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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Dec 16. 2022

다름과 틀림

" 어제 와이프, 예비 며느리와 같이 집에서 하루 종일 김장을 담았더니 온 싹 신이 쑤시고 아프네 "

얼마 전까지 같은 직장동료였던 나보다 한 해 후배 친구가 점심을 먹으면서 자신의 팔과 손목을 만지면서 말했다.

인상도 꽤나 써가면서 말하는 것으로 봐서 엄살은 아닌 듯 보였다.


나와 같은 동갑내기 친구와  해 후배인 이 친구, 그리고 나.

우리 셋은 퇴직을 하면서부터 한 달에 한번 점심때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서로의 근황도 이야기하고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같은 백수라 우리 셋은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생각의 수준과 깊이가 닮아 있었다.  


후배 친구의 말에 매번 아내가 김장을 담을 때 도움을 거의 주지 못한 나는 순간 멈칫하였다.


내가 게으른 것인가?

내가 크게 부지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내 혼자 김장을 담을 때 도와주지 않을 만큼 게으른 것은 아니었다.

내게 아직 가부장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

오래전 나도 모르게 내 몸속에 가부장의 피가 흘렀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 몸 어디에도 가부장이 자리한 곳은 바늘 하나 꽂을 만한 곳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 친구의 말에 내가 멈칫하였을까?


내 마음으로는 아직 결혼식도 치르지를 않아 발뒤꿈치에 '예비'자를 달고 있는 그래서 아직은 아들의 여자 친구까지 왜 김장 담그는 일에 불렀을까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다.

후배 친구와 그의 와이프 발뒤꿈치에도 아직 '예비 시아버지, 예비 시어머니'라고 예비 자가 붙어 있는데, 그래서 아직은 서로 예비들끼리인데, 아들 여자 친구가 얼마나 불편하였을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친구야

올해는 이왕 그렇게 하였으니 할 수 없지만 내년부터는 김장을 담그고 집 안에 큰일이 있을 때 아들 부부는 가급적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내 생각이야"

내가 오지랖 넓게 친구이지만 남인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 입 하나를 얹었다.


내 말이 아직 입에서 나와 허공을 맴돌고 있는 짧은 시간에 친구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 친구가 자신의 가정사에 끼어든 내 말이 기분이 나빴나?

내가 괜한 말을 하였나?'


일순간 나의 얼굴도 굳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얼굴의 굳음을 표시 내지 않으려 [추가 반찬은 셀프입니다]이라 적혀 있는 기둥에 설치된 반찬 셀프바(self bar)로 가서 아직 몇 개 남아있는 접시에 깍두기를 더 담아왔다.


"아니 왜 아들 부부를 그런 일에 부르지 말라고 하죠?

그렇게 가족이 어우러져 함께 하는 것이 가족애이고 그렇게 해야 서로 간에 情도 쌓이는 거 아닌 거야?"

후배 친구의 얼굴에 집안일에 가족을 부르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그러느냐? 하는 심각함의 표정과 너무 이르게 삼각함을 표시해 버리면 자칫 지금 이 자리 분위가 어색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자제와 절제의 표정이 정확히 50:50의 비율로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지적도 아니고 충고도 아닌 가벼이 내 생각을 말하였을 뿐인데 난색과 그 난색을 표시하지 않으려 애쓰는 표정을 반반의 비율로 '왜죠?'라며 따지듯 말하는 후배 친구의 진지함에 내 얼굴의 표정도 이왕 말한 거 내 생각을 말해주자 하는 비장함과 자칫 내 말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자제와 절제의 표정이 50:50으로 지어졌다.


" 자네 생각이 무엇인지 내가 알아

자네 생각이 틀렸고 내 말이 맞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말이야 하는 말을 앞머리에 먼저 내 보내고 내가 말을 하였다.


"자네 말이 100% 맞는 말이야

김장을 담그고,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조상님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부모님 생신 때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함께 하면서 가족애를 다지는 것이 어찌 틀리고 어찌 잘못된 말 일수가 있겠나?

그런데 말이야.

세상이 조금은 변하였어.

지금도 변해가고 있고.....

약간은 슬프지만 우리의 생각, 철학과는 조금 다르게 요즘 젊은 사람들의 그것은 조금씩 다르고 또 변해가고 있어"


이미 건더기 하나 없이 국물만 조금 남은 국그릇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가면서 내가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생각하는 진실, 정의와 우리의 아들, 딸들이 생각하는 그것에는 이미 조금의 차이가 보이고 갈라진 틈도 보여.

누구의 진실과 정의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 그것들이 변해가고 있어.


우리 때는 아들 중 맏이가 부모의 종신보험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차남들 보다 맏이에게 더 투자를 하고 더 관심을 가졌잖아.

부모들은 맏이에게 좀 더 많은 재산들을 물려주고 맏이는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기도 하였고~

그렇지만 지금은 부모와 자식들 중 어느 누구도 부양을 하고 부양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잖아?"


말을 하고 있는 내 눈은 자주 허공을 맴돌았지만 그런 나를 지켜보는 후배 친구의 눈은 내 입에 고정이 되어 있었다.

여차하면 크게 반박이라도 할 요량처럼 보였다.


"그래서 세월이 변하고 진실, 정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가족들이 각자 편한 데로 생활하고 늙어가는 부모들을  자식들이 나 몰라라 던져놓는 것이 맞다는 말인가요?"

후배 친구의 말은 단호하였고 결연하였다.


동년배들끼리 모여 같이 점심 먹으면서 서로의 생각,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가벼이 생각하였던 나는 일순간 당황스러웠다.


싸우자는 것이 아닌데 ㆍㆍ ㅠㅠ


친구지만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생활에 너무 가까이, 너무 깊이 관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싶어 내가 더 이상 말을 이어하지 않았다.


동갑내기 친구의 분위기를 바꾸는 말로 김장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이런 어색함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평소 때 모임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카페를 나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동갑내기 친구와 둘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 친구의 마음이 상하였을까 걱정이 되어 내가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아까 내가 괜한 말을 하였나?

그 친구 내가 한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 아냐?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내 물음에서 조급증을 보았는지 친구는 그저 씩 웃으면서 내 물음에 답을 하였다.

"자네와 그 친구 둘의 말이 다 맞아.

틀리지 않아.

그저 달랐을 뿐이지"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가 후배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까 낮에 내가 한 말에 마음이 상하였으면 내가 미안하네.

지금 생각을 하니까 자네와 내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인데 내가 자네의 말과 생각이 틀렸다는 듯 말했어.

오늘 내 말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가 답을 해왔다.

'친구의 소중함을 오늘 알았네요.

서로의 다름을 눈치 보지 않고 서로에게 말을 해 줄 수 있는 우리는 친구잖아요.

아까 낮에 한말 마음에 두고 그럴 수도 있구나로 생각을 넓혀 볼게요.

좋은 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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