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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뻔하였다.

by 이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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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언제쯤에 친구들과 새벽에 골프를 한 적이 있었다.

새벽 라운드이고 골프장이 집에서 꽤 거리가 있어서 새벽 3시쯤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였다.


잠에서 깨서 몸의 움직임 없이 바로 라운드를 하면 겨울 골프라 자칫 몸을 다칠 수도 있고, 밤새 비워진 위(胃)를 채우지 않으면 또 자칫 허기가 지고 라운드 중에 당(糖)이 떨어질까 봐 간단히 아침을 먹어야 해서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부엌에서 요기를 하였다.

물론 요기도 간단한 선식과 과일로 식단을 이루었다.


내 방에서 인기척이 나자 누누(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누누이다 )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지가 자고 있던데서 내게로 뛰어왔다.

꼬리를 흔들고 앞발을 들어 격하게 나를 반긴다.

누가 보면 꼭 10년 만에 서로 처음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또 이런 격한 반김을 외면할 수가 없어 인사의 대가로 내 아침 요기 식단 중에 과일 일부를 떼서 누누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제발 누누한테 내가 먹던 음식을 주지 말라는 나 이외의 가족들의 눈을 피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지금 새벽 3시에 깨어 있는 가족은 나와 누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먹던 음식을 나누어 주는 나와 그 음식을 받아먹는 누누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를 않고 은밀하지만 당당한 거래(?)를 새벽에 마칠 수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는 내방으로, 누누는 조금 전 지가 나왔던 잠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라운드 장소로 가려고 방에서 나오는데 누누는 나를 따라 현관문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고맙고 기특하였다.

우리 가족 그 누구도 라운드를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나녀 오마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설 때까지 누누는 현관을 지키고 서 있었다.


좋은 동반자들과 라운드를 마치고, 점심을 같이 하고, 근처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내친김에 저녁식사까지 이들과 같이 하였다.


우리의 변(辯)은 어중간하게 집으로 들어가면 아내들이 밥 차리가 귀찮아할 것 같아서라고 하였지만 실상은 지천으로 깔린 것이 시간인 백수들의 동병상련의 마음이 통하였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수다는 늘 신선들의 바둑 놀이이다.

어느새 저녁 9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아침 6시에 만나서 지금까지 같이 있었으니 오늘 하루 15시간을 이들과 같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마음이 편한 친구들과의 조우라서 그런지 그 15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더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음 라운드를 기약하고 백수 넷은 헤어졌다.

오늘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자는 아내들이 자주 쓰는 끝인사를 남기고서~~


아파트 문 앞에 섰는데 갑자기 피곤이 밀려온다.

아내한테 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싶은 두려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피곤 뒤로 쓰윽 따라붙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거실에 불이 꺼져 있었다.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나 보다.


그런데 누누가 또 새벽에 처럼 격하게 뛰어 오더니 나를 반겼다.

지금껏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렸나 보다.

아니다.

자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잠을 깼을 수도 있겠다.


앞발을 올려 온몸으로 나를 맞이하고 반겼다.

누누의 인사법은 늘 한결같고 늘 격하다.

누누의 격함에 비하면 내 반응은 늘 시큰둥하고 늘 미지근하였다.


대충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오려 하는데 아직 반김 인사가 모자랐는지 누누가 내 방까지 따라 들어오려 하였다.


이 눔이 내 방으로 들어오면 늘 하는 루틴이 있다.

내 방구석구석 냄새로 새로운 것을 익히고 자리가 바뀐 내 물건들을 발로, 머리로 툭툭 건드려서 얼마 전에 지가 보았던 그 물건이 맞나 확인을 하고............

다시 조용해지기 까지 족히 20분은 더 걸린다.


늦은 밤, 피곤해진 몸의 20분은 길어도 너무 길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설친 몸이라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여 방문 앞에 누누를 세우고 누누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 오늘 아빠방에는 안돼, 누누

여기서 기다려.

아빠 씻고 금방 다시 나올게 "


더 이상 나를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얼어붙은 듯 자리에 멈추어 선 누누를 확인하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씻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울 뻔하였다.

방문 앞에 누누가 어젯밤 내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 자세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내가 귀찮고 피곤해서 저를 떼어 놓으려 한 거짓말을 믿고 밤새 방문 앞에서 나를 기다릴 줄이야~~


내 넓은 오지랖의 생각들이 누누에 대한 미안함과 거짓말을 한 자책감으로 머리를 짓눌렀다.

"아빠가 금방 다시 나온다고 했는데 왜 이 시간까지 나오지 않지?

분명히 여기서 기다리라 하였는데~~"하며 밤샘으로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누누보다 더 격하게 아침 인사를 하였다.


오늘부터 누누한테 저녁 인사멘트를 바꾸었다.

"누누

아빠 이제 잘 거야.

누누도 네 방으로 가서 자.

자고 내일 보자~"


그래도 나를 맞이하는 누누의 아침인사는 격하고 한결같았다.

두 앞발로 나를 만지고 머리를 내 가슴에 갖다 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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