동반자(?)로의 동행이라.........


마음속으로 이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아니

스트레스를 즐길 수는 없지.


그래, 즐길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스트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내 앞에 섰을 때 나만의 행동 매뉴얼을 만들자.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무릎을 탁 칠만한 묘안은 아니지만 나 만의 매뉴얼을 정하였다.


우선 내 마음속에 스트레스를 담을 쓰레기봉투 하나를 준비하였다.

그 봉투는 용량이 적은 10L짜리를 하나 마련하여 내 마음속 가장 얕은 곳에 두자 (가장 작은 5L는 용량이 너무 적어 자주 비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마음속 깊은 곳에 두면 나중에 비워야 할 때 꺼내기가 어렵고 자칫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정하였음)


하루를 살아가면서

" 어? 이거 혹시 스트레스인가? " 싶은 불편함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면 얼른 그것을 봉투에 담을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두지 않고 바로 폐기를 할 것인가를 정하기로 하였다.


예를 들어 내가 길을 가다 낯선 사람과 부딪쳐서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는데도 그 사람이 나에게 험한 말을 하였다고 치면 나는 그 말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기로 하였다.

그냥 그렇게 인격 형성이 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공기의 파장을 타고 내 귀에 앉는 자연적인 현상으로만 생각을 하고 바로 폐기를 할 것이다.

때문에 내 10L의 쓰레기봉투에는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또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 꺼려하는 일을 부탁하였을 때는 그것을 내가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얼른 판단하여 내가 하려고 작정을 하였으면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면 얼른 그 사람에게 내가 이만저만해서 이 일을 할 수가 없노라 말을 하고 그 부탁을 지워 버리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였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으면 그래도 저 사람이 나의 능력을 인정하여 주는구나 하고 그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하고 마음에 두지 말자고 다짐을 한다.


가급적 내 마음 얕은 곳에 걸려있는 10L짜리 종량제 봉투에는 담아두지를 않으려 한다.


어쩌다 시간이 흘러 10L 봉투가 7L쯤 찼을 때 나는 한치 망설임 없이 그 봉투를 꺼내 분리수거함에 넣어 버릴 것이다.


그 봉투를 비우 것에 친구라는 존재의 힘을 빌리기로 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하나를 만나 그 친구와 내가 같이 미워하는 친구 하나를 타깃(?)으로 해서 폄하를 하고 욕을 해 버리지 뭐

그렇게 하면 10L 쓰레기봉투는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지겠지.


내가 스트레스를 대하는 방법을 딱 두 가지로만 한정을 하기로 했다.

나를 찾아온 스트레스를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패스를 해 버리거나 패스가 되지 않는 스트레스는 봉투에 잠시 담아 두었다가 바로 꺼내서 버리기로 하였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이는 내 곁에 두지를 않을 거야.

나를 해쳐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아무것도 없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니까~


지금 내 10L 봉투에 3L쯤의 스트레스가 쌓여있다.


며칠만 더 있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야겠다.

그때 그 봉투를 가져가야겠다.

이번에는 그 친구와 함께 욕을 해 줄 친구를 누구로 하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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